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십육국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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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말기에 일어난 황위 계승 다툼은 엄청난 규모의 내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서진은 황족을 왕으로 봉하며 독자적으로 군대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그 결과 황위 계승권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왕이 여럿 존재하였다. 8명의 왕들이 자신들의 군대를 거느리고 전투를 벌인 이 내란을 [[팔왕의 난]]이라 부른다. 팔왕의 난은 [[306년]]에 끝났지만, 이로 인하여 서진의 국력은 크게 쇠퇴했고, 8왕의 난 당시 왕족들이 전투를 위해 중국 내지에 정착해 살던 이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함으로써 이들의 입지는 매우 커지게 되었다.
서진 말기에 일어난 황위 계승 다툼은 엄청난 규모의 내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서진은 황족을 왕으로 봉하며 독자적으로 군대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그 결과 황위 계승권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왕이 여럿 존재하였다. 8명의 왕들이 자신들의 군대를 거느리고 전투를 벌인 이 내란을 [[팔왕의 난]]이라 부른다. 팔왕의 난은 [[306년]]에 끝났지만, 이로 인하여 서진의 국력은 크게 쇠퇴했고, 8왕의 난 당시 왕족들이 전투를 위해 중국 내지에 정착해 살던 이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함으로써 이들의 입지는 매우 커지게 되었다.


이때 흉노족의 [[유연 (전조)|유연]](劉淵)이 서진의 쇠퇴를 호기로 삼아 [[304년]] 병주(并州 ; 지금의 산서성)에서 자립해 한(漢)을 세웠다. 같은해 사천(四川)에서도 [[이웅]](李雄)이 자립하여 [[성한]](成漢)을 건국하였다. 감숙(甘肅) 지방에서도 서진의 양주자사였던 [[장궤]](張軌)가 독립적인 정권[[전량]](前凉)을 세웠으며 탁발부는 [[대나라|대]](代)를 건국하였다. 이로써 오호십육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때 흉노족의 [[유연 (전조)|유연]]이 서진의 쇠퇴를 호기로 삼아 [[304년]] 병주(并州 ; 지금의 산서성)에서 자립해 한(漢)을 세웠다. 같은해 사천(四川)에서도 [[이웅]]이 자립하여 [[성한]]을 건국하였다. 감숙(甘肅) 지방에서도 서진의 양주자사였던 [[장궤]]가 독립적인 정권 [[전량]]을 세웠으며 탁발부는 [[대나라|대]](代)를 건국하였다. 이로써 오호십육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유연은 갈족 출신의 석륵과 한인 출신 장군 [[왕미]](王彌)를 시켜 병주 일대를 공략하고, [[308년]] 황제를 칭했으나, [[310년]]에 죽고 아들 [[유화 (흉노)|유화]](劉和)가 이를 계승하였다. 유화는 인망이 없어 동생 [[유총]](劉聰)이 제위를 찬탈했다. 유총은 [[311년]]에 [[낙양]](洛陽)을 함락하고 [[서진 회제]](懷帝)를 붙잡았다. 이것을 [[영가의 난]]이라고 부른다. 그 후 [[장안]](長安)에서 [[서진 민제|민제]](愍帝)가 옹립되었으나, [[316년]]에 유총에게 패하여 서진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에 서진의 왕족이었던 [[사마예]]가 남쪽의 [[건업]](建業)에서 진을 재흥시키니 이 나라를 [[동진]](東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유연은 갈족 출신의 석륵과 한인 출신 장군 [[왕미]]를 시켜 병주 일대를 공략하고, [[308년]] 황제를 칭했으나, [[310년]]에 죽고 아들 [[유화 (흉노)|유화]]가 이를 계승하였다. 유화는 인망이 없어 동생 [[유총]]이 제위를 찬탈했다. 유총은 [[311년]]에 [[낙양]]을 함락하고 [[서진 회제]]를 붙잡았다. 이것을 [[영가의 난]]이라고 부른다. 그 후 [[장안]]에서 [[서진 민제|민제]]가 옹립되었으나, [[316년]]에 유총에게 패하여 서진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에 서진의 왕족이었던 [[사마예]]가 남쪽의 [[건업]]에서 진을 재흥시키니 이 나라를 [[동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은 유총 사후 후계자 쟁탈전에서 [[유요 (전조)|유요]](劉曜)가 승리하여 즉위하였으며 국호를 조(趙)로 고쳤다. 그러나 하북 정벌에 나섰던 석륵이 자립하여 하북·하남·산동을 장악하여 낙양을 경계로 유요 정권과 화북을 양분하게 되었다. 석륵 또한 국호를 조(趙)라고 하였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유요 정권은 전조, 석륵 정권은 [[후조]](後趙)라고 불렀다. [[328년]] 유요가 낙양을 탈환하기 위해 출병했으나, 석륵의 조카 [[석호 (후조)|석호]](石虎)에게 대패하여 포로가 된 뒤 살해당하니, 전조는 국력이 쇠퇴하여 후조에게 멸망하였다.
한은 유총 사후 후계자 쟁탈전에서 [[유요 (전조)|유요]]가 승리하여 즉위하였으며 국호를 조(趙)로 고쳤다. 그러나 하북 정벌에 나섰던 석륵이 자립하여 하북·하남·산동을 장악하여 낙양을 경계로 유요 정권과 화북을 양분하게 되었다. 석륵 또한 국호를 조(趙)라고 하였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유요 정권은 전조, 석륵 정권은 [[후조]]라고 불렀다. [[328년]] 유요가 낙양을 탈환하기 위해 출병했으나, 석륵의 조카 [[석호 (후조)|석호]]에게 대패하여 포로가 된 뒤 살해당하니, 전조는 국력이 쇠퇴하여 후조에게 멸망하였다.


