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돈스코이 (장갑순양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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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돈스코이호 탐사 때 정부와 동아건설에 선박 인양에 따른 국제법상 문제의 자문을 제공했던 [[이석용]] 한남대 법대 명예교수는 "([[러일전쟁]] 때) 금괴나 금화가 중요 가치저장 수단이었을 테니 필요한 돈은 갖고 다닌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발틱 함대]]의 철갑 순양함은 유럽의 [[발트해]]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희망봉]]을 거쳐서, 지구를 거의 한바퀴 도는 장거리 항해를 하여 대마도에서 일본 해군과 함포전을 하여 1차 패배하고, 울릉도 독도에서 2차 교전하여 패배했다.
2000년대 초 돈스코이호 탐사 때 정부와 동아건설에 선박 인양에 따른 국제법상 문제의 자문을 제공했던 [[이석용]] 한남대 법대 명예교수는 "([[러일전쟁]] 때) 금괴나 금화가 중요 가치저장 수단이었을 테니 필요한 돈은 갖고 다닌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발틱 함대]]의 철갑 순양함은 유럽의 [[발트해]]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희망봉]]을 거쳐서, 지구를 거의 한바퀴 도는 장거리 항해를 하여 대마도에서 일본 해군과 함포전을 하여 1차 패배하고, 울릉도 독도에서 2차 교전하여 패배했다.


그러나 돈스코이호가 침몰될 때, 승무원들이 섬에 모두 상륙, 일본 해군에 체포되어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 해군 몰래 독도나 울릉도 모처에 보물을 숨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돈스코이호가 침몰될 때, 승무원들이 섬에 모두 상륙, 일본 해군에 체포되어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 해군 몰래 독도나 울릉도 모처에 보물을 숨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람이 사는 울릉도 보다는 오히려 무인도인 독도 등에 보물을 숨겼을 가능성도, 근거는 전혀 없지만,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다. 울릉도 주변과 독도 주변에는 사람이 전혀 접근하지 않는 작은 암초도 매우 많이 있다.


== 각주 ==
== 각주 ==

2018년 8월 7일 (화) 10:05 판

드미트리 돈스코이

대략적인 정보
함명 드미트리 돈스코이
이름유래 모스크바 대공
함종 장갑순양함
제작 뉴 애드미랄티 조선소, 상트페테르부르크
운용  러시아 해군
기공 1881년 5월 21일
진수 1883년 8월 30일
취역 1885년 초
좌초 1905년 9월 28일
최후 1905년 5월 29일 울릉도 에서 침몰
가격 3,421,468 루블
일반적인 특징
배수량 5,882톤
전장 93.4 m
선폭 17.7 m
흘수 7.88 m
설치동력 7,000 ihp (5,200 kW)
추진 1축, 2 복합 증기엔진, 8 보일러
속력 16.5 노트 (30.6 km/h)
항속거리 10노트로 13,000 km (19 km/h)
승조원 591명
무장 2 × 8 in (203 mm) 포

4 × 6 in (152 mm) guns

드미트리 돈스코이(러시아어: Дмитрий Донской, Dmitri Donskoi)는 1880년대 초반 러시아 제국 해군에서 제작한 현측포 장갑함이다. 함 이름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인 드미트리 돈스코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개요

본 함은 러시아 제국 해군이 자국의 연안 방어를 위해 건조한 장갑함이다. 본함의 기본 구조는 평갑판형 선체에 3개의 돛대와 2개의 굴뚝을 가진 장갑 프리깃으로 함수 수면 아래 충각을 가지고 있고, 선체 중앙부에 함교가 있다. 함교 뒤에 2개의 굴뚝이 서 있고, 선체 중앙부의 포곽(케이스 메이트) 부에 주무장을 좌우 균등 배치했다. 1894년에서 1895년 현대화 개조되어 있어 기관을 강화했고, 항해 장비를 철거하고 마스트에 3.7cm - 4.7cm 클래스의 속사포을 배치한 감시대를 마련했다.

러일 전쟁에서 쓰시마 해전에 ​​참가하였다. 요함을 차례로 격침, 나포하는 가운데 끝까지 싸웠다. 최후에는 승무원들이 울릉도 부근에서 자침시키고 섬에 상륙한 후 포로가 되었다.

