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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감독 ==
== 영화 감독 ==
* 《[[은행나무 침대]]》, 1996 - [[한석규]], [[심혜진]], [[진희경]],[[신현준]] 등
* 《[[은행나무 침대]]》, 1996 - [[한석규]], [[심혜진]], [[진희경]], [[신현준 (배우)|신현준]] 등
* 《[[쉬리 (영화)|쉬리]]》, 1998 -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 [[김윤진]] 등
* 《[[쉬리 (영화)|쉬리]]》, 1998 -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 [[김윤진]] 등
* 《[[태극기 휘날리며]]》, 2004 - [[장동건]], [[원빈]], [[이은주]] 등
* 《[[태극기 휘날리며]]》, 2004 - [[장동건]], [[원빈]], [[이은주]] 등
* 《[[My Way]]》, 2010 -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 등
* 《[[마이 웨이 (2011년 영화)|My Way]]》, 2010 -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 등


== 수상 ==
== 수상 ==

2016년 2월 10일 (수) 00:09 판

강제규
출생1962년 11월 27일(1962-11-27)(61세)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시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직업영화 감독
활동 기간1996년 ~ 현재
배우자박성미
자녀슬하1남

강제규(姜帝圭, 1962년 11월 27일 ~ )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다.

1996년 직접 시나리오를 쓴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하였고, 이후 대한민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기념비적 작품 《쉬리》를 감독하였다. 2004년 초에는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동원한 《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부인은 탤런트 박성미이다.

학력

생애

어린 시절

강제규는 1962년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태어났다.

영화 감독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한 강제규는 1981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서울극장의 합동영화사에서 시행한 감독 공채에 합격하여 조감독이 되었으며, 1989년에는 대학교 동기 동창인 탤런트 박성미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계속된 생활고는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대한민국의 영화 산업의 실태에 대해서도 깊은 회의를 가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강우석 감독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등의 각본을 쓰면서 감독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감독 데뷔작은 1996년 설날에 개봉한 진희경한석규 주연의 《은행나무 침대》였다. 총 6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 작품은 강제규에게 대종상청룡영화제 신인 감독상을 안겨 주었다.

《쉬리》의 대성공

첫 작품으로 대중의 주목을 끈 강제규의 2번째 작품은 바로 《쉬리》였다. 그는 북한의 식량난 문제를 접하고 이 작품을 기획하였다. 《은행나무 침대》가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소재로 하였다면, 이 영화는 남·북 분단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24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쉬리》는 8개월 간의 제작 기간을 거쳐 1999년 설 연휴에 개봉되었다. 종영일까지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쉬리》는 당시의 흥행 관념을 완전히 바꾸며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세계적인 대흥행작 《타이타닉》의 대한민국 흥행 기록 450만 명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이 기록은 《친구》가 개봉하기 전까지 깨지지 않았으며, 2009년 현재까지 통산 12위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한 일본에 130만 달러로 수출을 한 것은 물론, 뉴욕 국제 영화제에서도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강제규에게 부와 명성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가져다 주었으며, 이를 계기로 그는 영화사 강제규필름을 설립하게 된다. 이후 그는 강제규필름을 통해 시나리오 작가, 감독을 모집하고, 제작비를 지원하는 등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의 대성공 이후 많은 기업들이 '제2의 쉬리' 제작 시 거금의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강제규는 한동안 강제규필름을 통한 후배 양성과 영화 각본 작업에만 집중하였으며, '제2의 쉬리'도 언제 제작될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2004년 초에 《쉬리》와 마찬가지로 남북 분단(특히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하였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얼마 전인 2003년 말, 《실미도》가 1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사상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였으나, 《태극기 휘날리며》는 다시 한 번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개척했다는 극찬을 받으며 곧바로 이보다 많은 117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다시 한번 역대 최다 흥행 기록을 경신하였다. 흥행 뿐만 아니라, 대종상에서 미술상, 촬영상, 음향상을 수상하였다.

이 외에도 강제규는 이 작품을 통해 제 50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 최고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이란의 유명 영화제인 파즈르 국제 영화제에도 초청작으로 상영되었다.

박스 오피스 모조(Box Office Mojo)에 따르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세계적으로 6870만 달러(미국에서는 110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이는 2004년의 전 세계 영화 중 75위, 대한민국 영화 중에서는 최고 기록이다.

영화 감독

수상

각주


참고 문헌

  • 편집부 엮음, 《시사인물사전 1》 pp 12~17, 인물과사상사, 2000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