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추진협의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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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17대 대통령 선거]] 중, 박희부 부이사장 등 33명의 회원이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ref>{{뉴스 인용
[[2007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17대 대통령 선거]] 앞두고 박희부 부이사장 등 33명의 회원이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ref>{{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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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nowiki> 박근혜 캠프 장세동 장학생 뛴다 - 장세동 공작정치대상 Y, K, P, Q 정치인, 박캠프 합류</nowiki>
|제목=<nowiki> 박근혜 캠프 장세동 장학생 뛴다 - 장세동 공작정치대상 Y, K, P, Q 정치인, 박캠프 합류</nowiki>

2008년 5월 19일 (월) 13:10 판

민주화추진협의회(民主化推進協議會)는 1984년에 창설되어 1987년에 해체되었다가 2002년에 다시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정치단체이다. 약칭은 <민추협>.

1970년대 신민당의 양대 소장파로서 유신 체제에 맞서싸우다가 제5공화국에 의해 정치활동 규제 처분을 받은 김영삼김대중을 따르던 정치인들이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계기로 1985년의 12대 총선에서의 재기를 위해 1984년 5월 18일에 결성했다.

김대중-김영삼 공동대표 체제였으나, 두 김씨가 가택연금을 당한 관계로 동교동계김상현이 대표직무대행을 맡았다. 이들은 1985년의 12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활동 규제에서 해금된 김재광, 이민우, 이기택 등의 구 신민당 중진들과 함께 신한민주당을 창당했고, 신한민주당은 총선에서 총 67석을 따내 민주한국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한다.

하지만 1987년의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 내 후보단일화 실패로 동교동계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앙숙으로 돌변했고, 민추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고문으로 한 법인체를 만들어 부활했다.[1] 당시 이사장은 김상현, 김명윤이었으며 회장은 김덕룡, 김병오, 수석 부이사장은 서청원, 부이사장은 신순범, 박종웅, 이협이었고, 수석 부회장은 박광태, 부회장은 김무성, 김장곤, 이규택이었다.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희부 부이사장 등 33명의 회원이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2]

주석

  1. 홍석준. “[민주화추진협의회] 사단법인으로 재출범”. 조선일보. 2008년 5월 19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 김원섭. “ 박근혜 캠프 장세동 장학생 뛴다 - 장세동 공작정치대상 Y, K, P, Q 정치인, 박캠프 합류”. 씨앤비뉴스. 2008년 5월 19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