화북 대부분을 장악한 후조에서는 [[333년]] 석륵이 죽고 [[석홍]](石弘)이 즉위했으나 석호가 그를 폐위하고 스스로 즉위했다. 석호는 매우 포악하고 잔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석호는 수도를 업(鄴)으로 옮겼고, 이 시기가 후조의 최전성기였다. [[349년]]에 석호가 죽자 석륵의 양자 석민(石閔)이 경쟁자를 제거하고 즉위하였다. 석민은 이후 본래 성인 염씨(冉氏)로 돌아가고 [[염위]](冉魏)를 세웠다. (염위는 워낙 단명한 왕조라 16국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후조는 [[351년]]에 염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염위는 이민족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였고 다수의 한인이 갈족을 상대로 대량의 학살을 벌였다.
화북 대부분을 장악한 후조에서는 [[333년]] 석륵이 죽고 [[석홍]]이 즉위했으나 석호가 그를 폐위하고 스스로 즉위했다. 석호는 매우 포악하고 잔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석호는 수도를 업(鄴)으로 옮겼고, 이 시기가 후조의 최전성기였다. [[349년]]에 석호가 죽자 석륵의 양자 석민이 경쟁자를 제거하고 즉위하였다. 석민은 이후 본래 성인 염씨(冉氏)로 돌아가고 [[염위]]를 세웠다. (염위는 워낙 단명한 왕조라 16국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후조는 [[351년]]에 염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염위는 이민족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였고 다수의 한인이 갈족을 상대로 대량의 학살을 벌였다.


한편, [[337년]] 요서(遼西)에 근거지를 둔 모용부가 [[모용황]](慕容皝)을 중심으로 [[전연]](前燕)을 세우고, [[349년]] 이후 후조 멸망의 혼란을 틈타 중원에 진출하였다. 전연은 [[352년]]에 염위를 멸망시켰으며, 같은 시기 섬서(陝西) 지방에서 저족의 [[부건]](苻健)이 장안에서 [[전진 (오호십육국)|전진]](前秦)을 건국([[351년]])하였다.
한편, [[337년]] 요서(遼西)에 근거지를 둔 모용부가 [[모용황]]을 중심으로 [[전연]]을 세우고, [[349년]] 이후 후조 멸망의 혼란을 틈타 중원에 진출하였다. 전연은 [[352년]]에 염위를 멸망시켰으며, 같은 시기 섬서(陝西) 지방에서 저족의 [[부건]]이 장안에서 [[전진 (오호십육국)|전진]]을 건국([[351년]])하였다.


