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신례: 두 판 사이의 차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Gunsan1130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Gunsan1130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6번째 줄: 6번째 줄:
==면신례의 폐단==
==면신례의 폐단==
신입 관리에게 뇌물을 받는것은 물론이고 ''' '흙탕물에서 구르기'나 '목욕물 마시기', '동물 울음소리 따라하기' '얼굴에 똥칠하기' '''등 다양한 종류의 명령들을 내리곤 했다. 이러한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구타를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이러한 면신례로 인해 재산을 모두 잃거나 병을 얻기도 하고, 심하면 기절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았다. 면신례를 거부하면 관청에 발조차 붙일수 없거나 관청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되자 조선 정부에서는 면신례를 없애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면신례를 금지할것을 주장하는 상소<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fa 중종 36년의 상소]</ref>가 올라오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관습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이어져왔다.
신입 관리에게 뇌물을 받는것은 물론이고 ''' '흙탕물에서 구르기'나 '목욕물 마시기', '동물 울음소리 따라하기' '얼굴에 똥칠하기' '''등 다양한 종류의 명령들을 내리곤 했다. 이러한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구타를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이러한 면신례로 인해 재산을 모두 잃거나 병을 얻기도 하고, 심하면 기절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았다. 면신례를 거부하면 관청에 발조차 붙일수 없거나 관청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되자 조선 정부에서는 면신례를 없애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면신례를 금지할것을 주장하는 상소<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fa 중종 36년의 상소]</ref>가 올라오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관습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이어져왔다.
==각주==
== 각주 ==
<references/>






2007년 9월 6일 (목) 22:45 판

면신례(免新禮)는 고려 우왕때부터 신입 관리를 대상으로 시작된 일종의 신고식으로서 선임 관리에게 술과 음식, 기녀를 대접해야 했으며 짖궂은 명령을 받들기도 한다. 면신(免新)또는 신래침학(新來侵虐)으로도 불린다. 고려우왕때, 권문 세족의 아들들이 부모의 권세를 배경으로 관직을 얻는 일이 많아지자 선임 관리들이 그들의 기를 꺾고 관리들의 질서를 잡고자 시작되었던 것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이것을 오늘날 신고식의 유래로 보기도 한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새로운 관원(官員)이 출사를 할때 구관원에게 음식을 차려 대접하고 인사드리는 예인 허참(許參) 혹은 허참연(許參宴)이 있었다. 이는 서로 마주 대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로 새로 부임하는 관원의 오만을 방지하는 풍습이였다. 이후 열흘쯤 지난 후 면신례를 행하는데 이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구관원과 동석(同席)할 수 있었다. [1]

면신례의 폐단

신입 관리에게 뇌물을 받는것은 물론이고 '흙탕물에서 구르기'나 '목욕물 마시기', '동물 울음소리 따라하기' '얼굴에 똥칠하기' 등 다양한 종류의 명령들을 내리곤 했다. 이러한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구타를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이러한 면신례로 인해 재산을 모두 잃거나 병을 얻기도 하고, 심하면 기절하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았다. 면신례를 거부하면 관청에 발조차 붙일수 없거나 관청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되자 조선 정부에서는 면신례를 없애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면신례를 금지할것을 주장하는 상소[2]가 올라오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관습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이어져왔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