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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8일 (토) 20:40 판
김원룡(金元龍, 1922년 8월 24일 ~ 1993년 11월 14일)은 대한민국의 문인화가이자 고고미술사학자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고고학자들 중 한 명이었다.[1] 1945년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뉴욕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김정학, 김재원, 김정배 등과 함께 고고학 분야 뿐 아니라 역사학, 미술사, 건축학, 그리고 한국 철학에 영향을 미친 현대 대한민국 학계의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다.
약력
1945년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였을 때 석사 논문을 작성하였는데, 이는 신라 도자기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뉴욕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귀국했다. 1961년 서울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었으며 그 이후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71년 국립박물관장으로 재직시 무령왕릉 발굴을 총지휘했다.
업적
1947년 한국산악회의 독도 학술 조사에 참가하는 등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울릉도 고고학적 조사를 실시했다.
수상
- 서울시 문화상(1961)
- 3·1문화상
- 홍조근로훈장(1971)
- 학술원 공로상(1981)
- 인촌상(1988)
- 일본 후쿠오카 아세아 문화상(1993)
- 1993년에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
- 제4회 호암상 예술상(사후인 1994.3.22. 시상)
저서
고고학과 미술사학계에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다음과 같은 저술을 남겼다.[2]
- 일반 저서
- 《신라토기의 연구》(1960)
- 《한국미술사》(1968)
- 《한국고고학개설》(1973)
- 《한국문화의 기원》(1977)
- 《한국미의 탐구》(1978)
- 《한국벽화고분》(1979)
- 《한국고미술의 이해》(1981)
- 《한국고고학연보》(1974~87)
- 《신라토기》(1981)
- 《한국고고학연구》(1987)
- 《한국미술사연구》(1987)
- 《신판한국미술사》(1993) 외
- 보고서
- 《울릉도》(1963)
- 《무령왕릉》(1973)
- 《신창리 옹관묘지》(1963)
- 《풍납리 포함층조사 보고서》(1967)
- 《흔암리 주거지》(1973)
- 《석촌동 발굴조사보고》(1975)
- 수필집
- 《삼불수상록》(1970)
- 《노학생의 향수》(1978)
- 《하루하루와의 만남》(1985)
- 유고집
- 《나의 인생 나의 학문》(1996)
각주
- ↑ 김원룡 - 네이버 인물
- ↑ 김원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바깥 고리
- 김원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