화북이 혼란해지자 동진의 실권자 [[환온]](桓溫)은 [[347년]], 성한을 멸망시켜 촉(蜀) 지역을 장악하고 북벌을 감행하여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패퇴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전진의 국력이 증가해 [[360년]]에는 화북을 전연과 양분하였다. 부건의 뒤를 계승한 [[부견]](苻堅)은 뛰어난 인물로 한인 [[왕맹]](王猛)을 등용해 국력을 키우며 대대적인 정벌로 각 나라를 정벌해 [[376년]] 화북을 완전히 통일하였다.
화북이 혼란해지자 동진의 실권자 [[환온]]은 [[347년]], 성한을 멸망시켜 촉(蜀) 지역을 장악하고 북벌을 감행하여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패퇴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전진의 국력이 증가해 [[360년]]에는 화북을 전연과 양분하였다. 부건의 뒤를 계승한 [[부견]]은 뛰어난 인물로 한인 [[왕맹]]을 등용해 국력을 키우며 대대적인 정벌로 각 나라를 정벌해 [[376년]] 화북을 완전히 통일하였다.


[[383년]] 부견은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동진 정벌을 계획하여 100만이라 부르는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였다가 [[비수의 전투]]에서 동진군에게 대패한다. 이 전투의 패배로 전진의 국력은 단번에 쇠퇴하고, 각 민족이 제각기 독립하기 시작했다. 하북·하남·산동 일대에는 [[후연]](後燕)이 건국되고, 병주에는 대(代 ; [[북위 (북조)|북위]](北魏))와 [[서연]](西燕)이 세워졌다. 섬서에는 [[후진 (십육국)|후진]](後秦)과 [[서진]](西秦)이 생겼고, 감숙에는 [[후량 (십육국)|후량]](後凉)이 태어났다. 그 외에도 감숙 지방에는 여러 민족에 의해 약소국가들이 할거하였다.
[[383년]] 부견은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동진 정벌을 계획하여 100만이라 부르는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였다가 [[비수의 전투]]에서 동진군에게 대패한다. 이 전투의 패배로 전진의 국력은 단번에 쇠퇴하고, 각 민족이 제각기 독립하기 시작했다. 하북·하남·산동 일대에는 [[후연]](後燕)이 건국되고, 병주에는 대(代 ; [[북위 (북조)|북위]](北魏))와 [[서연]]이 세워졌다. 섬서에는 [[후진 (십육국)|후진]]과 [[서진]]이 생겼고, 감숙에는 [[후량 (십육국)|후량]]이 태어났다. 그 외에도 감숙 지방에는 여러 민족에 의해 약소국가들이 할거하였다.


