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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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대동종약원 현조약기를 근거로 일부 내용을 바로 잡습니다. 이억기 장군은 전주이씨 덕천군파에 해당하는 분이나 기존 위키백과에 양녕대군파로 오기되어 있어 바로 잡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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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기'''(李億祺, [[1561년]] [[9월 3일]] ~ [[1597년]] [[8월 27일]])는 [[조선]] 중기의 왕족 출신 무신(武臣), 군인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 [[자 (이름)|자]]는 경수(景受), [[호 (이름)|시호]]는 의민(毅愍)이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6JOb_A1561_1_0010016}}</ref>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이순신]], [[원균]], [[권율]] 등과 함께 왜군 수군과 교전 중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명령에 의하여 출정했다가 전사했다. 사후 [[증직|증]] [[자헌대부]](정2품)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완흥군(完興君)에 [[추봉]]되었다. |
'''이억기'''(李億祺, [[1561년]] [[9월 3일]] ~ [[1597년]] [[8월 27일]])는 [[조선]] 중기의 왕족 출신 무신(武臣), 군인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 [[자 (이름)|자]]는 경수(景受), [[호 (이름)|시호]]는 의민(毅愍)이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6JOb_A1561_1_0010016}}</ref>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이순신]], [[원균]], [[권율]] 등과 함께 왜군 수군과 교전 중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명령에 의하여 출정했다가 전사했다. 사후 [[증직|증]] [[자헌대부]](정2품)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완흥군(完興君)에 [[추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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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 [[임진왜란]] 때는 전라우도 수군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가 되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李舜臣),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원균]](元均)과 연합함대를 구성한 뒤 [[조선]] 수군의 기동타격군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일본]] 함대와의 여러 해전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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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 충무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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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1554년)|이순신]] : 친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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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군 (왕손)|서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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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4일 (목) 20:33 판
이억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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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61년 조선 한성부 |
사망 | 1597년 조선 칠천량 해전 |
사인 | 전사 (화기에 의해 사망)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별칭 | 자는 경수(景受), 호는 송봉(松峯), 시호는 의민(毅愍) |
학력 | 선조조 무과 |
직업 | 무신, 군인 |
종교 | 유교 (성리학) |
부모 | 이연손 |
친척 | 조선 2대 국왕 정종의 10째 아들인 덕천군의 후손이며, 신종군의 손자 심주군(沁州君) 연손(連孫)의 아들이다. , 이순신 (친족) |
이억기(李億祺) |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한성부 |
---|---|
사망지 | 칠천량해전 |
복무 | 조선 |
복무기간 | 1578년 ~ 1597년 |
최종계급 | 종2품:가선대부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종2품급) |
주요 참전 | 임진왜란 |
기타 이력 | 증 자헌대부(정2품) 병조판서(정2품) |
이억기(李億祺, 1561년 9월 3일 ~ 1597년 8월 27일)는 조선 중기의 왕족 출신 무신(武臣), 군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수(景受), 시호는 의민(毅愍)이다.[1]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이순신, 원균, 권율 등과 함께 왜군 수군과 교전 중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명령에 의하여 출정했다가 전사했다. 사후 증 자헌대부(정2품)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완흥군(完興君)에 추봉되었다.
선조의 종친이며 정종의 10째 아들 덕천군의 후손이다.
생애
이억기는 1561년 정종의 10째 아들 덕천군의 후손인 이연손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무예가 뛰어났으며 17세 때 사복시내승(司僕寺內乘)이 되고 이후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경흥부사(慶興府使), 온성부사 등 국방상의 요직을 역임하여 북방의 여진족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무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1591년 임진왜란 때는 전라우도 수군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가 되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李舜臣),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원균(元均)과 연합함대를 구성한 뒤 조선 수군의 기동타격군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일본 함대와의 여러 해전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조선 정부와 원균의 무리한 공격 명령을 받고 휘하의 함대를 이끌고 일본군을 공격하다가 칠천량 해전에서 패하여 최호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사후에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이 되어 증 자헌대부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고 완흥군(完興君)으로 추봉되었다. 의민(毅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의민공(毅愍公)이 되었다. 1600년 여수의 충민사(忠愍祠)에 이순신과 함께 제향되었다.
연관인물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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