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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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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비와 대한제국의 후비}}


[[분류:1598년 태어남]]
[[분류:1598년 태어남]]

2016년 11월 15일 (화) 17:50 판

소용 임씨
숙원, 소원, 소용
이름
임애영
별호 숙원 임씨
소원 임씨
신상정보
출생일 1598년
출생지 조선
사망일 1628년
사망지 조선
국적 조선
왕조 조선
부친 임몽정
모친 임몽정의 첩
배우자 광해군
자녀 없음

소용 임씨(昭容 任氏, 1598년[1] ~ 1628년[2])는 조선의 제15대 광해군후궁이다. 본명은 애영(愛英)이다.[3]

생애

1598년에 태어나 열세 살 되던 1610년에 궁중에 들어왔다. 본관풍천이다.[4] 임몽정의 딸이자 임취정의 조카로, 어머니는 임몽정의 첩이다.[5] 한편 임수정의 딸이라는 말도 있다.[6] 광해군의 후궁으로, 품계는 정3품 소용이었다. 언제 소용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613년(광해군 5년) 음력 12월 30일의 《광해군일기》 기사에 그녀를 “소용 임씨”로 지칭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인 것은 분명한 듯 하다[7].

임씨는 용모가 매우 뛰어나고 아첨을 잘 하여, 계략이 뛰어난 김개시 및 문서 처리 능력이 훌륭했던 소용 정씨 등과 함께 광해군의 총애가 “후궁에서 으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7]

한편 임씨는 인조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자, 인조의 명에 따라 광해군의 유배지에서 함께 있으면서 그 시중을 들었다.[8][9] 이후 그녀에 대해 폐주의 후궁이라 하여 사사가 논의되었으나, 광해군 재위 시절 이귀김자점이 고변을 당할 때 두 사람을 옹호한 공이 있어 죽음을 면하고 계속 해서 광해군의 곁에서 그 시중을 들 수 있었다.[5]

1628년에 유배지에서 광해군을 모시다가 잡혀 와 사형에 처해졌다. 광해군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가족 관계

  • 아버지 : 임몽정 (任夢正, 생몰년 미상)
  • 어머니 : 임몽정의 첩
    • 남편 :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 (光海君, 1575년~1641년, 재위:1608년~1623년)
  • 숙부 : 임취정 (任就正, 1561년~1628년)

출처

  1. 《연려실기술》권21 〈폐주 광해군 고사본말〉- 광해의 난정(亂政) 부분에 “경술년(1610년) 나이 열세 살에 그 외조모가 연줄을 타서 궁중에 바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2. 《속잡록》무진년 상 숭정(崇禎) 원년(1628년) 기록에 “임소원(任昭媛)을 잡아 사형에 처했는데 그는 폐주가 거느리던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3. 《조선왕조실록》인조 18권, 6년(1628 무진 / 명 천계(天啓) 8년) 1월 3일(을축) 6번째기사.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취정〉
  5. 《조선왕조실록》인조 3권, 1년(1623 계해 / 명 천계(天啓) 3년) 9월 14일(신축) 1번째기사
  6. 《조선왕조실록》광해군 70권, 5년(1613 계축 / 명 만력(萬曆) 41년) 9월 25일(경진) 4번째기사
  7. 《조선왕조실록》광해 73권, 5년(1613 계축 / 명 만력(萬曆) 41년) 12월 30일(계축) 2번째기사
  8. 《조선왕조실록》광해 187권, 15년(1623 계해 / 명 천계(天啓) 3년) 3월 13일(계묘) 8번째기사
  9. 《조선왕조실록》인조 1권, 1년(1623 계해 / 명 천계(天啓) 3년) 3월 25일(을묘) 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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