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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0일 (화) 09:17 판

안양군 이항(安陽君 李㤚, 1480년 ~ 1505년)은 조선의 왕족으로,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의 서자이다. 시호는 공회(恭懷)이다.

생애

성종의 서자이자, 3남으로 생모는 귀인 정씨(貴人鄭氏)이다. 정부인은 면천군부인 능성 구씨(沔川郡夫人 綾城具氏)이다. 연산군이 생모인 폐비 윤씨 사건의 원인이 성종의 후궁인 정씨와 엄씨의 참소에 있다고 판단하여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봉안군(鳳安君) 이봉과 안양군을 이에 연루시켰다. 연산군은 봉안군과 안양군에게 생모 정씨를 때리도록 하였는데, 봉안군은 자기 어머니인 줄을 알고 있었으나, 안양군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때릴 정도로 우둔하였다.[1] 연산군은 다음날 어머니를 때린 것에 대한 상으로 안양군에게 말을 한 필 내렸다.[2] 며칠 뒤 연산군은 안양군을 제천으로 유배보내고 가산을 몰수하였고 폐비 윤씨 사건 당시 나이가 어려 일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니 더 이상 죄를 묻지 말라고 하였다.[3] 그러나 이듬해인 1505년 안양군은 사약을 받고 죽었으며 그 처첩은 다른 종친에게로 들어갔다.

사후

묘는 부인 능성 구씨와의 합장묘이며, 묘역은 양주에 있었던 것을 고종 32년(1895) 석물과 함께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산158-1번지로 이장하였다. 봉분 앞에는 제물을 놓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한 장명등이 있다. 좌우로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망주석과 문인석 등의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묘역 앞에는 신종묵이 글을 짓고, 이일형이 글씨를 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세워져 있다. 1990년 4월 30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가족관계

관련 작품

드라마

출처

  1.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안양군
  2. 《연산군일기》 52권, 10년(1504년) 3월 21일 1번째 기사
  3. 《연산군일기》 52권, 10년(1504년) 3월 30일 2번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