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란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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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연대표]]》에 의하면, 란도는 [[사비나]]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이름은 타이노라고 한다.<ref name=Longo>Umberto Longo, [http://www.treccani.it/enciclopedia/papa-landone_%28Dizionario-Biografico%29/ "Landone, papa"], ''Dizionario Biografico degli Italiani'' '''63''' (2004).</ref> 《교황 연대표》는 또한 그가 22일 4주 동안 재임했다고 전한다. [[파르파 수도원]]에서 지속적으로 추가한 교황 목록은 이와 차이점을 보이는데, 12세기 [[카티노의 그레고리오]]는 저서 연대기 《파르펜세 연대기》에 이 목록을 인용하였다. 여기에서는 란도의 재임기간을 26일 4주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랭스의 플로도아르트]]가 기록한 6개월 10일에 보다 근접한 숫자다. 란도의 재임기간이 종식된 것은 라벤나의 한 문헌에 나온 대로 914년 2월 5일에서 그의 후임자인 [[교황 요한 10세]]가 선출된 같은 해 3월 말이나 4월 초 사이로 추정된다.<ref name=Lon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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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도는 사실상 당시 로마의 실권자였던 [[투스쿨룸 백작 테오필락트 1세]]의 추대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ref>"Lando", ''The Oxford Dictionary of Popes'', ed. J. N. D. Kelly,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121.</ref> 테오필락트의 가족들은 교황청을 사실상 장악하여 모든 것을 하나하나 통제하였으며, 특히 테오필락트는 교황청의 재정을 담당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또한 로마의 군대와 원로원 역시 그들의 손아귀 아래 놓여 있었다.<ref name=Lon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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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도는 고대 사비니아 가문 출신이며 테오필락투스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특히 테오필락투스는 [[교황 포르모소]]에 의해 로마의 재정을 담당하는 직책을 받아 로마에서 세력가로 성장하였고 특히 아내인 [[테오도라 (10세기)|테오도라]]와 딸 [[마로치아]]의 권세가 두드러졌다. 이 여인들은 반세기 동안 교황 후보자들을 총괄하다시피 하였는데 이 시기를 이른바 [[창부정치]](''Pornokrates'')라고 부른다. 이 비참한 시기의 대부분의 교황들처럼 란도의 교황직도 6개월 단명으로 끝났으며 이 기간에 이루어진 일들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란도는 귀족 가문, 특히 로마의 마로치아의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였다. |
란도는 고대 사비니아 가문 출신이며 테오필락투스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특히 테오필락투스는 [[교황 포르모소]]에 의해 로마의 재정을 담당하는 직책을 받아 로마에서 세력가로 성장하였고 특히 아내인 [[테오도라 (10세기)|테오도라]]와 딸 [[마로치아]]의 권세가 두드러졌다. 이 여인들은 반세기 동안 교황 후보자들을 총괄하다시피 하였는데 이 시기를 이른바 [[창부정치]](''Pornokrates'')라고 부른다. 이 비참한 시기의 대부분의 교황들처럼 란도의 교황직도 6개월 단명으로 끝났으며 이 기간에 이루어진 일들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란도는 귀족 가문, 특히 로마의 마로치아의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였다. |
2014년 11월 9일 (일) 11:43 판
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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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 아나스타시오 3세 |
후임자 | 요한 10세 |
교황 란도(라틴어: Lando PP., 이탈리아어: Papa Lando)는 제121대 교황(재위: 913년 7월/8월 - 914년 2월/3월[1])이다. 이른바 암흑 시대(904-964)라고 불리는 시기에 즉위한 대부분의 교황들처럼 란도의 교황직 역시 단명으로 끝났으며 이 기간에 이루어진 일들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란도는 2013년 교황 프란치스코가 선출되기 전까지 전임 교황들의 이름을 물려받지 않고 독자적인 이름을 교황명으로 선택한 마지막 교황이기도 하다.[2]
《교황 연대표》에 의하면, 란도는 사비나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이름은 타이노라고 한다.[3] 《교황 연대표》는 또한 그가 22일 4주 동안 재임했다고 전한다. 파르파 수도원에서 지속적으로 추가한 교황 목록은 이와 차이점을 보이는데, 12세기 카티노의 그레고리오는 저서 연대기 《파르펜세 연대기》에 이 목록을 인용하였다. 여기에서는 란도의 재임기간을 26일 4주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랭스의 플로도아르트가 기록한 6개월 10일에 보다 근접한 숫자다. 란도의 재임기간이 종식된 것은 라벤나의 한 문헌에 나온 대로 914년 2월 5일에서 그의 후임자인 교황 요한 10세가 선출된 같은 해 3월 말이나 4월 초 사이로 추정된다.[3]
란도는 사실상 당시 로마의 실권자였던 투스쿨룸 백작 테오필락트 1세의 추대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4] 테오필락트의 가족들은 교황청을 사실상 장악하여 모든 것을 하나하나 통제하였으며, 특히 테오필락트는 교황청의 재정을 담당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또한 로마의 군대와 원로원 역시 그들의 손아귀 아래 놓여 있었다.[3]
란도는 고대 사비니아 가문 출신이며 테오필락투스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특히 테오필락투스는 교황 포르모소에 의해 로마의 재정을 담당하는 직책을 받아 로마에서 세력가로 성장하였고 특히 아내인 테오도라와 딸 마로치아의 권세가 두드러졌다. 이 여인들은 반세기 동안 교황 후보자들을 총괄하다시피 하였는데 이 시기를 이른바 창부정치(Pornokrates)라고 부른다. 이 비참한 시기의 대부분의 교황들처럼 란도의 교황직도 6개월 단명으로 끝났으며 이 기간에 이루어진 일들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란도는 귀족 가문, 특히 로마의 마로치아의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였다.
주석
- ↑ Pietro Fedele, "Ricerche per la storia di Rome e del papato al. sec. X", Archivo della Reale Società Romana di Storia Patria, 33 (1910): 177–247.
- ↑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경우, 전임 교황들인 교황 요한 23세와 교황 바오로 6세의 이름을 모두 계승하여 하나의 이름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아니다.
- ↑ 가 나 다 Umberto Longo, "Landone, papa", Dizionario Biografico degli Italiani 63 (2004).
- ↑ "Lando", The Oxford Dictionary of Popes, ed. J. N. D. Kelly,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121.
전임 아나스타시오 3세 |
제121대 교황 913년 7월/8월 - 914년 2월/3월 |
후임 요한 10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