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성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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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章)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5,562명으로 조사되었으며, 한국 성씨 인구 128위다.
'''장'''(章)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5,562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128위이다. 본관은 [[거창 장씨|거창]](居昌) 단본이다.
본관은 [[거창 장씨|거창]](居昌) 단본이다.


'''[[거창 장씨]]'''(居昌 章氏)의 시조 '''장종행'''(章宗行)은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 판도판서, 예문관대제학 겸 춘추관사를 지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LST_187_033_0440|거창 장씨}}</ref>
'''[[거창 장씨]]'''(居昌 章氏)의 시조 '''장종행'''(章宗行)은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 판도판서, 예문관대제학 겸 춘추관사를 지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LST_187_033_0440|거창 장씨}}</ref>

2017년 3월 2일 (목) 22:29 판

(張, 章, 莊, 蔣)씨는 성씨의 하나이다.

베풀 장 張

중국

(張, Zhang) 성은 중국 국가 통계국의 2010년 제6차 전국인구일제조사(第六次全國人口普査)에서 약 8,480만 명으로 조사되었다. 중국 성씨 인구 순위 3위이며, 중국 인구의 7.07%를 차지한다. 산동, 하북, 하남, 사천을 비롯하여 분포도가 광범위하다. 중국의 한족소수민족의 성씨로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동남아시아, 북아메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 1억명 이상으로 분포하고 있다. 장(張)씨는 타이완 원주민중국 소수민족이 많이 사용하는 성씨로, 최소 타이완 장씨의 30% 정도는 원주민들이라고 한다.

장(張)씨의 황제 아들 청양(靑陽)이 휘(暉)를 낳았고 호성(弧星, 아홉개의 별)을 보고서 활과 화살을 제작, 호성(弧星)을 주관하여 제사하고 성을 장(張)씨라 하였다고 전한다. 장의(張儀)는 진(秦)나라 재상으로 선조 미상이다. 장량한(韓)나라 유민 출신으로 한(韓)이 진(秦)에게 패망하자 장(張)씨로 개성하였다. 삼국시대 장료(張遼)는 유목 민족 출신으로 섭(聶)씨였으나, 장(張)씨로 개성하였다. 장맹담(張孟談)은 조(趙)나라의 개국공신, 장건한(漢)나라 무제실크로드 개척자, 장비촉한(蜀漢)의 무장이다. 장궤(張軌)는 5호 16국전량(前涼)의 군주이다.

한국

(張)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92,721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9위이다. 덕수 장씨절강 장씨를 제외한 나머지 본관은 대부분 고려 때 창성된 토착 성본이라는 것이 통설이며, 선계 미상의 본이 많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본관은 고려 개국 전후에 등장한 흥덕 장씨안동 장씨이다. 인구는 시조가 각기 다른 인동 장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라남도 완도군 출신의 장보고(張寶高)는 처음 이름이 궁복(弓福)이었고, 그가 당나라에 건너간 뒤에 중국식 성인 장(張)으로 성을 삼았던 사실로 볼 때, 장보고가 최초의 장(張)씨 성을 가졌던 인물로 파악된다.[1]