이들 가운데 [[모용수]](慕容垂)의 후연과 [[요장]](姚萇)의 후진이 가장 강력했다. 후연은 서연을 멸망시키고, 후진은 전진을 멸망시켜 영토를 확대하였고 다시 화북을 동서로 양분하였으나, 탁발부의 북위와 흉노의 [[혁련발발]](赫連勃勃)이 건국한 하(夏)가 이들을 누르고 강대해졌다. [[395년]]에 북위에 패배한 후연은 [[남연]](南燕)과 [[북연]](北燕)으로 분열되었고, 대부분의 영토를 북위에게 빼앗겼다. 후진 또한 하에게 공격을 당해 영토를 빼앗기다가 [[417년]] 동진의 [[유유]](劉裕)에게 멸망당했다. 유유는 [[410년]]에 남연도 멸망시켰고, 그 공적으로 선양을 받아 [[송 (남조)|송]](宋)을 건국한다.
이들 가운데 [[모용수]]의 후연과 [[요장]]의 후진이 가장 강력했다. 후연은 서연을 멸망시키고, 후진은 전진을 멸망시켜 영토를 확대하였고 다시 화북을 동서로 양분하였으나, 탁발부의 북위와 흉노의 [[혁련발발]]이 건국한 하(夏)가 이들을 누르고 강대해졌다. [[395년]]에 북위에 패배한 후연은 [[남연]]과 [[북연]]으로 분열되었고, 대부분의 영토를 북위에게 빼앗겼다. 후진 또한 하에게 공격을 당해 영토를 빼앗기다가 [[417년]] 동진의 [[유유]]에게 멸망당했다. 유유는 [[410년]]에 남연도 멸망시켰고, 그 공적으로 선양을 받아 [[송 (남조)|송]](宋)을 건국한다.


하는 유유가 물러간 뒤 장안을 탈취해 북위와 함께 화북을 양분했으나, [[427년]] 북위에게 패한 뒤 쇠퇴를 거듭하다 [[431년]]에 멸망당하고, 북위는 [[436년]]에 북연을, [[439년]]에 [[북량]](北凉)을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니 이로써 오호십육국시대는 끝나고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가 시작되게 되었다.
하는 유유가 물러간 뒤 장안을 탈취해 북위와 함께 화북을 양분했으나, [[427년]] 북위에게 패한 뒤 쇠퇴를 거듭하다 [[431년]]에 멸망당하고, 북위는 [[436년]]에 북연을, [[439년]]에 [[북량]]을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니 이로써 오호십육국시대는 끝나고 [[남북조시대]]가 시작되게 되었다.


== 오호십육국시대의 사회 ==
== 오호십육국시대의 사회 ==

2017년 2월 1일 (수) 22:40 판

五胡十六國
국가 (참조) 오호 십육국 시대의 국가
수도 (참조) 오호 십육국 시대 각국의 도읍
군주 (참조) 오호 십육국 시대의 역대 군주
성립 304년
전조성한의 건국.
종결 439년
북위북량을 멸하고 화북 통일.
서진 시기, 북방에 있던 각 민족 분포도.
서진 시기, 북방에 있던 각 민족 분포도.

오호 십육국 시대(五胡十六國時代: 304년 ~ 439년)는 삼국을 통일한 서진(西晉)이 멸망한 후, 5개의 비한족을 비롯한 16개의 국가가 회수(淮水) 북부에 여러 나라를 세우며 난립하던 시대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조(前趙: 304 ~ 329)가 건국된 304년부터 북위(北魏: 386 ~ 534)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까지를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명칭의 유래

5호(五胡)는 흉노(匈奴), 선비(鮮卑), 저(氐), 갈(羯), 강(羌) 등 다섯 가지의 이민족(胡:비한족을 격하시켜 부르는 말)를 가리키는 말인데, 갈족은 흉노의 일파로서 따로 구분하기엔 무리가 있다. 갈족의 석륵(石勒)이 후조(後趙)을 건국한 것이나 선비족에서 탁발부(拓跋部), 모용부(慕容部), 독발부(禿髮部), 걸복부(乞伏部)가 각자 독립적으로 나라를 건국한 것을 생각하면, 이들 북방 민족의 구체적 수를 헤아리는 데 별 의미가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5라는 숫자는 오행설(五行說)에 결부되어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오호는 “비한족계 여러 민족”이란 말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16국이란 말은 북위 말엽의 사관 최홍(崔鴻)이 쓴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에서 유래하였으며, 실제로 이 시기에 세워진 나라의 숫자는 16개가 넘는다.

