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
편집 요약 없음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출처 필요|날짜=2010-7-9}} |
{{출처 필요|날짜=2010-7-9}} |
||
{{정리}} |
{{정리 필요|날짜=2010-7-9}} |
||
'''베르겐 벨젠'''(Bergen-Belsen) 또는 '''벨젠'''(Belsen)은 1943년 독일 나치스가 전쟁포로와 유대인을 수용하기 위하여 설치한 수용인원 4만 1000명 규모의 수용소로서, 이곳에서 3만 7000명에 이르는 수용자들이 굶주림과 중노동, 질병 등으로 죽어갔다. 그 중에는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도 있다. |
'''베르겐 벨젠'''(Bergen-Belsen) 또는 '''벨젠'''(Belsen)은 1943년 독일 나치스가 전쟁포로와 유대인을 수용하기 위하여 설치한 수용인원 4만 1000명 규모의 수용소로서, 이곳에서 3만 7000명에 이르는 수용자들이 굶주림과 중노동, 질병 등으로 죽어갔다. 그 중에는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도 있다. |
||
2015년 8월 17일 (월) 10:07 판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0년 7월) |
이 문서는 위키백과의 편집 지침에 맞춰 다듬어야 합니다. (2010년 7월 9일) |
베르겐 벨젠(Bergen-Belsen) 또는 벨젠(Belsen)은 1943년 독일 나치스가 전쟁포로와 유대인을 수용하기 위하여 설치한 수용인원 4만 1000명 규모의 수용소로서, 이곳에서 3만 7000명에 이르는 수용자들이 굶주림과 중노동, 질병 등으로 죽어갔다. 그 중에는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도 있다.
이 곳은 1945년 4월 15일 영국 군대에 의하여 나치스 포로수용소 중 가장 먼저 해방되었다. 나치스친위대(SS) 사령관인 ‘벨젠의 야수’ 요제프 크라머는 종전 후 영국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