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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3일 (월) 13:39 판

시버족(시버어: ᠰᡞᠪᡝ Sibe 중국어: 錫伯 Xībó 시보[*])은 만주족의 일파로 현재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 살고 있다. 2000년 집계에 따르면 중국에 188,824명(약 19만명)이 살고 있다.

청대의 석백(錫伯)은 혹은 석북(錫北)·서북(席北)·사백(史伯)·석백(席帛)·십백(什白) 등으로 썼으나 모두 동음이사이다.[1]

역사

시버라는 명칭에 대하여, 혹자는 몽골어 'Sibege'. 즉 생울타리(生籬)·난붕(欄棚)·보루(堡壘)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정확할 지도 모른다. 금대에 일찍이 그 일대에 변장(邊墻)이 설치되어 이들 여진인들이 바로 그 변장을 지키기 위하여 이 지역으로 옮겨져서 몽골인들을 방어하였는데, 몽골인은 이 때문에 이 지역에서 변장을 진수하는 여진인들을 'Sibege'라고 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세월이 오래된 뒤, 이들 여진인들도 자신 스스로 시버(錫白)이라고 일컫게 되었다.[2] 반면에 시버가 만주족과 같은 퉁구스계이고 그 이름이 '수세미풀'을 의미하는 만주어 'Sibe'에서 유래했다는 이견도 있다.[3]

역사문헌상으로 시버에 대한 한자음역(漢字音譯)은 십여 가지나 되며, 현재는 석백(錫伯)이란 두 글자로 확정되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그 족원(族源)을 연구·토론해 보면, 선비(鮮卑)가 석백(錫伯)의 선세(先世)라는 믿을 만한 명확한 증거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도리어 석백(錫伯)이야 말로 명대 여진의 후예라는 믿을 만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4]

시버족은 원대에 몽고의 통치를 받았고, 원이 중국에서 축출되어 북방 초원으로 철수한 뒤인 15세기경부터는 몽골의 일파인 우랑카이의 지배를 받았었다. 당시 시버족의 거주지는 만주 지역 눈강의 최대 지류로 현재 길림성 북부와 내몽고 동부를 흐르는 타오르 강(Toor Bira) 유역으로 추정된다. 이후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여 눈강송화강의 합류지역에 거주했다. 1547년경에 코르친 몽골의 일부가 후룬버이르 지역으로부터 눈강 유역으로 이동해 온 후 시버족은 점차 이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5]

여진을 만주(滿洲)로 개칭한 뒤에 강희제도 시버를 만주인으로 간주하였다. 1691년에, 강희제는 호화호특(呼和浩特) 대소사(大召寺)의 내제타음(乃濟陀音) 2세 활불(活佛)에게 청하여 코르친(科爾沁)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다. 그는 활불에게 말하기를, "과이심 10기(旗)는 바로 그대의 단월(檀越)이기도 하지만 짐의 외가이기도 한데, 거기에는 우리 만주인인 시버(錫伯)·하라친(呼勒沁) 부락이 있다. 그대가 시버(錫伯)·하라친 사람들한테 가서 청해 오도록 하라. 짐은 그에게 낙안(諾顔)을 하사하고 싶으니, 그들을 받아 들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6]

이때까지 시버는 코르친 몽골에 예속되어 있었는데, 청 제국루스 차르국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국경선을 확정지은 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부족민을 팔기로 편제하는 정책을 계속 진행시킴으로서, 시버족은 1692년부터 청 제국은 코르친으로부터 시버족에 대한 지배권을 이양받아 시버인 장정 1,500명을 병사로 선발해서 30개의 좌령(Niru)로 편제한 후 궈왈차(Gūwalca)의 장정 500명으로 이루어진 10개의 좌령과 함께 길림성 부여현에 위치했던 버두너 일대에 집결시켰다. 이후 시버족들은 버두너뿐만 아니라 치치하르길림에도 병사로 배치되었다. 1699년부터 1701년까지 시버족 다수는 팔기로 편제되어 북경성경 등지로 이주되었다. 그리고 일부 시버족은 버두너 일대와 송화강 하류역의 코르친 고를로스기의 영지내에 거주하면서 팔기에 편제되지 않고, 주방팔기의 관할도 받지 않으면서 경사의 만주족 왕공들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에게 물고기를 잡아 바치는 임무를 수행했다.[7]

1758년청 제국은 반세기가 넘는 오랜 시간 충돌해 온 중가르를 마침내 멸망시켰다. 이 지역은 청의 새로운 영역인 신강이 되었고, 이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기 위해 신강 각지에 주둔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후 몽골 차하르, 솔론[8], 다우르가 신강 북부를 제어하는 일리 일대 주둔군으로 영구 파병되었고, 심지어 한인 군대인 녹영에서도 주둔군이 선발되었다. 그리고 시버족도 영구 파병군으로 선발되었는데, 1764년, 만주 지역의 20세 이상 40세 미만의 용맹과 활쏘기 실력이 뛰어난 시족 병사 1,020명과 가족 3,275명이 일리의 주둔군으로 차출되었다. 이들은 [[성경]에서 조상의 사당에 지사를 지내고 남아있을 친인척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은 일리강 남안의 바투몽커 지역에 주둔지를 배정받았다. 시버족은6개의 좌령으로 편성되어 일리강 남부에 설치된 수비대와 초소인 카룬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병역의 의무외에 자신들이 먹고 살 농지를개간하고 경작해야 했다. 더욱이 시버족은 신강 남부의 호탄, 카쉬가르 등의 무슬림 지역에 있는 주둔지에 3년씩 파견 근무를 나가야 했다.[9]

많은 시버족은 만주팔기로 편입되었지만 시버영(Sibe Kūwaran)으로서 독자적인 군대 조직을 유지했고, 만주어만주 문자를 사용하였지만 완전히 만주족화되지 않고, 시버족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했다.[10]

언어

언어는 시버어를 사용하며 문자는 만주문을 개량한 시버문을 사용하고 있다. 시버어는 만주어와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현 사용인구는 약 3만여 명 정도로 신문, 방송 등 매체로도 활성화되어 있다.

참고문헌

  • 〈절멸 위기의 알타이언어 현지 조사〉, 한국알타이학회, 2006.

같이 보기

  1. 孫進己, 《女眞史》, 吉林文史出版社, 163쪽
  2. 孫進己, 《東北民族源流》, 黑龍江人民出版社, 249쪽
  3. 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06쪽
  4. 趙展, 《對皇太極所謂諸申的辨正》
  5. 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07쪽
  6. 趙展, 《對皇太極所謂諸申的辨正》
  7. 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09~411쪽
  8. 牛素嫻(2006), 清初的「索倫」諸部 솔론(索倫, Solon)은 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솔론어를 사용하는 어웡키족의 한 갈래로 어웡키족, 다우르족, 오로촌족의 총칭이기도 했다.
  9. 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12~413쪽
  10. 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4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