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추진협의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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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신민당]]의 양대 소장파로써 [[10월 유신|유신]] 체제에 맞서싸우다가 [[제5공화국]]에 의해 정치활동 규제 처분을 받은 [[김영삼]]과 [[김대중]]을 따르던 정치인들이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계기로 1985년의 [[대한민국 12대 총선|12대 총선]]에서의 재기를 위해 1983년 5월 18일에 결성했다.
1970년대 [[신민당]]의 양대 소장파로써 [[10월 유신|유신]] 체제에 맞서싸우다가 [[제5공화국]]에 의해 정치활동 규제 처분을 받은 [[김영삼]]과 [[김대중]]을 따르던 정치인들이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계기로 1985년의 [[대한민국 12대 총선|12대 총선]]에서의 재기를 위해 1983년 5월 18일에 결성했다.


김대중-김영삼 공동대표 체제였으나, 두 김씨가 가택연금을 당한 관계로 [[동교동계]]의 [[김상현]]이 대표직무대행을 맡았다. 이들은 1985년의 12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활동 규제에서 해금된 [[김재광]], [[이민우]], [[이기택]] 구 신민당 중진들과 함께 [[신한민주당]]을 창당했고, 신한민주당은 총선에서 총 67석을 따내 [[민주한국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한다.
김대중-김영삼 공동대표 체제였으나, 두 김씨가 가택연금을 당한 관계로 [[동교동계]]의 [[김상현]]이 대표직무대행을 맡았다. 이들은 1985년의 12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활동 규제에서 해금된 [[김재광]], [[이민우]], [[이기택]] 등의 구 신민당 중진들과 함께 [[신한민주당]]을 창당했고, 신한민주당은 총선에서 총 67석을 따내 [[민주한국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한다.


하지만 1987년의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 내 후보단일화 실패로 동교동계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앙숙으로 돌변했고, 민추협도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1987년의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 내 후보단일화 실패로 동교동계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앙숙으로 돌변했고, 민추협도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08년 5월 19일 (월) 11:56 판

민주화추진협의회(民主化推進協議會)는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정치단체였다. 약칭은 <민추협>.

1970년대 신민당의 양대 소장파로써 유신 체제에 맞서싸우다가 제5공화국에 의해 정치활동 규제 처분을 받은 김영삼김대중을 따르던 정치인들이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계기로 1985년의 12대 총선에서의 재기를 위해 1983년 5월 18일에 결성했다.

김대중-김영삼 공동대표 체제였으나, 두 김씨가 가택연금을 당한 관계로 동교동계김상현이 대표직무대행을 맡았다. 이들은 1985년의 12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활동 규제에서 해금된 김재광, 이민우, 이기택 등의 구 신민당 중진들과 함께 신한민주당을 창당했고, 신한민주당은 총선에서 총 67석을 따내 민주한국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부상한다.

하지만 1987년의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 내 후보단일화 실패로 동교동계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앙숙으로 돌변했고, 민추협도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