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룡사

관룡사
관룡사 용선대 석가모니불
종파대한불교 조계종
건립년대삼국시대 583년(진평왕 5년) 중창
창건자증법(證法) 대사
문화재1963년 보물로 지정된 창녕 관룡사 대웅전,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약사전, 1970년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약사전삼층석탑,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관룡사 사적기, 1983년 경상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관룡사 석장승,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관룡사 부도, 1985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원음각 등
위치
창녕 관룡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창녕 관룡사
창녕 관룡사
창녕 관룡사(대한민국)
소재지경남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관룡사길 171, 관룡사 (옥천리)
좌표북위 35° 31′ 55″ 동경 128° 33′ 12″ / 북위 35.53194° 동경 128.55333°  / 35.53194; 128.55333

관룡사(觀龍寺)는 경남 창녕군에 있는 사찰이다. 해발 793m의 관룡산 서남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1]

이름의 유래[편집]

삼국통일 후에 원효가 제자 송파(松坡)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다섯가지 색깔을 띈 구름이 영롱한 하늘을 덮자, 화왕산(火旺山) 마루의 월영삼지(月影三池)로부터 아홉 마리의 용이 등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을 원효와 제자가 보고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현재, 관룡산)이라 하였다고 한다.[2]

관룡산과 화왕산은 마주 보고 있으므로, 화왕산의 아홉 마리 용을 보려면 관룡산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화왕산은 관악산처럼 화기가 센 산으로 유명하다.[3]

역사[편집]

관룡사의 역사적 변천은 다음과 같다.[4]

신라시대[편집]

  • 349년(흘해이사금 40년)에 창건되었다고 관룡사 사기에 나와있지만, 다른 추가 기록이 없어 보통 583년을 창건으로 삼는다.
  • 583년(진평왕 5년) 증법(證法)이 중창하였다.

남북국시대[편집]

  • 748년(경덕왕 7년) 추담(秋潭)이 중건하였다.

조선시대[편집]

  • 1401년(태종 1년)에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 1617년(광해군 9년)에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약사전을 제외한 다른 시설들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 1712년(숙종 38년)에 대웅전과 기타 당우들을 재건하였다. 1704년(숙종 30년) 가을에 대홍수로 금당(金堂)과 부도 등이 유실되고 승려 20여 인이 익사하는 참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 1749년(영조 25년)의 부분적인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시설[편집]

  • 대웅전 : 약사여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의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 약사전 :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남았던 당우이다. 약사여래불은 고려시대 작품이다.
  • 원음각
  • 용선대 석가모니불 :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이다. 한 가족이 모두 올라가서 기도를 하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다. 차례대로 가든, 한꺼번에 올라가든 상관이 없다.

문화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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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 위석. “관룡사 (觀龍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4월 25일에 확인함.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2. 김, 위석. “관룡사 (觀龍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4월 25일에 확인함. 
  3. 위, 성욱 (2016년 10월 17일). “[레저기획] 영남 최대 ‘억새 1번지’ 화왕산”. 《월간중앙》. 중앙일보에스 주식회사. 2023년 4월 25일에 확인함. 
  4. 김, 위석. “관룡사 (觀龍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4월 2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