  • 흥덕 장씨(興德 張氏) 시조 장유(張儒)는 후백제 상질현(尙質縣 : 現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출신으로 고려 초 광평시랑(廣評侍郞)을 지냈다. 그는 후삼국 시대 난을 피하여 오월국(吳越國)으로 건너가 중국어를 배웠고,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환국하여 고려 광종 때 예빈성(禮賓省)에 있으면서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일을 맡았다. 장유의 아들 장연우(張延祐)는 고려 현종 때 거란군이 침입해오자 왕을 호종하였고, 중추원사(中樞院事),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역임하였으며, 뒤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증되었다.[2] 흥덕 장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4명을 배출하였다.[3] 2015년 인구는 흥덕 장씨 37,423명, 흥성 장씨 21,973명으로 총 59,396명이다.
  • 안동 장씨(安東 張氏) 시조 장정필(張貞弼)은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워 삼중대광보사벽상공신 태사에 오르고 고창군에 봉해졌다. 안동 장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4] 2015년 인구는 39,939명이다.
  • 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고려 때 만든 성본으로, 시조를 달리하는 장금용(張金用)계와 장계(張桂)계, 장계임(張繼任)계가 있다. 2015년 인구는 666,652명이다.
    •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했다.
    • 시조 장계(張桂)는 고려 충렬왕 때 진현전직제학(進賢殿直提學)을 거쳐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이르렀다.
    • 시조 장계임(張繼任)은 고려 충렬왕 때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역임하고, 증 삼중대광(贈三重大匡),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춘추관사(春秋舘事)를 제수 받았다.
  • 목천 장씨(木川 張氏) 시조 장빈(張彬)은 고려 때 목천군(木川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던 당시, 백제 유민들이 순응하지 않고 백제 재건운동을 벌이자 왕건이 이 지방민에게 우(牛; 소), 상(象; 코끼리), 돈(豚; 돼지), 장(獐; 노루) 등의 성을 주었는데 후손들이 뒷날 우(于), 상(尙), 돈(頓), 장(張)으로 성씨를 바꾸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인물로 장윤문(張允文), 조선시대 무신으로 장윤(張潤)이 있다. 2015년 인구는 15,740명이다.
  • 결성 장씨(結城 張氏) 시조 장갑(張甲)은 고려 때 호장으로 그의 증손 장하(張夏)가 고려 말기 한성판윤을 지내고 결성군에 봉해졌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5명을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는 24,921명이다.
  • 단양 장씨(丹陽 張氏) 시조 장순익(張順翼)은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명을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는 44,334명이다.
  • 구례 장씨(求禮 張氏) 시조 장악(張岳)은 고려 인종(仁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봉성군(鳳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2015년 인구는 구례 장씨 15,571명, 봉성 장씨 1,670명이다.
  • 덕수 장씨(德水 張氏) 시조 장순룡(張舜龍)은 본래 위구르계 사람으로 고려 충렬왕고려에 귀화하여 첨의참리(僉議參理),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을 지내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덕수 장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3명을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는 24,185명이다.
  • 태원 장씨(太元 張氏) 시조 장문한(張文翰)은 조선 명종 21년(1566년)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거창현감(居昌縣監)을 지냈다.
  • 절강 장씨(浙江 張氏) 시조 장해빈(張海濱)은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명나라 유격장군 오유충(吳惟忠)의 휘하 병사로 조선에 왔다가 울산의 증성(甑城) 싸움에서 유탄을 맞아 귀국하지 못하고 군위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전한다. 2015년 인구는 3,987명이다.

줄 장 蔣

중국

(蔣, 병음 : Jiang)씨의 득성(得姓) 근원은 중국 춘추시대의 주나라 주공(周公)의 셋째 아들 백령(伯齡)이 하남성(河南省) 기사현(期思縣)을 장국(蔣國)으로 하사 받아 국명을 성(姓)으로 삼았다고 한다.

인물로는 삼국시대 장완, 중화민국의 국가원수 장제스가 있다.

한국

(蔣)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7,708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95위이다. 본관은 아산(牙山) 단본이다. 역사 인물로 조선 세종 때 과학자인 장영실(蔣英實)이 있다.

글 장 章

중국

(章, 병음 : Zhang)씨는 주나라 건국공신 강태공의 강씨(姜氏)에서 분파한 성씨이다. 장한(章邯)은 기원전 진나라 말기, 하북(河北)의 진(秦)나라 주력부대의 장군이다.

한국

(章)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5,562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128위이다. 본관은 거창(居昌) 단본이다.

거창 장씨(居昌 章氏)의 시조 장종행(章宗行)은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 판도판서, 예문관대제학 겸 춘추관사를 지냈다.[6]

씩씩할 장 莊

중국

(莊, 병음 : Zhuang)씨는 중국 초나라 장왕(莊王)의 후손이다. 장자(莊子)는 전국시대 송나라 출신의 사상가이다. 장교(莊蹻)는 초 장왕의 후손으로 초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기타 회족 계통과 주(朱)씨에서 개성한 장씨가 있다고 한다.

한국

(莊)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648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금천, 장연 2본이다.

  • 금천 장씨(衿川 莊氏)의 시조 장보(莊甫)는 고려 명종 때 무신으로 병부원외랑을 지내다가 거제현감으로 좌천되어 후에 귀양가서 졸하였다고 한다. 1세조 장숙(莊俶)은 조선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지냈다.
  • 1882년(고종 19년) 문과에 급제한 장석황(莊錫滉)이 『국조방목(國朝榜目)』에 기록되어 있으나 본관은 전주(全州), 거주지는 평양(平壤)으로 되어 있다. 전주 장씨는 현재 집계되지 않고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