변천 과정

위진 남북조 시대(220~589) 왕조들의 계통도: 위진 시대는 220~420, 남북조 시대는 439~589

서진 말기에 일어난 황위 계승 다툼은 엄청난 규모의 내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서진은 황족을 왕으로 봉하며 독자적으로 군대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그 결과 황위 계승권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왕이 여럿 존재하였다. 8명의 왕들이 자신들의 군대를 거느리고 전투를 벌인 이 내란을 팔왕의 난이라 부른다. 팔왕의 난은 306년에 끝났지만, 이로 인하여 서진의 국력은 크게 쇠퇴했고, 8왕의 난 당시 왕족들이 전투를 위해 중국 내지에 정착해 살던 이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함으로써 이들의 입지는 매우 커지게 되었다.

이때 흉노족의 유연이 서진의 쇠퇴를 호기로 삼아 304년 병주(并州 ; 지금의 산서성)에서 자립해 한(漢)을 세웠다. 같은해 사천(四川)에서도 이웅이 자립하여 성한을 건국하였다. 감숙(甘肅) 지방에서도 서진의 양주자사였던 장궤가 독립적인 정권 전량을 세웠으며 탁발부는 (代)를 건국하였다. 이로써 오호십육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유연은 갈족 출신의 석륵과 한인 출신 장군 왕미를 시켜 병주 일대를 공략하고, 308년 황제를 칭했으나, 310년에 죽고 아들 유화가 이를 계승하였다. 유화는 인망이 없어 동생 유총이 제위를 찬탈했다. 유총은 311년낙양을 함락하고 서진 회제를 붙잡았다. 이것을 영가의 난이라고 부른다. 그 후 장안에서 민제가 옹립되었으나, 316년에 유총에게 패하여 서진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에 서진의 왕족이었던 사마예가 남쪽의 건업에서 진을 재흥시키니 이 나라를 동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은 유총 사후 후계자 쟁탈전에서 유요가 승리하여 즉위하였으며 국호를 조(趙)로 고쳤다. 그러나 하북 정벌에 나섰던 석륵이 자립하여 하북·하남·산동을 장악하여 낙양을 경계로 유요 정권과 화북을 양분하게 되었다. 석륵 또한 국호를 조(趙)라고 하였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유요 정권은 전조, 석륵 정권은 후조라고 불렀다. 328년 유요가 낙양을 탈환하기 위해 출병했으나, 석륵의 조카 석호에게 대패하여 포로가 된 뒤 살해당하니, 전조는 국력이 쇠퇴하여 후조에게 멸망하였다.

화북 대부분을 장악한 후조에서는 333년 석륵이 죽고 석홍이 즉위했으나 석호가 그를 폐위하고 스스로 즉위했다. 석호는 매우 포악하고 잔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석호는 수도를 업(鄴)으로 옮겼고, 이 시기가 후조의 최전성기였다. 349년에 석호가 죽자 석륵의 양자 석민이 경쟁자를 제거하고 즉위하였다. 석민은 이후 본래 성인 염씨(冉氏)로 돌아가고 염위를 세웠다. (염위는 워낙 단명한 왕조라 16국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후조는 351년에 염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염위는 이민족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였고 다수의 한인이 갈족을 상대로 대량의 학살을 벌였다.

한편, 337년 요서(遼西)에 근거지를 둔 모용부가 모용황을 중심으로 전연을 세우고, 349년 이후 후조 멸망의 혼란을 틈타 중원에 진출하였다. 전연은 352년에 염위를 멸망시켰으며, 같은 시기 섬서(陝西) 지방에서 저족의 부건이 장안에서 전진을 건국(351년)하였다.

화북이 혼란해지자 동진의 실권자 환온347년, 성한을 멸망시켜 촉(蜀) 지역을 장악하고 북벌을 감행하여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패퇴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전진의 국력이 증가해 360년에는 화북을 전연과 양분하였다. 부건의 뒤를 계승한 부견은 뛰어난 인물로 한인 왕맹을 등용해 국력을 키우며 대대적인 정벌로 각 나라를 정벌해 376년 화북을 완전히 통일하였다.

