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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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즉위시 승상은 여불위.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도 승상은 왕관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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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전국시대의 [[진 (영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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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7일 (일) 22:10 판


 

기원전 221년~기원전 206년
 

기원전 210년의 진나라
기원전 210년의 진나라
수도함양
정치
정치체제군주제
황제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10년
기원전 210년 ~ 기원전 207년
기원전 207년

시황제
이세황제
진왕 자영
역사
 • 성립기원전 221년
 • 멸망기원전 206년
인문
공용어고대 중국어
기타
현재 국가

(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6년)은 진 시황제에 의해 전국 시대를 통일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이다. 전신은 지금의 산시성 지역에 있던 진 백작국이며, 그 국호는 초기 중심지인 진(秦) 땅에서 비롯됐다. 국력은 기원전 4세기 쯤 전국 시대상앙이 행한 법가에 따른 개혁에 의해 급속도로 강성해졌다. 기원전 3세기 중후반에 진나라는 국력이 약했던 주나라를 시작으로 전국 칠웅을 모두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룩했다.

진나라의 지배기간 동안, 진은 무역을 증가시켰고, 농업을 발전시켰으며 치안을 강화했다. 이는 토지 지주제를 폐지했기 때문인데, 이로써 중앙정부가 국민들을 직접 통치할 수 있었다. 이는 만리장성과 같은 대형 공사들을 할 수 있게 된 토대가 되었다. 진제국은 또한 화폐, 도량형 통일등의 많은 개혁을 했다. 군사력 역시 발전하여, 전술이나 무기, 운송체계 등이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예전 나라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분서갱유와 같은 일도 벌였다.

진나라의 군사력은 비록 강성했지만, 진나라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신하들은 그를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신하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싸웠고, 결국 신하들과 진 황제가 모두 사망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몇년 후 국민들에 의해 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멸망했다. 국가의 짧은 지속시간에도 불구하고, 진은 중국 전체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또한 중국의 유럽식 이름인 China 역시 진나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

기원과 초기의 발전

고대 정치가였던 고요의 후예였던 비자는 진읍의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로써 주나라의 8대 왕인 효왕의 재위기간에, 이 시작되었다. 공화기간동안, 진은 말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돈을 받는 속국이 되었다.

기원전 247년에 즉위 한 진왕 정은 국력 증강에 노력했다. 기원전 223년에 진나라의 최대의 적인 초나라를 멸망시켜,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해, 스스로 황제(첫 황제이므로, 시황제라고 한다)를 자칭했다. 이 황제의 칭호는, 중국의 전설상의 성왕인 삼황오제로부터 따온 것이다.

시황제는 도량형·문자의 통일, 군현제의 실시등 여러가지 개혁을 실시했다. 또, 흉노 등의 북방 기마민족에게 침략을 대비 하기 위해서 각각의 나라가 독자적으로 만들고 있던 장성을 정비해 만리장성을 건설했다. 만리장성의 건설은 주로 농민들의 강제적인 노동에 의해 진행되었으므로, 가혹한 노동과 극도의 법치주의에 국내는 불만이 높아지는 바람에 반란의 싹을 길렀다. 시황제는 흉노의 침략이 일어나자 다시 북쪽으로 공격을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입혀지는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게다가 남쪽으로도 원정대를 보내서, 현재의 베트남 북부까지 영토를 펼쳤다. 이 때, 남방에는 남해, 상, 계림의 세 개의 군이 놓였다. 이것은, 중국 왕조에 의한 남방 지배의 시작이기도 한다.

시황제의 사후와 멸망

시황제가 기원전 210년에 사망하자, 벼슬아치들은 시황제의 사후, 환관 조고(趙高)가 태자 부소(扶蘇), 승상 이사나 시황제의 혈족자 등 권력자를 차례차례로 암살해, 어리석은 2세 황제를 허수아비 황제로서 권력을 제멋대로하게 하고 폭정을 하였다. 시황제의 사후 진나라는 혼란해져서, 다음 해에는 진승(陳勝), 오광(吳廣)의 반란이 발발,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소란 상태가 되었다.

진 이세황제와 조고는 장한(章邯)을 장군으로서 토벌군을 보낸다. 장한은 군사적 능력을 발휘해서, 진승군을 격파하고, 그 다음으로는 초나라의 항량군도 격파했다. 그러나 항량(項梁)의 조카 항우(項羽)와의 결전에 깨져 장한은 포로가 된다. 항우는 함양으로 향하는 도중에 반역의 기색을 보인 진나라 병사 20만을 죽여 버렸다.

장한이 대패한 것을 들은 조고는 낭패 해졌고, 2세 황제를 폭정이 오명을 씌운 다음 암살해, 자영을 세워 민의의 안정을 도모하려고 하지만, 자영등에 의해서 주살당했다.

그 후, 유방이 함양에 들어가면서, 자영은 항복해, 진은 멸망 했다. 유방은 자영을 죽이지 않기로 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함양에 온 항우는 자영을 죽여, 함양의 미녀와 재보를 약탈하고, 화를 걸쳐 함양은 폐허가 되었다.

진(秦)나라의 행정구역

진나라의 행정 구역도

진시황은 6국을 정복하여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초기에 36군을 설치하였으며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주변정복에 따라 군이 추가되었다 여기서는 56개군(郡)으로 소개한다.(42군설, 46군설과 48군설도 있음)

진(秦)나라 황제 목록

진나라 황제 열표
대수 시호 성명 재위기간 생몰
- 태상황
(太上皇)
(진 시황제 추숭)
영자초(嬴子楚) 조자초(趙子楚) - 기원전 281년 ~ 기원전 247년
제1대 진 시황제
(秦始皇帝)
영정(嬴政) 조정(趙政)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10년 기원전 259년 ~ 기원전 210년
제2대 진 이세황제
(秦二世皇帝)
영호해(嬴胡亥) 조호해(趙胡亥) 기원전 209년 ~ 기원전 207년 기원전 229년 ~ 기원전 207년
제3대 진왕
(秦王)
영자영(嬴子嬰) 조자영(趙子嬰) 기원전 206년 ? ~ 기원전 206년

같이 보기

  • 춘추전국시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