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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은 제조업보다는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와 천연가스 등의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GDP는 1인당 8,000달러 정도다. 천연자원 개발 등으로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다. [[밀]]의 총생산량은 22,732,000톤(2011년, 세계 10위, 3.23%)이다.<ref>[http://faostat3.fao.org 식량농업기구 통계]</ref>
카자흐스탄은 제조업보다는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와 천연가스 등의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GDP는 1인당 8,000달러 정도다. 천연자원 개발 등으로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다. [[밀]]의 총생산량은 22,732,000톤(2011년, 세계 10위, 3.23%)이다.<ref>[http://faostat3.fao.org 식량농업기구 통계]</ref>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경제발전이 기대되는 국가로 손꼽힌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경제발전이 기대되는 국가로 손꼽힌다. [[세계은행]]은 카자흐스탄을 중앙아시아에서 IT발전분야에서 가장 앞섰다고 보고서를 발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728163 세계은행 "카자흐, 중앙아시아서 정보기술 선두"]</ref>


== 지리 ==
== 지리 ==

2014년 2월 5일 (수) 00:12 판

카자흐스탄 공화국
카자흐어: Қазақ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
Qazaqstan Respublikasy
러시아어: Республика Казахстан

국기

국장
표어Алаш! Алға Қазақстан!
(카자흐어: 알라시! 카자흐스탄이여 전진하라!)
국가나의 카자흐스탄
수도아스타나 북위 51° 10′ 00″ 동경 71° 26′ 00″ / 북위 51.166667° 동경 71.433333°  / 51.166667; 71.433333
최대 도시알마티 북위 43° 16′ 39″ 동경 76° 53′ 45″ / 북위 43.2775° 동경 76.895833°  / 43.2775; 76.895833
카자흐스탄(카자흐스탄)
정치
정치체제공화제, 단일 국가, 이원집정부제, 양원제
대통령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총리올자스 벡테노프
역사
독립 
 • 독립소련으로부터 독립
1991년 12월 16일
지리
면적2,724,900 km2 (9 위)
내수면 비율1.7%
시간대서부/동부 (UTC+5~+6)
인문
공용어카자흐어, 러시아어
데모님카자흐인
인구
2021년 조사18,994,958명 (64위)
인구 밀도7명/km2 (236위)
경제
GDP(PPP)2020년 어림값
 • 전체$5,698억 (41위)
 • 일인당$30,178 (53위)
GDP(명목)2020년 어림값
HDI0.825 (51위, 2019년 조사)
통화텡게 (KZT)
종교
종교이슬람교 69.3%
기독교 17.3%
기타 0.2%
무종교 13.3%
기타
ISO 3166-1398, KZ, KAZ
도메인.kz
국제 전화+7

카자흐스탄 공화국(카자흐어: Қазақ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 카자크스탄 레스푸블리카스 [qɑzɑqstɑ́n], 러시아어: Республика Казахстан 레스푸블리카 카자흐스탄[*] [kəzɐxˈstan], 문화어: 까자흐스딴)은 중앙아시아동유럽에 걸쳐 있는 나라이며, 카자흐어(국가어) 및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수도는 아스타나, 카자흐인이 국가의 다수를 차지한다. 때로는,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거인이라고도 부른다.

개요

러시아, 카스피 해,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세계에서 아홉째로 큰 나라이자, 가장 큰 내륙국이다. 1850년경에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으며, 1925년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성립되었고 1936년에는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편입되었다. 1991년 12월 16일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992년 3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광대한 평원국으로 기후는 대륙적으로 건조하며 초원·사막이 매우 넓다. 주민은 카자흐인이 절반이다. 에너지자원(석탄·석유·수력) 외에 , 구리, , 아연, , 니켈, 크롬, 망간, 보크사이트, 인회토(燐灰土) 등의 매장량이 풍부하다. 공업발달의 기초는 이들 자원의 채광 야금업이며, 화학공업(카바이드·인조고무·과린산비료·섬유·플라스틱), 기계장치제조업(농기·광산기계·압연기·석유업장치·압착기·펌프)도 발달하고 있다. 북부 카자흐스탄은 1954년부터 광대한 처녀지가 개간되어 밀·귀리·보리 등을 산출하는 곡창지대이다. 카자흐스탄은 동유럽에 영토를 일부 두고 있다.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1991년 카자흐스탄의 독립 이후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이다.[1]

역사

카자흐 칸국

카자흐인들이 15세기부터 이 땅에 민족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는데, 주로 유목생활을 했다.