383년 부견은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동진 정벌을 계획하여 100만이라 부르는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였다가 비수의 전투에서 동진군에게 대패한다. 이 전투의 패배로 전진의 국력은 단번에 쇠퇴하고, 각 민족이 제각기 독립하기 시작했다. 하북·하남·산동 일대에는 후연(後燕)이 건국되고, 병주에는 대(代 ; 북위(北魏))와 서연이 세워졌다. 섬서에는 후진서진이 생겼고, 감숙에는 후량이 태어났다. 그 외에도 감숙 지방에는 여러 민족에 의해 약소국가들이 할거하였다.

이들 가운데 모용수의 후연과 요장의 후진이 가장 강력했다. 후연은 서연을 멸망시키고, 후진은 전진을 멸망시켜 영토를 확대하였고 다시 화북을 동서로 양분하였으나, 탁발부의 북위와 흉노의 혁련발발이 건국한 하(夏)가 이들을 누르고 강대해졌다. 395년에 북위에 패배한 후연은 남연북연으로 분열되었고, 대부분의 영토를 북위에게 빼앗겼다. 후진 또한 하에게 공격을 당해 영토를 빼앗기다가 417년 동진의 유유에게 멸망당했다. 유유는 410년에 남연도 멸망시켰고, 그 공적으로 선양을 받아 (宋)을 건국한다.

하는 유유가 물러간 뒤 장안을 탈취해 북위와 함께 화북을 양분했으나, 427년 북위에게 패한 뒤 쇠퇴를 거듭하다 431년에 멸망당하고, 북위는 436년에 북연을, 439년북량을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니 이로써 오호십육국시대는 끝나고 남북조시대가 시작되게 되었다.

오호십육국시대의 사회

민족 융합설

화하족춘추전국시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민족적 자아의식은 없었다. 한대에 이르러 중원의 사람들이 국가 강역 내 일개 공동 민족이며, 그 외 지역의 민족은 야만족이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한족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생겨났다.

중국 사학자들은, 오호십육국시대는, 중국의 북방 민족이 중원으로 대량 유입된 시기로서, 이후 중국 역사에서 볼 수 없는 대규모의 민족 융합이 일어난 시기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동북쪽에는 오래된 유목 민족 두 개가 존재하였다: 흉노족과 동호족이 그것이다. 흉노족의 한 갈래는 한대유럽까지 진출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한 갈래(갈(羯) 포함)는 오호십육국 시기 철저하게 한족에 유입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사회 발전

중국 북방 유목 민족이 중국 중원으로 진출한 시기,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지역으로의 인구 이동이 있었다. 당시 수 년간 이어진 전란 때문이었다. 익주(益州) 사천(四川) 지방, 전량의 하서주랑, 전연의 요하 유역으로는 대량의 중원 난민이 이주해왔다. 실크로드가 이어진 하서의 고장(姑臧) 지방은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주요 국가

십육국

국호 민족 황제 명수 건국 군주 멸망 군주 존속 기간 연수 영토 범위 도읍 멸망 국가
,
전조
흉노족 6 유연 유희 한(漢)304년318년 26년 섬서(陝西) 위수(渭水) 유역, 산서(山西), 하남(河南), 하북(河北), 감숙(甘肅) 일부.

1.평양(平陽)
2.장안(長安)

후조
조(趙)318년329년
성한 저족 5 이웅 이세 성(成)306년338년 43년 사천(四川) 동부, 운남(雲南) 일부, 귀주(貴州) 일부 성도(成都) 동진
한(漢)338년347년
전량 한족 8 장궤 장천석 314년376년 63년 감숙, 영하(寧夏) 서부, 신강(新疆) 동부 고장(姑臧) 전진
후조 갈족 6 석륵 석지 319년351년 33년 하북, 하남, 산서, 산동(山東), 섬서, 강소(江蘇) 일부, 안휘(安徽) 일부, 감숙 일부, 요녕(遼寧) 일부.

