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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llang|uk|Львів}}, {{llang|pl|Lwów|르부프}}, {{llang|ru|Львов|리보프}}, {{llang|de|Lemberg|렘베르크}}, {{llang|it|Leopoli|레오폴리}}, {{llang|la|Leopolis|레오폴리스}}, {{llang|hy|Լվով|리보프}})는 [[우크라이나]] 서부의 도시이고 인구는 약 83만명이다. [[리비우 주]]의 주도이고 [[폴란드]]와의 국경으로부터 70km지점에 위치해 있다. 역사 지구는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온난한 대륙성 기후로 1월의 평균 기온은 ―4도, 7월의 평균 기온은 18도이다. 연간의 강수량은 660mm이고 여름에는 물이 부족하다.
'''리비우'''({{llang|uk|Львів}}, {{llang|pl|Lwów|르부프}}, {{llang|ru|Львов|리보프}}, {{llang|de|Lemberg|렘베르크}}, {{llang|la|Leopolis|레오폴리스}}, {{llang|hy|Լվով|리보프}})는 [[우크라이나]] 서부의 도시이고 인구는 약 83만명이다. [[리비우 주]]의 주도이고 [[폴란드]]와의 국경으로부터 70km지점에 위치해 있다. 역사 지구는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온난한 대륙성 기후로 1월의 평균 기온은 ―4도, 7월의 평균 기온은 18도이다. 연간의 강수량은 660mm이고 여름에는 물이 부족하다.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의 [[갈리치아의 다닐로|다닐로]] 왕이 [[13세기]]에 건설하여 아들 레우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그래서 [[라틴어]] 이름은 '레오폴리스'이다). 중세와 초기근대에는 [[폴란드 왕국]], 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주요 도시로 성장하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분할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하에서는 주민의 대다수가 [[우크라이나인]]이었던 동부 [[갈리치아]]의 중심지였으나 정작 리비우 시만은 [[폴란드인]]과 [[유대인]]이 다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대학살, [[민족청소]]와 강제이주를 거치면서 폴란드인·유대인 주민들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동부 갈리치아 지방이 [[소련]]의 영토가 되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합쳐지면서 리비우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와 함께 우크라이나 독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기계제조업(버스·농업·전기)이 있다. <ref>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독립국가연합·동유럽/우크라이나·벨로루시·몰도바#리보프|리보프]]〉</ref>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의 [[갈리치아의 다닐로|다닐로]] 왕이 [[13세기]]에 건설하여 아들 레우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그래서 [[라틴어]] 이름은 '레오폴리스'이다). 중세와 초기근대에는 [[폴란드 왕국]], 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주요 도시로 성장하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분할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하에서는 주민의 대다수가 [[우크라이나인]]이었던 동부 [[갈리치아]]의 중심지였으나 정작 리비우 시만은 [[폴란드인]]과 [[유대인]]이 다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대학살, [[민족청소]]와 강제이주를 거치면서 폴란드인·유대인 주민들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동부 갈리치아 지방이 [[소련]]의 영토가 되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합쳐지면서 리비우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와 함께 우크라이나 독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기계제조업(버스·농업·전기)이 있다. <ref>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독립국가연합·동유럽/우크라이나·벨로루시·몰도바#리보프|리보프]]〉</ref>

2014년 4월 7일 (월) 14:39 판

리비우
리비우 구 시가지

리비우(우크라이나어: Львів, 폴란드어: Lwów 르부프[*], 러시아어: Львов 리보프[*], 독일어: Lemberg 렘베르크[*], 라틴어: Leopolis 레오폴리스[*], 아르메니아어: Լվով 리보프)는 우크라이나 서부의 도시이고 인구는 약 83만명이다. 리비우 주의 주도이고 폴란드와의 국경으로부터 70km지점에 위치해 있다. 역사 지구는 유네스코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온난한 대륙성 기후로 1월의 평균 기온은 ―4도, 7월의 평균 기온은 18도이다. 연간의 강수량은 660mm이고 여름에는 물이 부족하다.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의 다닐로 왕이 13세기에 건설하여 아들 레우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그래서 라틴어 이름은 '레오폴리스'이다). 중세와 초기근대에는 폴란드 왕국, 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주요 도시로 성장하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분할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하에서는 주민의 대다수가 우크라이나인이었던 동부 갈리치아의 중심지였으나 정작 리비우 시만은 폴란드인유대인이 다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대학살, 민족청소와 강제이주를 거치면서 폴란드인·유대인 주민들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동부 갈리치아 지방이 소련의 영토가 되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합쳐지면서 리비우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와 함께 우크라이나 독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기계제조업(버스·농업·전기)이 있다. [1]

행정 구역

  • 할리치키 구(Галицький)
  • 잘리즈니치니 구(Залізничний)
  • 리차키우시키 구(Личаківський)
  • 시히우시키 구(Сихівський)
  • 프란키우시키 구(Франківський)
  • 셰우첸키우시키 구(Шевченківський)

주민

2001년 리비우 시의 주민

우크라이나인 639.000 (88,1%)
러시아인 64.600 (8,9%)
벨라루스인 3.100 (0,4%)
아르메니아인 800 (0,1%)
유대인 1900 (0,3%)
폴란드인 6400 (0,9%)
합계 725.200

자매 도시

링크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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