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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4일 (목) 16:32 판

안익태
安益泰
Iktai Ahn
안익태 초상화
기본 정보
출생1906년 12월 5일(1906-12-05)
대한제국 대한제국 평안남도 평양
사망1965년 9월 16일(1965-09-16)(58세)
스페인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 주 바르셀로나
성별남성
국적스페인 스페인
직업작곡가
첼로 연주가
트럼펫 연주가
바이올린 연주가
지휘자
장르서양 고전 음악
배우자Lolita Talavera
가족아내와 3녀

안익태(安益泰, 스페인 이름 Iktai Ahn, 1906년 12월 5일 ~ 1965년 9월 16일)는 스페인 시민권자 신분이었던 한국작곡가, 첼리스트, 트럼페터,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로, 대한민국의 국가(國歌)인 애국가를 작곡했으며, 대표 작품으로 한국환상곡이 있다. 일제 시대의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일생

안익태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평양종로보통학교평양 숭실고등보통학교를 마쳤다. 1921년일본으로 유학, 도쿄 세이소쿠 중학교에 음악특기자로 입학하였다. 1926년에는 도쿄 구니타치 고등음악학교에 입학해 첼로를 전공했고, 1930년 졸업 후 다시 미국으로 유학했다. 신시내티 음악학교커티스 음악학교, 펜실베이니아 주립 필라델피아 템플 대학교 음악대학원에서 첼로와 지휘 등을 배웠고 한인 교회 등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

1936년에 처음 유럽을 방문했고, 이때 파울 힌데미트펠릭스 바인가르트너를 만나 음악 활동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 때부터 친일 행적을 시작했다고도 알려지고 있다. 1937년펜실베이니아 주립 필라델피아 템플 대학교 음악대학원을 졸업한 뒤 1938년에 아일랜드더블린 방송 교향악단을 객원지휘했다. 이후 헝가리에 머물면서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졸탄 코다이에르뇌 도흐나니 등에게 작곡을 배웠고, 종전 직전까지 독일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지휘 활동을 했다.

전황이 악화되자 1944년 4월파리에서 베토벤 축제 연주회를 마친 직후 중립국스페인으로 피난했으며, 그 해 12월에는 그의 대표작인 한국 환상곡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필 악보를 완성했다. 1946년에는 스페인 여성 롤리타 탈라베라와 결혼했고, 마요르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이후 스위스, 멕시코, 과테말라 등에서 지휘했고, 1955년 3월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1962-64년까지 3년간 서울에서 국제음악제를 주관했고, 런던 교향악단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쿄 교향악단 등을 객원지휘했다. 1965년 7월 4일에 런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마지막 연주회를 가진 직후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고, 9월 16일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병원에서 타계했다.

애국가와 표절 의혹

안익태의 작품 중 '애국가' 는 현재 대한민국의 정식 국가로 쓰이고 있지만, 그 작곡 연도와 장소에 대한 이견이 많다. 1964년 제 3회 서울 국제음악제 때 내한한 불가리아 지휘자 페터 니콜로프는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인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O! Dobrujanski Krai)' 를 표절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안익태의 활동에 대해 독재적이라고 비판하던 국내 음악계의 분위기와 맞물려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음악학자 허영한이 애국가는 안익태가 유럽을 방문하기 전인 1935년 11월에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작곡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1936년베를린에서 작곡되었다는 견해가 수정되기도 했다. 허영한의 연구가 표절이 아니라는 충분한 근거는 아니지만, 그 동안의 유럽 작곡설을 뒤집었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는 신빙성이 강화되었다는 주장이 많다.

애국가 외에도 '강천성악' 에 나오는 선율이 일본의 궁중 음악인 '에텐라쿠' 와 동일하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기도 했고, 최근에 안익태의 유럽 체류 시절 연구에서 발견된 작품인 환상곡 '에텐라쿠' 가 원본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안익태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안익태는 1930년대 후반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되었다고 밝혔으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1942년경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시기의 안익태 공연 프로그램에 '슈트라우스의 제자' 라는 내용이 실리기 시작했고,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작품인 '일본 축전 음악' 을 지휘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작성해준 추천장이 남아 있다. 안익태는 2차대전 종전 후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들을 본격적으로 다루었으며, 일본의 옹가쿠노토모샤(음악지우사)에서 슈트라우스의 전기를 출판하기도 했다.

