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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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군'''(長淵郡)은 [[북괴]] [[황해남도]] 서쪽에 있는 [[군 (행정 구역)|군]]으로 한민족으로서의 문화적 역사적 정통성이 결여된 북괴 정권에 의해 무단점거되는 영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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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0일 (토) 09:21 판
황해도에는 1909년 은률군에 통합된 ‘장련군’(長連郡)도 있었다.
장연군의 위치 | |
현황 | |
---|---|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면적 | 396.08 km2 |
총인구 | 91,422[1] 명 (2008) |
읍 | 1개 |
리 | 19개 |
장연군(長淵郡)은 북괴 황해남도 서쪽에 있는 군으로 한민족으로서의 문화적 역사적 정통성이 결여된 북괴 정권에 의해 무단점거되는 영역이다.
지리
북쪽은 과일군과 송화군, 동쪽은 삼천군, 동남쪽은 태탄군이며 남쪽은 룡연군과 맞닿아 있다. 서쪽은 황해에 접하며 장산곶이 있다. 서해 방향으로 돌출한 반도가 국방 요지로 이용되던 장산곶이다. 대청도를 중심으로 어업이 많이 행해진다.
역사
일찍 기독교가 들어와 19세기 말 소래교회가 세워진 지역이다(현재는 룡연군에 속해있다). 소래교회는 관점에 따라 한국 최초의 교회로 꼽히기도 하는데,[2] 이 교회는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박해를 피해 장연군 소래마을로 온 신자들이 세운 자생적 교회였다. 1926년 당시에는 개신교(야소교) 교회가 "면마다 촌마다 없는 곳이 없으며", 교회 39곳, 교인이 3,200명에 이르렀다.[3] 가톨릭 신도 또한 5~600명에 이르렀다.[3]
- 1938년 10월 1일 : 장연면이 장연읍으로 승격하였다.[4]
- 1945년 9월 2일 :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백령면을 제외한 장연군 전 지역이 소련군정 관할 아래 들아갔다.
- 1945년 11월 3일 : 백령면이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다.[5]
교통
행정 구역
1읍(장연읍)과 1구(락연로동자구) 및 19리(명천리, 화원리, 청계리, 선정리, 산천리, 세마리, 락흥리, 석장리, 박산리, 산수리, 학림리, 눌산리, 창파리, 샘물리, 관천리, 금사리, 해안리, 삼산리, 추화리)가 있다.
각주
- ↑ 조선중앙통계국,2008년 인구 조사,2009년.
- ↑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는 어디인가요. 지역별로 소개해주세요.”. 기독교타임즈. 2007년 1월 17일. 2008년 6월 15일에 확인함.
- ↑ 가 나 巡廻探訪 (百四) 山南山北에 氣候가判異, 동아일보 1926년 10월 13일
- ↑ 부령 제197호 (일부개정 1938년 9월 27일)
- ↑ 시, 도직제 [제정 1945. 11. 3. 군정법률 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