제정 러시아

19세기에 제정 러시아는 대영제국과 중앙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벌인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의 일환으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땅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행정 시스템을 도입하고 군사기지를 구축하였다. 1735년에 첫 번째 러시아 기지인 오르스크가 건설되었고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의 모든 학교와 정부기관에서 러시아어만 사용할 것을 종용하였다. 이러한 일방적인 언어정책은 카자흐인들의 반발을 샀고 19세기 말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카자흐인들이 제정 러시아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이는 언어정책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하던 카자흐인들의 삶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기근, 수자원 분쟁 등 여러가지 요소에 의한 것이다. 이 카자흐 민족운동은 러시아의 흡수정책에 대항하여 카자흐인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는데 그 중점을 맞췄다.

1890년대 이후 제정 러시아로 부터 많은 수의 정착민들이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특히 세미레치에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906년 트렌스-아랄 철도가 개통된 이후 정착민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이러한 이민현상은 제정 러시아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민국(Переселенческое Управление)이 감독하고 장려하였다. 19세기 동안 400,000명의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에 정착하였고 20세기 초 약 백만명의 슬라브인, 독일인, 유대인 등이 카자흐스탄에 정착하였다.

1916년 '중앙아시아 반란(the Central Asian Revolt)'이라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정착민들과의 땅과 수자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원주민인 카자흐인들이 들고 일어나 러시아 정착민들과 군사기지 등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양쪽 모두 상대방을 향한 학살행위가 있었으며, 1919년 말 공산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이어졌다.

카자흐 SSR

제정 러시아의 몰락 후 잠깐의 독립기간(Alash Autonomy)이 있었지만 1920년 공산주의자들이 이 지역에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을 세웠다. 그 후, 1925년에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성립되었고 1936년에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어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193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의 강제 집단 농장화와 전통 카자흐 지도층 탄압으로 인해 카자흐스탄에 대규모 기아가 발생하였다. 1926년과 1939년 사이 카자흐 인구는 가뭄과 기아로 인해 22% 감소하였다. 또한 스탈린에 의해 많은 카자흐 작가, 시인, 사학자, 철학자, 정치가 등이 카자흐 정체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학살 당했다. 1930년대 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수백만의 추방자들이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카자흐스탄은 다섯 개의 부대를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으로 보냈으며 1947년에는 세미팔라틴스크(현재의 세메이)에 소련의 핵실험장이 개설되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독립 직후에는 알마티가 수도였다가 1998년에 수도를 아스타나로 천도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지금도 장기 집권 등 독재로 정치를 실행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2012년 12월카자흐어는 사용하는 문자를 로마자로 바꾸는 작업이 2025년까지 완성되어야한다면서 카자흐어의 문자를 키릴 문자에서 로마자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할려고 하고 있지만, 일부는 반발하고 있다.[2]

경제

카자흐스탄은 제조업보다는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와 천연가스 등의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GDP는 1인당 8,000달러 정도다. 천연자원 개발 등으로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다. 의 총생산량은 22,732,000톤(2011년, 세계 10위, 3.23%)이다.[3]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경제발전이 기대되는 국가로 손꼽힌다. 세계은행은 카자흐스탄을 중앙아시아에서 IT발전분야에서 가장 앞섰다고 보고서를 발표했다.[4]

지리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나라이자 가장 큰 내륙국으로 한반도의 13배에 달하는 영토(2,724,900㎢)를 가졌으며 이는 아르헨티나(2,766,890㎢)보다 약간 작은 면적이다. 북쪽으로 러시아와 6846 킬로미터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남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키즈스탄에 접한다. 영토 대부분이 중앙아시아에 속하지만 카스피해에 면하는 우랄산맥 서쪽땅은 동유럽에 속한다.

광대한 평원국으로 기후는 대륙성으로 건조하며 초원·사막이 매우 넓다. 면적이 804,500㎢인 카자흐초원은 카자흐스탄 전체 면적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초원지대이다. 주요 강·호수는 아랄해, 발카쉬 호수, 우랄강, 시르다리야강 등이 있다.

행정 구역

카자흐스탄은 14개의 주(州, 카자흐어: облыстар)와 3개의 특별시로 나뉘어 있다. 각 주는 대통령이 임명한 '아킴'이라 불리는 주지사 관할이다. 특별시인 아스타나알마티는 그 어떤 주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며 바이코누르시는 2050년까지 러시아에 코스모드롬(우주 기지, 러시아어: космодром)으로 임대되어 있다. 카자흐스탄은 1997년 12월 10일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이전하였다.

