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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타]]에 기초하여 앙가 왕국은 대체로 비하르의 방갈푸르와 몽기르 그리고 벵갈의 일부에 해당한다. 후에 [[벵골]]의 대부분을 포함할 정도로 팽창하였다.
[[마하바라타]]에 기초하여 앙가 왕국은 대체로 비하르의 방갈푸르와 몽기르 그리고 벵갈의 일부에 해당한다. 후에 [[벵골]]의 대부분을 포함할 정도로 팽창하였다.
바스타스와 앙가의 영역사이에 마가다가 있었다. 그들은 초기에는 약한 민족이였다. 바스타스와 앙가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비두라, 판디타 자타카는 [[라자그리하]]를 앙가의 도시로기술하였다. 마하바라타도 앙가의 왕이 (가야의) 비슈누파다에서 희생된 것을 언급한다. 이것은 앙가가 초기에는 마가다를 병합하는데 성공하였음을 보인다. 그리하여 그 경계는 [[마치야]] 왕국까지 팽칭하였다.
바스타스와 앙가의 영역 사이에 [[마가다]]가 있었다. 그들은 초기에는 약한 민족이였다. 그런데 바스타스와 앙가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비두라 판디타 자타카는 [[라자그리하]]를 앙가의 도시로 기술하였다. 마하바라타도 앙가의 왕이 (가야의) 비슈누파다에서 희생된 것을 언급한다.


앙가의 성공은 오래지 못하였다. 6세기 중반에 [[마가다 제국]]의 태자 [[빔비사라]]가 마지막 앙가왕 브라흐마다타를 살해하였고 참파를 장악하였다.
이것은 앙가가 초기에는 마가다를 병합하는데 성공하였음을 보인다. 그리하여 그 경계는 [[마치야]] 왕국까지 팽칭하였다. 앙가의 성공은 오래지 못하였다. 6세기 중반에 [[마가다 제국]]의 태자 [[빔비사라]]가 마지막 앙가왕 브라흐마다타를 살해하였고 참파를 장악하였다.
빔비사라는 그곳을 그의 사령부로 하고 그의 아버지의 총독으로 그곳을 다스렸다. 그후 앙가는 마가다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빔비사라는 그곳을 그의 사령부로 하고 그의 아버지의 총독으로 그곳을 다스렸다. 그후 앙가는 마가다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2008년 6월 14일 (토) 13:56 판

마하자나파다스의 지도

앙가(अंग)에 대한 최초의 문헌은 아타르바베다로 마가다, 간다라 그리고 무자바타와 같이 언급된다.

자이나교의 프라즈나파나는 앙가와 방가를 아리아 민족의 첫 그룹으로 꼽는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앙가는 16 대국 마하자나파다스 중의 하나였는데 그것은 기원전 6세기 중앙 및 북서 인도에서 번영하였다. 앙가는 자이나교의 바그바티수트라에 고대 자나파다스의 목록에도 언급된다.

마하바라타에 기초하여 앙가 왕국은 대체로 비하르의 방갈푸르와 몽기르 그리고 벵갈의 일부에 해당한다. 후에 벵골의 대부분을 포함할 정도로 팽창하였다.

바스타스와 앙가의 영역 사이에 마가다가 있었다. 그들은 초기에는 약한 민족이였다. 그런데 바스타스와 앙가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비두라 판디타 자타카는 라자그리하를 앙가의 도시로 기술하였다. 마하바라타도 앙가의 왕이 (가야의) 비슈누파다에서 희생된 것을 언급한다.

이것은 앙가가 초기에는 마가다를 병합하는데 성공하였음을 보인다. 그리하여 그 경계는 마치야 왕국까지 팽칭하였다. 앙가의 성공은 오래지 못하였다. 6세기 중반에 마가다 제국의 태자 빔비사라가 마지막 앙가왕 브라흐마다타를 살해하였고 참파를 장악하였다. 빔비사라는 그곳을 그의 사령부로 하고 그의 아버지의 총독으로 그곳을 다스렸다. 그후 앙가는 마가다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