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3·1절 발포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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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8일 (일) 13:52 판
제주 3·1절 발포사건은 1947년 3·1절에 제주에서 일어난 경찰의 발포사건이다. 이 사고로 6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1년 뒤 발생되는 제주 4·3 사건을 불러일으킨 씨앗이 되었다.
사건 경위
3·1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린 제주북국민학교 주변엔 3만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경찰은 제주 경찰 330명과 육지에서 파견된 응원 경찰 100명 등 430명으로 경비에 임하였다. 행사를 끝낸 군중은 가두 시위에 들어갔는데, 이때에 기마 경관이 탄 말에 어린이가 채어 작은 소란이 발생하였다. 기마 경관이 어린이가 채인 사실을 몰랐던지 그대로 가려고 하자 주변에 있던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무장을 한 응원경찰은 몰려오는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걸로 알고 발포하여 6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1]
주석
- ↑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2003) 107~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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