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흠돌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1번째 줄:
'''김흠돌의 난'''(金欽突義 鸞)은 [[신라]](新羅)에서 [[681년]] [[소판]](蘇判) 김흠돌(金欽突)이 [[파진찬]](波珍湌) 흥원(興員), [[대아찬]](大阿飡) 진공(眞功) 등과 함께 모반을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된 사건으로 [[신라]](新羅)의 왕권이 전제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중요한 사건이다. [[신문왕]](神文王)은 이를 계기로 진골(眞骨) 귀족세력을 숙청하고 전제 왕권을 강화했다. 김흠돌(金欽突)은 [[김유신]](金庾信)의 조카이자, [[김유신]](金庾信)의 사위이고, [[신문왕]](神文王)의 장인이었다.<ref>조경란. [http://news.sportsseoul.com/read/ptoday/922233.htm 어긋난 ‘외사랑’이 부른 비극, 김흠돌의 난(金欽突義 鸞). 스포츠서울. 2011년 3월 3일.</ref>..
'''김흠돌의 난'''(金欽突義 鸞)은 [[신라]](新羅)에서 [[681년]] [[소판]](蘇判) 김흠돌(金欽突: 미상~[[681년]] [[9월 25일]]([[음력 8월 8일]]))이 [[파진찬]](波珍湌) 흥원(興員: 미상~[[681년]] [[9월 25일]]([[음력 8월 8일]])), [[대아찬]](大阿飡) 진공(眞功: 미상~[[681년]] [[9월 25일]]([[음력 8월 8일]])) 등과 함께 모반을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된 사건으로 [[신라]](新羅)의 왕권이 전제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중요한 사건이다. [[신문왕]](神文王)은 이를 계기로 진골(眞骨) 귀족세력을 숙청하고 전제 왕권을 강화했다. 김흠돌(金欽突)은 [[김유신]](金庾信)의 조카이자, [[김유신]](金庾信)의 사위이고, [[신문왕]](神文王)의 장인이었다.<ref>조경란. [http://news.sportsseoul.com/read/ptoday/922233.htm 어긋난 ‘외사랑’이 부른 비극, 김흠돌의 난(金欽突義 鸞). 스포츠서울. 2011년 3월 3일.</ref>..


== 각주 ==
== 각주 ==

2018년 5월 12일 (토) 15:58 판

김흠돌의 난(金欽突義 鸞)은 신라(新羅)에서 681년 소판(蘇判) 김흠돌(金欽突: 미상~681년 9월 25일(음력 8월 8일))이 파진찬(波珍湌) 흥원(興員: 미상~681년 9월 25일(음력 8월 8일)), 대아찬(大阿飡) 진공(眞功: 미상~681년 9월 25일(음력 8월 8일)) 등과 함께 모반을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된 사건으로 신라(新羅)의 왕권이 전제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중요한 사건이다. 신문왕(神文王)은 이를 계기로 진골(眞骨) 귀족세력을 숙청하고 전제 왕권을 강화했다. 김흠돌(金欽突)은 김유신(金庾信)의 조카이자, 김유신(金庾信)의 사위이고, 신문왕(神文王)의 장인이었다.[1]..

각주

  1. 조경란. [http://news.sportsseoul.com/read/ptoday/922233.htm 어긋난 ‘외사랑’이 부른 비극, 김흠돌의 난(金欽突義 鸞). 스포츠서울. 2011년 3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