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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용''' (扶餘勇, ? ~ ?)은 [[백제]]의 왕자이며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들이다. [[663년]] 9월의 이른바 백촌강(白村江)전투에서 [[백제]]부흥군을 지휘하면서 왜군과 함께 나당연합군에 저항하다가 패배하여 무리를 이끌고 왜로 망명하였다. 백촌강의 패전 후 [[고구려]]로 망명한 형인 [[부여풍]](扶餘?)과 내응(內應)하면서 [[백제]]의 재건을 꾀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포착한 [[당나라]]는 [[664년]] 4월에 [[웅진도독부]]의 사신을 왜에 파견하여 [[백제]]유민의 동태를 살피는 한편 [[고구려]] 정벌을 위한 후고(後顧)를 덜기 위하여 관계개선을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백제]]의 [[백제]] |
'''부여용''' (扶餘勇, ? ~ ?)은 [[백제]]의 왕자이며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들이다. [[663년]] 9월의 이른바 백촌강(白村江)전투에서 [[백제]]부흥군을 지휘하면서 왜군과 함께 나당연합군에 저항하다가 패배하여 무리를 이끌고 왜로 망명하였다. 백촌강의 패전 후 [[고구려]]로 망명한 형인 [[부여풍]](扶餘?)과 내응(內應)하면서 [[백제]]의 재건을 꾀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포착한 [[당나라]]는 [[664년]] 4월에 [[웅진도독부]]의 사신을 왜에 파견하여 [[백제]]유민의 동태를 살피는 한편 [[고구려]] 정벌을 위한 [[후고]](後顧)를 덜기 위하여 관계개선을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백제]]의 [[백제 부흥운동]]은 좌절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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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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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3일 (금) 23:15 판
부여용 (扶餘勇, ? ~ ?)은 백제의 왕자이며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들이다. 663년 9월의 이른바 백촌강(白村江)전투에서 백제부흥군을 지휘하면서 왜군과 함께 나당연합군에 저항하다가 패배하여 무리를 이끌고 왜로 망명하였다. 백촌강의 패전 후 고구려로 망명한 형인 부여풍(扶餘?)과 내응(內應)하면서 백제의 재건을 꾀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포착한 당나라는 664년 4월에 웅진도독부의 사신을 왜에 파견하여 백제유민의 동태를 살피는 한편 고구려 정벌을 위한 후고(後顧)를 덜기 위하여 관계개선을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백제의 백제 부흥운동은 좌절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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