기후

계절변화가 뚜렷한 대륙성기후로서,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우며, 특히 평원과 골짜기 지역에 그 특징이 심하게 나타난다. 연평균 강수량이 북부가 약 250㎜, 남부 산악지대가 450㎜에 이르지만 사막은 비가 훨씬 적게 내린다. 스텝과 사막이 대부분의 지역에 걸쳐 있다.

종족

카자흐인65%, 러시아인22%, 우즈베크인3.0%, 우크라이나인1.8%, 위구르인1.4%, 고려인0.6%, 폴란드인, 불가리아인, 벨라루스인, 약간의 중국인, 기타 6.6%이다.

카자흐스탄 군인

언어

카자흐스탄에서는 카자흐어가 '국가어'이지만 러시아어는 '공용어'이자 '민족간 소통언어'로 사용되고 있어서, 두 언어 모두가 공용어이다. 소수민족은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카자흐어러시아어를 사용한다. 현재 정부는 카자흐어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며, 정부의 모든 문서는 카자흐어로만 작성이 된다. 이는 카자흐민족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 방송되는 각종 언론매체는 현재 카자흐어와 러시아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의 신문방송 언어는 카자흐어보다 러시아어가 더 자연스럽다.[5] 아직도 도시의 사람들은 러시아어가 일반적이다. 영어, 벨라루스어, 독일어, 우크라이나어, 소수민족의 언어 등 기타도 사용된다. 2013년 12월나자르바예프는 교육포럼에서 카자흐어, 러시아어, 영어를 공식언어로 지정한다고 밝혔다.[6]

종교

카자흐스탄은 다민족국가인 만큼 다양한 종교들이 있다. 2009년 실시된 인구조사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인구의 70.2%가 이슬람교를 믿는다고 응답하였다. 그 중 카자흐, 우즈벡, 타타르인들 등 대다수가 수니파이며 시아파는 극소수에 속한다. 남부 카자흐스탄에만 2300여 개의 모스크가 있으며 이슬람 희생제인 에이드 알-아다(Eid al-Adha)가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는 등 이슬람교가 상당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7]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계 카자흐스탄인들 등 인구의 26.2%는 기독교를 믿는다. 그 중 러시아 정교회의 비율이 가장 높다. 카자흐스탄에는 258개의 정교회 교회가 등록되어 있으며[8] 정교회 성탄절인 1월 7일은 2005년 12월 국경일로 지정되었다.[9] 카자흐스탄 전국에 500여 개의 개신교 교회, 90여 개의 가톨릭 교회가 있으며, 그 외 소수의 유대교, 불교신자들이 있다 (0.2% 미만).[10]

문화

10세기철학·과학·수학에 관한 수많은 저술을 남긴 작가 아부 나스르 알 파라비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필가로서 알려져 있으며, 1904년에 사망한 아바이 이브라김 쿠난바예프가 있다.

현대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가로는, 시인 잠불 자바예프와 극작가 무흐타르 아우에조프를 꼽을 수 있다. 아직도 카자흐스탄에는 서사적인 민요시와 서정시를 낭송하는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카자흐스탄에는 많은 예술·연극 학교가 있으며, 알마티에는 국립 미술관이 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얼굴이 실린 카자흐스탄 우표 (1993년 발행)

영국 <채널4>에서 <다 알리 G 쇼>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새처 배런 코언이 보랏 사그디예프라는 이름의 카자흐스탄 TV리포터로 분(扮)해 미국을 탐방하는 내용의 쇼를 진행하였다. 그는 또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라는 영화를 만들어 2006년 토론토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문제는 이 캐릭터가 카자흐스탄 문화를 비난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제 카자흐스탄에서 여성은 버스 안에서는 여행할 수 있고, 동성애자는 더 이상 푸른 모자를 쓰지 않아도 되고, 결혼 가능 연령은 8살까지 올라갔다"며 카자흐스탄 사회를 조롱해왔다. 그의 이 같은 도발에 카자흐스탄 정부는 코언을 상대로 소송을 공언해왔으며, 결국에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까지 나서, 2006년 11월로 예정된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의 미국 개봉을 앞두고 미국을 찾아 부시 대통령과 회담을 벌였다.[11]

대외 관계

자원

우라늄 매장량이 세계 2위, 천연가스 매장량 약 322억 배럴(세계 7위), , 텅스텐 등 많은 광물자원을 보유한 자원강국이다.

자살 문제

이 나라는 리투아니아, 대한민국처럼 자살률이 사회적 문제를 앓고 있으며, 최근에도 심각한 사회 문제점을 낳고 있다.[12][13]

주석

바깥 고리

카자흐스탄

대한민국

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