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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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이름= 大統合民主新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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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 통합신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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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손학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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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당사 = {{국기나라|대한민국}} [[서울시|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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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0일 (월) 00:0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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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 통합신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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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색 | 초록, 노랑 | ||
이념 | 자유주의 생태주의 | ||
스펙트럼 | 중도좌파 | ||
당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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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손학규 |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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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 2007년 8월 5일 | ||
해산 | 2008년 2월 11일 | ||
병합한 정당 | 열린우리당 | ||
분당 이전 정당 | 열린우리당, 새천년민주당 | ||
통합된 정당 | 민주당 | ||
내부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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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당사 | 대한민국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5-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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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p.kr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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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大統合民主新黨, 약칭: 통합신당, 신당)은 대한민국의 중도개혁세력임을 주장하는 제 세력이, 민주·개혁·평화·중도·미래세력의 대통합이라는 명분으로 2007년 8월 5일에 창당한 정당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80명, 당시 중도통합민주당이었던 민주당 탈당파 4명,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주축으로 한 한나라당의 일부 탈당세력과 시민사회세력을 주축으로 출범했다. 출범 직후 민주당은 유사한 당명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2007년 8월 20일 신당 출범으로 상대적으로 약해진 열린우리당과의 합당을 통해 의석수 143석으로 원내 제1당이 되었다. 2008년 2월 11일 민주당과 통합을 선언하였고, 통합민주당으로 합당하여 소멸하였다.
창당 과정
- 2007년 8월 5일 창당 (의석수 84석 원내 제2당, 당시 제1당은 한나라당)
- 2007년 8월 20일 열린우리당과 합당 (의석수 143석 원내 제1당, 제2당은 한나라당)
- 2007년 8월 21일 고발대표인 부산대 정외과 대학원생 이상윤씨를 비롯한 학생과 시민 1109명에 의해 정치자금법 17조를 악용하여 국고보조금을 타낸 사기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당함[1].[2]
- 2007년 11월 2일 강길부의원이 탈당하였다. (142석으로 감소)
- 2007년 11월 12일 민주당과 합당 합의했으나 무산됨.
- 2007년 12월 19일 정동영을 후보로 2007년 대선에 나섰으나 당시 후보였던 이명박에게 참패함.
- 2008년 2월 11일 민주당과 통합 선언, 당명을 통합민주당(약칭: 민주당)으로 정함.
주요 활동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을 흡수한 후, 정동영을 후보로 내세워 2007년 대선에 참여했다. 부단히 친(親)노무현 이미지를 벗기위한 명분없는 차별화를 시도했으나, 이에 대한 국민들에 대한 반감이 작용하여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배하였다. 이로 인해 이른바 '친노(친 노무현)' 세력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를 당 대표로 세우고, 이명박 신정부에 대한 견제 활동을 계속 하였다. 그 후 민주당과 통합하여 통합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역대 지도부
대수 | 역대 대표 | 직함 | 임기 | 비고 |
---|---|---|---|---|
1 | 오충일 | 대표최고위원 | 2007년 8월 5일 ~ 2008년 1월 10일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참패로 사퇴 |
2 | 손학규 | 대표최고위원 | 2008년 1월 11일 ~ 2008년 2월 15일 | 통합민주당으로 신설합당 |
- 원내대표
- 최고위원
- 사무총장
- 정책위원회 의장
- 대변인
강령
이 정당은, 그들의 강령 전문에서 '민주', '평화', '통합', '환경'을 4대 기본가치로 삼고, 강령과 정책비전(아래 참조)을 규정했다.[3]
대통령 선거 기록
연도 | 선거 | 후보자 | 득표 | 득표율 | 결과 | 당락 | ||
---|---|---|---|---|---|---|---|---|
2007년 | 17대 | 정동영 | 6,174,681표 |
|
2위 | 낙선 |
역대 전당대회
대통합민주신당 창당대회
2007년 8월 5일, 통합신당 창당대회는 오충일 창당준비위원장을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했다.
대통합민주신당-열린우리당 합당수임기관 합동회의
2007년 8월 20일, 통합신당과 우리당 합당수임기관 합동회의는 열린우리당의 대통합민주신당 흡수합당을 결의하였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선출 경선
유시민 | 손학규 | 정동영 | 이해찬 | 합 계 | |
---|---|---|---|---|---|
제주울산 | 2890 | 4089 | 5265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 3404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 |
강원충북 | 사퇴 | 5279 | 8645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파일:민03.png 5511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파일:민03.png |
광주전남 | 19906 | 26065 | 파일:민10.png파일:민03.png 9826 | 파일:민10.png파일:민03.png | |
부산경남 | 4508 | 6689 | 6614 | ||
모바일 1차 | 7649 | 7004 | 6285 | ||
모바일 2차 | 21359 | 19288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 10535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 | |
모바일 3차 | 41023 | 35846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 28464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 | |
여론조사 | 17525 | 21850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 10216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 | |
잔여지역 | 47461 | 86332 | 파일:민10.png파일:민03.png 29273 | 파일:민10.png파일:민03.png | |
총합 | 사퇴 | 168799 | 216984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 110128 | 파일:민10.png파일:민10.png |
경선 초반 제기되어오던 정동영후보 측의 조직동원 및 관권선거 의혹으로 10월 2일 경선 잠정 중단 사태까지 발생했다. 10월 9일부터 경선이 재개되며 손학규,이해찬 후보의 요청으로 지역투표가 일괄적으로 치뤄졌고, 정동영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대통합민주신당 중앙위원회
득표순위 | 이름 | 득표수 | 득표율 | 비고 |
---|---|---|---|---|
1 | 손학규 | 164 | 53.6% | 대표최고위원 |
2 | 우원식 | 55 | 18% | |
3 | 김호진 | 46 | 15% | |
기타 | 41 | 13.4% | ||
총투표수 | 306 |
2008년 1월 11일, 통합신당 중앙위는 후보등록 없이 무작위투표를 통해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오충일 대표를 대신할 신임 대표로 선출했다.
2008년 2월 13일 대통합민주신당 최고위원회의
2008년 2월 13일, 통합신당 최고위는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한 통합민주당 창당을 의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