1.양국(襄國)
2.업(鄴)

염위
전연 선비족 3 모용황 모용위 337년370년 34년 하북, 하남, 산동, 산서, 섬서, 감숙, 안휘, 강소, 요녕

1.용성(龍城)
2.

전진
전진 저족 6 부건 부숭 351년394년 44년 하북, 하남, 산동, 산서, 안휘, 섬서, 강소, 사천, 귀주, 호북, 요녕, 감숙, 영하 서부, 신강 동부 장안 후진, 서진
후연 선비족 7 모용수 모용희 384년407년 24년 하북, 산동, 산서, 하남 일부, 요녕 일부. 중산(中山) 북연
후진 강족 3 요장 요홍 384년417년 34년 감숙, 섬서, 산서, 하남 장안 동진
서진 선비족 4 걸복국인 걸복모말 385년400년
409년431년
39년 감숙 동부 금성(金城)
후량 저족 4 여광 여륭 389년403년 14년 감숙 동부, 영하 일부, 청해(靑海) 일부, 신강 일부. 고장 후진
남량 선비족 3 독발오고 독발욕단 397년414년 18년 청해, 감숙 서부 낙도(樂都) 서진
남연 선비족 3 모용덕 모용초 398년410년 13년 산동, 하남 일부. 광고(廣固) 동진
서량 한족 3 이고 이순 400년421년 22년 감숙 서부와 신강 일부. 돈황(敦煌) 북량
북량 흉노족 3 단업 저거목건 397년439년 41년 감숙 서부, 영하 일부, 신강 일부, 청해 일부. 장액(張掖) 북위, 유연
철불부(鐵弗部) 3 혁련발발 혁련정 407년431년 25년 섬서, 내몽골 일부. 통만성(統萬城) 토욕혼, 북위
북연 고구려족, 한족 3 고운 풍홍 407년436년 30년 요녕, 하북 북부 화룡(和龍) 북위

십육국 이외

국호 민족 황제 명수 건국 군주 멸망 군주 존속 기간 연수 영토 범위 도읍 멸망 국가
전구지 저족 9 양무수 양찬 296년 - 371년 76년 무도(武都), 음평(陰平) 구지 전진
후구지 저족 7 양정 양보치 385년 - 443년 59년 농서(隴西)한중(漢中), 천수(天水) 일대. 구지 북위
탕창 강족 7 양근 양미정 ? - 564년 감숙 남부 탕창성(宕昌城) 서위
등지 강족 12 상서치 상첨항 430년 - 554년 125년 구지 이서, 탕창 이남, 사천 북부 등지성(鄧至城) 서위
염위 한족 2 염민 염지 350년 - 352년 3년 하남, 하북 북부, 산서 남부 전연
후촉 한족 1 초종 초종 405년 - 413년 9년 사천 대부분. 성도 동진
환초 한족 3 환현 환진 403년 - 405년 3년 장강(長江) 중·하류 지역. 1.건강(建康)

2.강릉(江陵)

동진
적위 정령족 2 적요 적교 388년 - 392년 5년 하남 일부. 하남 화 현 후연
선비족 8 탁발의로 탁발십익건 315년 - 376년 62년 내몽골 중부 1.운중(雲中)

2.성락(盛樂)

전진
서연 선비족 7 모용홍 모용영 384년 - 394년 11년 산서 대부분. 장자(長子) 후연
우문부 선비족 7 우문막괴 우문일두귀 302년 - 344년 43년 요동 서부와 요서 북부를 아우르는 지역. 도읍을 수시로 옮겼기에 특정 도읍은 없음으로 표시. 전연
단부 선비족 9 단일육권 단감 310년 - 357년 48년 하북 북부 영지(令支) 전연

참고 문헌

  • 『五胡十六国 中国史上の民族大移動』三崎良章著(東方書店 『東方選書』36 2002年 ISBN 4-497-20201-1

틀:중국 오호십육국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