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행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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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행위'''(間諜行爲, Espionage)는 적대 세력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 불법으로 적의 정보를 얻는 [[첩보]]활동을 의미한다. 특정 국가 또는 단체의 정보를 수집, 정탐하여 자국이나 자신의 단체에 제공한다. 대체적으로 첩보는 합법적인 활동을 의미하지만, 간첩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자를 '''간첩'''이라 하며, 상황이나 관점에 따라 '''공작원'''(工作員), '''스파이'''(spy), '''비밀요원'''(秘密要員, secret agent) 등 여러 호칭으로 불린다. 활동 분야는 정치, 군사, 산업 분야 등 여러 분야이다. 특히 산업관련 특허나 설계도 등을 빼어서 다른 나라나 다른회사에 넘기는 자를 [[산업스파이]]라고 호칭하며 국외로 빼돌리는 경우 대한민국에서는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국가정보원]]이 이를 수사관리하고 있다.

'''간첩 행위'''(間諜行爲, Espionage)는 적대 세력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 불법으로 적의 정보를 얻는 [[첩보]]활동을 의미한다. 특정 국가 또는 단체의 정보를 수집, 정탐하여 자국이나 자신의 단체에 제공한다. 대체적으로 첩보는 합법적인 활동을 의미하지만, 간첩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자를 '''간첩'''이라 하며, 상황이나 관점에 따라 '''공작원'''(工作員), '''스파이'''(spy), '''비밀요원'''(秘密要員, secret agent) 등 여러 호칭으로 불린다. 활동 분야는 정치, 군사, 산업 분야 등 여러 분야이다. 특히 산업관련 특허나 설계도 등을 빼어서 다른 나라나 다른회사에 넘기는 자를 [[산업스파이]]라고 호칭하며 국외로 빼돌리는 경우 대한민국에서는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국가정보원]]이 이를 수사관리하고 있다.


[[구약성경|구약성서]]의 [[여호수아]]에도 여리고성에서 활동한 스파이들(성서에서는 정탐꾼)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전쟁사]]에서 스파이의 역사는 길다.
[[구약성경|구약성서]]의 [[여호수아]]에도 여리고성에서 활동한 스파이들(성서에서는 정탐꾼)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전쟁사]]에서 스파이의 역사는 길다.

2014년 5월 8일 (목) 11:53 판

간첩 행위(間諜行爲, Espionage)는 적대 세력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 불법으로 적의 정보를 얻는 첩보활동을 의미한다. 특정 국가 또는 단체의 정보를 수집, 정탐하여 자국이나 자신의 단체에 제공한다. 대체적으로 첩보는 합법적인 활동을 의미하지만, 간첩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자를 간첩이라 하며, 상황이나 관점에 따라 공작원(工作員), 스파이(spy), 비밀요원(秘密要員, secret agent) 등 여러 호칭으로 불린다. 활동 분야는 정치, 군사, 산업 분야 등 여러 분야이다. 특히 산업관련 특허나 설계도 등을 빼어서 다른 나라나 다른회사에 넘기는 자를 산업스파이라고 호칭하며 국외로 빼돌리는 경우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이를 수사관리하고 있다.

구약성서여호수아에도 여리고성에서 활동한 스파이들(성서에서는 정탐꾼)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전쟁사에서 스파이의 역사는 길다.

스파이들은 앞으로 곧 과거 어느 때보다 독립적인 외부청부인과 사립탐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같은 "정보의 외주화"를 위한 기초는 이미 '정치적 리스크 분석'에서 '기술 정보 조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소규모 사설 흥신소의 확산에 의해 마련되고 있다. 그중 대부분이 전직 고위관리나 정보기관 요원을 고용하고 있다. CIA 국장을 지낸 콜비는 CIA를 그만둔 후 워싱턴에서 독자적인 회사를 설립했다. 콜비는 "감정사업은 정보업무와 비슷한 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1]

한국

오래된 건물 벽에 쓰여 있는 거동이상자 신고안내문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 발생한 간첩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여러 차례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 간첩

북한 내 강경파가 게릴라 세력을 대량 남파한 시기인 1960년대 말이 무장간첩사건의 정점이었다. 31명의 무장 게릴라청와대 습격을 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건의 가담자 중 김신조만 살아남았다. 울진삼척 등지에서도 간첩 사건이 있었다.
  • 전향 간첩이 가족 문제로 다시 간첩 활동을 하는 예가 있었다.[2]
  • 2010년 북한의 지령을 받고 간첩 행위를 한 전직 한총련 간부가 불구속 기소되었다.[3]

대한민국측 간첩

1990년 이후 주요 간첩 관련 사건은 다음과 같다.

  • 1992년 10월 황인오 사건 -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이선실에게 포섭되어, 1990년 입북한 뒤 북측의 지령으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결성하였다.
  • 1992년 10월 김낙중 사건 -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과 관련, 남파공작원으로부터 공작금 210만달러를 받고 지령에 따라 민중당에 입당하였다.
  • 1994년 7월 안재구 등 남조선 지하당 구국전위 사건 - 일본에 파견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뒤 구국전위를 구성하여, 공작금 2억9천만원 수수. 국내 정치, 노동, 학원가 상황을 북측에 보고하였다.
  • 1997년 11월 서울대 고영복 교수 등 부부간첩단 사건 - 고 교수는 1961년 북한에 포섭된 후 36년간 최정남 씨 부부 등 북한 공작원 6명을 접촉하며 고정간첩으로 활동하였다.
  • 1999년 5월 범청학련 남측본부 정책실장 이우신 인터넷이용 간첩사건 - 범민련, 범청학련 북측본부 및 조총련에, 미국의 5027 작전계획 등 군사기밀과 국내 군(軍) 훈련 상황을 인터넷 등으로 북에 넘겼다.
  • 2003년 8월 민주노동당 고문 강태운 사건 - 일본거주 공작원인 박춘근에게 포섭되어, 10회에 걸쳐 민노당 관련 자료 및 국내정세를 분석, 우송하였다. 국보법상 간첩, 회합통신, 금품수수 등으로 징역 6년에 자격정지 4년, 추징금 2000여만원이 선고되었다.
  • 2008년 8월 27일 30대 여간첩 사건 - 북한에서 위장탈북하고 경찰관과 결혼한 30대 여간첩 원정화가 군기밀을 E메일로 통해 북한으로 빼돌렸다.[5]

같이 보기

주석

  1.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384면
  2. 박성규 기자. "북에 있는 가족 때문에"… 전향 간첩의 변절”. 뉴시스. 2010년 8월 20일에 확인함. 
  3. 전성훈 기자. “北 지령받고 간첩활동한 한총련 前간부 첫 적발”. 연합뉴스. 2010년 11월 14일에 확인함. 
  4. 한홍구, 대한민국史 4, 197쪽
  5. 김형운, 오명근 기자. “위장탈북 30대 女간첩 검거”.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