친일 행적

안익태의 1940년대 유럽 활동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김경래롤리타 탈라베라의 전기에 기록된 자료로 전해져 왔으나, 최근에 진행된 연구들에서 이들 자료의 잘못된 정보와 왜곡 사례를 지적하고 있어 상당한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유럽 체류 시절 안익태가 관변 단체였던 '일본-독일 협회' 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일본가가쿠를 주제로 한 '에텐라쿠' 와 일본제국에 의해 괴뢰정권인 만주국이 세워진 일을 기념한 '만주국 축전곡' 등을 작곡했다는 기록도 발표되었다.

2000년에는 음악잡지 '객석' 의 베를린 통신원이었던 진화영이 안익태의 베를린 필 지휘 기록이 종전의 1940년이 아닌 1943년이며, 단 한 차례 뿐이었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같은 해 발굴되었다는 안익태의 지휘 모습이 담긴 기록 영화가 2006년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송병욱에 의해 만주국 축전 음악회의 실황 녹화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내 음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06년 11월 19일에 송병욱의 강연회를 통해 만주국 축전 음악회의 기록 영화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 상영되었으며, 2007년에는 음악학자 이경분이 독일과 스위스 등지의 문서 보관소 등에서 찾아낸 자료들로 안익태의 1938-44년 활동상을 정리한 책이 출간되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다. 이에 대해 안익태기념재단 측은 "당시 본인 선택과 상관없이 국적을 잃은 안 선생은 일본인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였다.[1][2] 이 명단의 군 부문에는 형인 안익조도 포함되어 있다.

작품

  • 성악 모음곡 '한국의 생활' (이팔청춘/아리랑 고개/전원/백합화. 1934~1935)
  • 애국가(1936)
  • 교향시 '강천성악'(관현악곡, 1936)
  • 한국환상곡(합창과 관현악, 1936~1937)
  • 환상곡 '에텐라쿠' (관현악곡, 1930년대?. 1944년 이후 악보 분실)
  • 교향 환상곡 제 2번 '교쿠토(극동)' (관현악곡, 1930년대?. 1944년 이후 악보 분실)
  • 전원곡 (Pastorale. 관현악곡, 1930년대?. 1944년 이후 악보 분실)
  • 만주국 축전곡 (합창과 관현악, 1940년대. 1944년 이후 악보 분실)
  • 논개(교향시, 1962)
  • 애국지사 추도곡(관현악곡, 1962)
  • 흰 백합화(성악과 기악, 1962?)
  • 한국무곡(관현악곡, 1963)
  • 교향시 '마요르카' (관현악곡, 1948. 2006년에 자필보 발견)
  • 교향시 '포르멘토르의 로 피' (관현악곡, 1951. 2006년에 자필보 발견)

참고 문헌

  • 김경래, 《안익태의 영광과 슬픔. 코리아 판타지》, 현암사, 1966.
  • 롤리타 탈라베라, 《나의 남편 안익태》, 신구문화사, 1974.
  • 전정임, 《안익태》, 시공사, 1998.
  • 진화영, 《한국인 최초 베를린 필 지휘,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진실들》, 월간 객석, 2000.5월호
  • 이규희, 《울어 버린 애국가》, 밝은미래, 2005.
  • 송병욱, 《안익태의 알려지지 않은 두 작품》, 월간 객석, 2006.3월호
  • 송병욱, 《안익태의 민족 정체성-어느 음악가의 정당한 평가를 위하여》, 월간 객석, 2006.4월호
  • 박정미, 《안익태에 대한 의혹 제기와 그 오류에 대한 단상》, 월간 객석, 2007.1월호
  • 이경분,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휴머니스트, 2007.
  • 송병욱, 《안익태 '한국환상곡' 초연 70주년 특별기고 1-더블린 초연 현장을 말한다》, 월간 객석, 2008.2월호
  • 송병욱, 《안익태 '한국환상곡' 초연 70주년 특별기고 2-헝가리 동영상과 안익태 이해의 새 키워드》, 월간 객석, 2008.3월호

주석

  1. 신재우. “`친일명단 발표' 후손ㆍ관련단체 반발 거세”. 연합뉴스. 2008년 5월 2일에 확인함. 
  2. "홍난파·안익태·장면·정일권, 친일파 아니다" - 오마이뉴스 2009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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