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마량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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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마량산 전투
한국 전쟁의 일부

1952년 당시 마량산의 사진.
날짜1951년 10월 3일~8일
장소
결과 유엔군 승리
교전국

유엔 유엔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지휘관

미국 매튜 리지웨이
미국 제임스 밴 플리트
영국 제임스 카셀즈
영국 조지 테일러

오스트레일리아 프랭크 하세트

중화인민공화국 펑더화이(彭德懷)
중화인민공화국 정스위(曾思玉)[1]

중화인민공화국 셰쩡룽[2]
군대
3 RAR 제571여단
병력
320명 1,200명
피해 규모
20명 사망
104명 부상
283명 사망
50명 포로

제1차 마량산 전투(영어: Battle of Maryang-san) 혹은마량산 방어전 (중국어 간체자: 马良山防御战, 병음: Mǎliáng Shān Fángyù Zhàn)은 1951년 10월 3일부터 10월 8일까지 유엔군 소속의 오스트레일리아군 및 영국군과 중국인민지원군한국 전쟁 기간 중 마량산(315고지, 317고지로도 불리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코만도 작전이라 불리는 미국 제1군단의 제한 공세 기간 이 전투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은 결국 임진강에서 제임스타운 선까지 밀려나게 되었고, 중국인민지원군의 야전군은 섬멸되었다. 마량산에서는 약 5일간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고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연대 제3대대는 수적열세에도 불구하고 고왕산(355고지)과 마량산(315고지)을 중국인민지원군으로부터 지켜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뉴기니 전역에서 처음 개발된 일명‘능선 달리기(Running the ridges)’전술을 사용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 부대는 고지의 이점을 살리며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을 공격했다.[3]

오스트레일리아 부대는 탈환한 마량산 일대에서 벌어지는 중국인민지원군의 연속되는 반격을 막아냈고, 이 과정에서 양쪽 모두 큰 사상자가 발생했다. 영국군 대대가 마량산에 도착하면서 전투는 끝나게 되었다. 이후 휴전 협정이 진행되면서, 이 전투는 6개월 간 이어진 기동 공세의 마지막 전투로 남게 되었다. 이후 한국 전쟁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서부 전선과 비슷하게 제한전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한 달 후, 중국인민지원군은 마량산을 다시 공격해 고지를 완전히 점령했다. 오늘날, 이 전투는 오스트레일리아 육군이 한국 전쟁 중 보여준 뛰어난 활약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Chinese Military Science Academy 2000, 558쪽.
  2. Hu & Ma 1987, 89쪽.
  3. 중공군의 '유엔군 보급선 차단'을 막아낸 호주대대의 마량산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