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럭서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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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브레히트]]
*[[조지 브레히트]]


== 시기 ==
1960년대

== 지역 ==
전세계적, 독일에서 시작되어 뉴욕과 북구의 수도인 여러 도시로 곧 확산되었다.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비슷한 활동이 독자적으로 펼쳐졌다.

== 내용 ==
"플럭서스"란 용어는 1961년에 뉴욕의 갤러리 A/G에서 행한 일련의 강연회를 알리는 초청장 문구에서 조지 매키우너스가 처음 사용했다.
여러 나라의 언어에서 '흐름'이나 '변화'란 의미를 냎하는 플럭서스 미술은 양식이라기 보다는 마음에 상태에 가깝다.
플럭서스 미술가에게는 사회적 목적이 미적 목적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플럭서스의 주된 목적은 부르주아적인, 판에 박은 미술과 생활을 혼란시키는 것이었다. 게릴라 극장과 거리공연 그리고 전자음악연주회 같은 초기의 플럭서스 이벤트는 대게 1960년대와 연결지어 생각되는 성적 충동과 무정부주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플럭서스는 대중문화에 의존하지 않고 아방가르드 미술가와 음악가의 시인들이 창조해 나갈 새로운 문화를 추구했다.
플럭서스 미술가들은 전형적인 제작방식은 다양한 재료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이었다.
많은 미술형태가 동시에 그리고 불협화음처럼 전개되는 플럭서스 이벤트는 동시대에 등장한 액션이나 후에 나오는 해프닝과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보다 유머스럽고 개방적인 경향을 특징으로 한다.
플럭서스 이벤트는 산책하거나 나무를 태우는 단순한 동작을 지시하는, 하이쿠 길이의 시를 낭독하는 집단에서부터, 미니텔레비전으로 만들어진 브래지어 외에는 거의 걸친 것이 없는 샬로트 무어맨이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무어맨과 백남준의 공동작품같이 대중의 관심을 끈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플럭서스는 공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레이 존슨 같은 플럭서스 미술가들은 ‘우편미술’을 최초로 시도했다. 이 우편 미술은 전달방법으로 이용하는 미술로, 엽서 형태의 콜라주와 그밖에 소규모 작품을 예로 들 수 있다.
플럭서스에서 탄생시킨 또 다른 미술은 때로는 우편미술과 협력하여 행해지는 ‘고무도장미술’이다. 플럭서스 미술작품은 기상천외하며 부조리한 것 같지만, 고정관념을 타파하려는 그 밑에 깔린 태도는 후대의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아트의 등장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2014년 12월 3일 (수) 23:58 판

플럭서스(Fluxus)는 1960년대의 국제적인 전위예술가 집단이다. 그 시초는 리투아니아미국 예술가 조지 마치우나스가 사용한 플럭서스라는 용어에서 유래한다. 플럭서스라는 이름은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 플럭스(flux)에서 유래했다.


관련 예술가



틀:서양 예술 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