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니더작센 주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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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니더작센 주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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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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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의석: 149석
과반의석: 75석
투표율 76.7%
  제1당 제2당
 
Bundesarchiv B 145 Bild-F046646-0036, Bonn, Empfang für Bundesratsdirektor Dr. Pfitzer.jpg
Bundesarchiv B 145 Bild-F048863-0012, Bonn, Landesvertretung Niedersachsen, Festtag.jpg
지도자 알프레트 쿠벨 빌프리트 하슬만
정당 독일 사회민주당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이전 선거 결과 66석 63석
획득한 의석수 75석 74석
의석 증감 증가 9석 증가 11석
득표수 1,792,943표 1,771,698표
득표율 46.3% 45.7%
득표율 증감 증가 3.2%p 증가 4.0%p

선거전 총리

게오르크 디드리슈
독일 사회민주당

총리 당선자

알프레트 쿠벨
독일 사회민주당

1970년 니더작센 주의회 선거니더작센 주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1970년 6월 14일 열렸다. 1969년 빌리 브란트 내각이 수립된 후 열린 첫 지방선거로, 사민당은 기민련을 0.5%p차로 따돌리고 가까스로 주정부를 지켰다. 선거 후 브란트 내각의 불안정성이 심화됐다.

선거 과정[편집]

본래 주의회 선거는 1971년에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1967년 선거 후 구성된 독일 사회민주당독일 기독교민주연합 간의 대연정 내각은 두 당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계속되기 어려웠다. 결국, 두 당은 니더작센 주에선 처음인 조기 선거를 열기로 합의했다. 선거는 빌리 브란트 내각의 동방 정책에 대한 찬반 대결 양상을 띠었다. 기민련 주 총리 후보였던 빌프리트 하슬만은 연방 정부를 바꾸기 위해 니더작센 주정부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일 전에 《빌트》는 에곤 바르안드레이 그로미코 간에 맺은 '독·소 불가침 조약'의 초안을 공개하면서 브란트 내각이 동독 정권을 사실상 인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브란트 내각에 대한 서독 내 보수층의 반발을 불렀다.[1]

선거 결과[편집]

1970년 니더작센 주의회 선거
투표율 76.7%
 %
50
40
30
20
10
0
46.3%
45.7%
4.4%
3.2%
0.4%
득실표율
1967년 선거와 정당별 득실율 비교
  %
   4
   2
   0
  -2
  -4
+3.2%
+4.0%
−2.5%
−3.8%
−0.9%


독일 사회민주당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은 모두 득표율을 올렸다. 반대로 자유민주당독일 국민민주당은 득표율이 5% 아래로 떨어져 의회 재진출에 실패했다. 따라서 의회 내에 사민당과 기민련 밖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사민당은 기민련과 표 차이가 단 0.5%p 밖에 나지 않았지만 단독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날 치러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자를란트 주의회 선거 모두 기민련이 약진하고 자민당이 부진하면서 브란트 내각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었다.[1]

정당 득표 의석
# % 지역구 비례대표 합계 ±
독일 사회민주당 1,792,943 46.26 55 20 75 증가 9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1,771,698 45.71 40 34 74 증가 11
자유민주당 169,457 4.37 - - - 감소 10
독일 국민민주당 124,675 3.22 - - - 감소 10
독일 공산당 15,076 0.39 - - - 보합
유럽당 1,256 0.03 - - - 보합
니더작센당 671 0.02 - - - 보합
무소속 52 0.00 - - - 보합
유효표 3,875,828 99.33 95 54 149 보합
무효표 26,175 0.67
투표자수 3,902,003 76.73
유권자수 5,085,443 -

참고[편집]

  1. 박현제 (1970년 6월 19일). “地方選挙에서 苦杯 브란트 東進정책”. 《경향신문》.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