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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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0일 (수) 09:28 판
1969년 서독 총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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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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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서독 총선거는 서독 연방의회의 496석의 의원과 서베를린에 할당된 22석의 의원들을 선출하기 위해 1969년 9월 28일에 실시되었다. 총 33,523,064명의 유권자가 참여한 가운데 86.7%의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배경
1966년 이후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총리 하에 기독민주연합과 사회민주당 간의 대연정이 성립했다. 그러나 대연정은 마르크와 가치재정립 문제를 둔 사민당 소속 경제장관과 기민련 소속 재정장관 간의 갈등으로 사실상 끝나 있었고, 유권자들은 대연정 하에서 사실상 무시를 당하고 있는 빌리 브란트를 비롯한 사민당 장관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다.
선거 결과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수 |
---|---|---|---|
우니온 | 15,195,187 | 46.1% | 250 |
사회민주당 | 14,065,716 | 42.7% | 237 |
자유민주당 | 1,903,422 | 5.8% | 31 |
국가민주당 | 1,422,010 | 4.3% | - |
민주진보캠페인 | 197,331 | 0.6% | - |
바이에른당 | 49,694 | 0.2% | - |
유럽연방당 | 49,650 | 0.2% | - |
전독일당 | 45,401 | 0.1% | - |
자유사회연맹 | 16,371 | 0.05% | - |
중도당 | 15,933 | 0.05% | - |
독립노동당 | 5,309 | 0.01% | - |
유럽연방당 | 1,015 | 0.02% | - |
합계 | 33,523,064 |
사회민주당은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빌리 브란트 총재를 총리로 선출, 서독 최초의 사민당 총리를 탄생시킨다.
각주
- ↑ “Voter turnout by election year”. 《Website of the Federal Returning Officer's Office》. The Federal Returning Officer. 2014년 11월 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