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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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아누스
로마 제국황제
재위 253년 10월 22일 – 260년 봄
전임 아이밀리아누스
공동재위자 갈리에누스
후임 갈리에누스 (단독)
이름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태어나서 즉위까지)
존호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신상정보
출생일 193년 - 200년경
사망일 260년 또는 264년 이후
사망지 비샤푸르 또는 군데샤푸르
가문 리키니아 일족
배우자 마리니아나
자녀 갈리에누스
루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페르시아샤푸르 1세에게 생포 당하는 발레리아누스를 기록한 조각

발레리아누스(Publius Licinius Valerianus, 200년? ~ 260년?)는 로마 제국의 33대 황제(임페라토르)이다.

생애[편집]

다른 군인 출신 황제와는 달리 발레리아누스 자신은 유서 깊은 로마 원로원 의원 일족 출신이었다.[1] 그의 전반생은 확실하지 않지만, 에그나티아 마니아나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다고 하며, 여기에는 훗날 로마 황제가 되는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이그나티우스 갈리에누스와 발레리아누스 미노르도 있었다.

238년의 로마 내전 속에서 여섯 황제의 한 사람이었던 고르디아누스 1세에 의해 일찍이 프린켑스 세나투스로 선출되었다. 당시 고르디아누스 1세는 원로원 의원 가문 출신인 발레리아누스를 통해 원로원과 교섭하고자 한 것이다. 244년에 미시케(Mesiche)라는 곳에서 사산 조 페르시아의 대왕(샤힌샤) 샤푸르 1세와의 전투에서 고르디아누스 1세의 손자 고르디아누스 3세가 죽고(이를 필리포스의 쿠데타에 의한 것이라고도 한다), 필리포스 아라부스가 군영 안에서 스스로 황제(임페라토르)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249년에 필리포스가 데키우스에게 피살되고, 황제(임페라토르)가 된 데키우스에게 251년 감찰관(콘술)로 선출된다. 또한 라인강 연안의 노리쿰과 라에티아 두 속주의 총독(코메스)를 지냈다. 데키우스가 아브리투스에서 전사하고 뒤를 이은 트레보니우스 갈루스 때에도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총독(코메스)으로 일하는 등, 발레리아누스의 지위는 유지되었다.

로마 황제[편집]

그러던 중 마르쿠스 아이밀리아누스가 반란을 일으켜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및 그 공동 황제였던 가이우스 볼루시아누스(Gaius Vibius Volusianus)가 피살되자, 아이밀리아누스를 내쫓기 위해 발레리아누스는 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얼마 안 가서 아이밀리아누스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살해당했고, 253년에 발레리아누스가 로마의 황제(임페라토르)가 되었다.

발레리아누스는 황제가 된 뒤 데키우스의 기독교 박해 정책을 더욱 강화하여 카르타고 주교 치프리아누스로마 주교 식스토 2세를 처형했다.[2] 한편 그는 아들 갈리에누스를 공동 황제로 임명해 로마 제국의 서반부를 맡기고, 자신은 사산 조 페르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동쪽을 맡았다.

페르시아의 포로[편집]

그러나 259년, 군세를 몰아 페르시아로 쳐들어 갔던 발레리아누스는 그만 에데사 전투에서 샤푸르 1세에게 패해 포로가 되고 말았다.[1] 포로가 된 발레리아누스는 비샤푸르로 압송되어, 죽을 때까지 노예 취급을 받으며 사후에도 박제가 되어 신전에 전시되었다고 알려진다.[1][3]

황제(임페라토르)가 적국의 포로가 된 것은 로마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그 뒤로도 11세기 셀주크 투르크와의 전투에서 포로가 된 동로마로마노스 4세 디오게네스 외에는 이러한 사례가 없었다. 이 사건은 데키우스가 전사한 아브리투스 전투와 함께 로마 제국의 국력 저하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받으며, 이후 로마 세계는 스스로 황제(임페라토르)를 참칭하는 자들의 난립과 영토 분열 등으로 그 혼란이 더욱 심해져 갔다.

각주[편집]

  1. Chisholm 1911.
  2. Baudoin 2006, 19쪽.
  3. Eutropius. Abridgement of Roman History. Translated by the Rev. John Selby Watson. London: Henry G. Bohn, 1853. (Book 9.7)

참고 문헌[편집]

같이 보기[편집]

전임
아이밀리아누스
제33대 로마 제국 황제
253년 - 260년
후임
갈리에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