2003년 5월 20일 한국해양연구원과 동아건설은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선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대한민국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앞 2 km 지점에서 발견하였다고 하였으나, 실제로 그 잔해가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것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찾지 못하였다.[1]

보물 논란

2018년 7월 17일, 신일그룹이 "지난 15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에 금화와 금괴 5000상자 등 현재시세 150조원 가치의 200톤의 보물이 실려 있다고 밝혔다.[2] 그러나 동아건설은 자신들이 먼저 발견했으며, 500Kg 정도로 현재시세 220억에 해당하는 양만 있다고 주장하였다.[3]

돈스코이호 침몰 전날인 1905년 5월 28일, 대마도 근해에 침몰한 나히모프호에 보물이 실려 있었다. 군자금과 일본 정벌 후 쓸 자금으로 약 24조원에 달하는 금화와 백금괴 등 보물로서, 러일전쟁 후 전쟁포로로 잡혀 있다 돌아온 발틱 함대의 한 사령관이 남겼다는 기록에 근거한다. 나히모프호는 대마도에서 침몰 직전 보물을 돈스코이호로 옮겼다.

1999년 김대중 정부의 해양수산부가 정부 주도의 돈스코이호 발굴작업을 벌였다. 동아건설과 해양수산부는 1999년 8월 부터 2004년 12월까지 4단계의 돈스코이호 발굴작업을 벌였다. 2000년 8월부터 2001년 3월까지 노무현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으며, 바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즉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정부주도로 추진했던 보물선 찾기 사업이다.[4]

돈스코이호의 24조원 어치 군자금은 현재 시세로 150조원에 해당한다는 것인데, 일본이 1980년대 탐사를 하다가, 러시아 정부가 보물의 소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탐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 김대중 정부는 러시아와 매우 친하게 많은 사업을 했으며, 1999년에는 러시아가 ICBM 완제품 까지 한국 국정원에 판매했다는 시절이다. 즉,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군함의 군자금인 보물을, 러시아가 국제법 등의 소멸시효와 무관하게, 강력하게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정부 주도로 보물선 탐사를 벌였다는 것은, 러시아 정부의 동의가 없이는 힘든 일이다. 푸틴은 1999년 8월에 러시아 총리가 되었다. 한국 정부 주도의 돈스코이호 발굴사업 시작 시기와 같다.

법률은 권력에 복종하며, 권력자의 폭력을 학문화 한 것이 법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즉, 세계적인 군사 강대국인 러시아가, 법률의 소멸시효 등을 무시하고, 내 보물이라서 내놓지 않으면 몇배의 보복을 하겠다고 하면, 법률은 아무 의미가 없다.

동아건설은 상장폐지 후에도 해양연구원과 탐사를 계속해 2003년 6월 울릉도 저동 앞바다 약 2km 지점의 수심 400여m에서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침몰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채권단 반대로 인양에는 나서지 못했다.

1999년 동아건설은 해양수산부의 한국해양연구소에 돈스코이호 발굴을 의뢰했다. 한국해양연구소는 3년 동안 보물선을 찾아다녔지만, 실패했다. 해저탐사 전문업체에 외부의뢰를 하여, 2003년 5월 찾아냈지만, 배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으며, 2004년 정부가 동아건설에 허가한 발굴기간이 종료한 이후에는 그곳을 탐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2000년대 초 돈스코이호 탐사 때 정부와 동아건설에 선박 인양에 따른 국제법상 문제의 자문을 제공했던 이석용 한남대 법대 명예교수는 "(러일전쟁 때) 금괴나 금화가 중요 가치저장 수단이었을 테니 필요한 돈은 갖고 다닌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발틱 함대의 철갑 순양함은 유럽의 발트해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희망봉을 거쳐서, 지구를 거의 한바퀴 도는 장거리 항해를 하여 대마도에서 일본 해군과 함포전을 하여 1차 패배하고, 울릉도 독도에서 2차 교전하여 패배했다.

그러나 돈스코이호가 침몰될 때, 승무원들이 섬에 모두 상륙, 일본 해군에 체포되어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 해군 몰래 독도나 울릉도 모처에 보물을 숨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람이 사는 울릉도 보다는 오히려 무인도인 독도 등에 보물을 숨겼을 가능성도, 근거는 전혀 없지만,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다. 울릉도 주변과 독도 주변에는 사람이 전혀 접근하지 않는 작은 암초도 매우 많이 있다.

각주

  1. 서찬동 (2003년 6월 3일). “울릉도 앞바다서 찾은 보물선”. 매일경제. 2018년 7월 19일에 확인함. 
  2. 안승진 (2018년 7월 19일). “‘보물선’ 돈스코이호 인양한다는데… 첫발견자 소유권 기술력 등 곳곳 암초”. 세계일보. 2018년 7월 19일에 확인함. 
  3. 윤선희; 전명훈 (2018년 7월 19일). “동아건설 '돈스코이' 권리 주장…"220억원 가치 금 추정". 연합뉴스. 2018년 7월 19일에 확인함. 
  4. 죽지 않고 또 돌아온 돈스코이 소동, 경향신문, 2018-07-22

참고 문헌

  • “Conway All The World’s Fightingships 1860-1905” (Conway)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