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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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 의하면 성격이 간교하여 [[승려]]를 사칭하였다 한다. 일찍이 [[승려]]가 되었다가 [[천추궁]](千秋宮)에 드나들며 당시 [[고려 경종|경종]]의 비이자 태후인 [[헌애왕후]]와 추문이 있어 [[고려 성종|성종]]이 그를 처형하려 했다가 멀리 장배(杖配)하였다. [[고려 목종|목종]]이 즉위한 후 [[헌애왕후|천추태후]](千秋太后, [[헌애왕후]])에 의해 다시 개경으로 소환하여 합문통사사인 벼슬을 주었고, 이후 몇해 안 되어 왕의 존중과 총애를 받다가 우복야 겸 삼사사로 승진했다. 태후와 왕의 총애 하에 전횡하게 된다.
[[고려사]]에 의하면 성격이 간교하여 [[승려]]를 사칭하였다 한다. 일찍이 [[승려]]가 되었다가 [[천추궁]](千秋宮)에 드나들며 당시 [[고려 경종|경종]]의 비이자 태후인 [[헌애왕후]]와 추문이 있어 [[고려 성종|성종]]이 그를 처형하려 했다가 멀리 장배(杖配)하였다. [[고려 목종|목종]]이 즉위한 후 [[헌애왕후|천추태후]](千秋太后, [[헌애왕후]])에 의해 다시 개경으로 소환하여 합문통사사인 벼슬을 주었고, 이후 몇해 안 되어 왕의 존중과 총애를 받다가 우복야 겸 삼사사로 승진했다. 태후와 왕의 총애 하에 전횡하게 된다.


[[1003년]](혹은 그 이전)에 [[헌애왕후|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불의의 아들을 낳고 그를 책봉하고자 [[고려 현종|대량원군 왕순]](大良院君 王詢)을 살해할 모의를 하다가 실패하였으며, 다시 유일한 혈통인 [[고려 목종|목종]]을 해하려다가 성공치 못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개성특급시|개경]] 근처의 사찰에 자신의 부하들을 승려로 위장하여 숨긴 뒤 그들을 사찰 안에서 병력으로 키워서 거병하기도 했다.
[[1003년]](혹은 그 이전)에 [[헌애왕후|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불의의 아들을 낳고 그를 책봉하고자 [[고려 현종|대량원군 왕순]](大良院君 王詢)을 살해할 모의를 하다가 실패했으며, 다시 유일한 혈통인 [[고려 목종|목종]]을 해하려다가 성공치 못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개성특급시|개경]] 근처의 사찰에 자신의 부하들을 승려로 위장하여 숨긴 뒤 그들을 사찰 안에서 병력으로 키워서 거병하기도 했다.


[[강조의 정변]]으로 [[고려 현종|왕순]]([[고려 현종]])이 즉위하자 김치양은 그의 아들과 함께 처형되고, 그의 일당과 [[헌애왕후|천추태후]]의 친척 [[이주정]](李周禎) 등은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강조]]는 [[고려 목종|목종]]과 [[헌애왕후|천추태후]]를 충주로 내쫓아 도중에 [[고려 목종|목종]]을 죽였고, 이에 [[헌애왕후|천추태후]]는 [[황주군|황주]](黃州)에 숨었다.
[[강조의 정변]]으로 [[고려 현종|왕순]]([[고려 현종]])이 즉위하자 김치양은 그의 아들과 함께 처형되고, 그의 일당과 [[헌애왕후|천추태후]]의 친척 [[이주정]](李周禎) 등은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강조]]는 [[고려 목종|목종]]과 [[헌애왕후|천추태후]]를 충주로 내쫓아 도중에 [[고려 목종|목종]]을 죽였고, 이에 [[헌애왕후|천추태후]]는 [[황주군|황주]](黃州)에 숨었다.

2014년 8월 7일 (목) 06:46 판

김치양(金致陽, ? ~ 1009년)은 고려 시대의 문신(文臣), 무신(武臣), 권신(權臣), 정치가(政治家)이다. 불교 승려 시절 법명송조(松祚)이다. 본관은 서흥(瑞興)이고 종교는 불교이며, 목종의 어머니 헌애왕후(獻哀王后) 황보씨(皇甫氏)의 외족(外族)이다.

생애

고려사에 의하면 성격이 간교하여 승려를 사칭하였다 한다. 일찍이 승려가 되었다가 천추궁(千秋宮)에 드나들며 당시 경종의 비이자 태후인 헌애왕후와 추문이 있어 성종이 그를 처형하려 했다가 멀리 장배(杖配)하였다. 목종이 즉위한 후 천추태후(千秋太后, 헌애왕후)에 의해 다시 개경으로 소환하여 합문통사사인 벼슬을 주었고, 이후 몇해 안 되어 왕의 존중과 총애를 받다가 우복야 겸 삼사사로 승진했다. 태후와 왕의 총애 하에 전횡하게 된다.

1003년(혹은 그 이전)에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불의의 아들을 낳고 그를 책봉하고자 대량원군 왕순(大良院君 王詢)을 살해할 모의를 하다가 실패했으며, 다시 유일한 혈통인 목종을 해하려다가 성공치 못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개경 근처의 사찰에 자신의 부하들을 승려로 위장하여 숨긴 뒤 그들을 사찰 안에서 병력으로 키워서 거병하기도 했다.

강조의 정변으로 왕순(고려 현종)이 즉위하자 김치양은 그의 아들과 함께 처형되고, 그의 일당과 천추태후의 친척 이주정(李周禎) 등은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강조목종천추태후를 충주로 내쫓아 도중에 목종을 죽였고, 이에 천추태후황주(黃州)에 숨었다.

관련 작품

TV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