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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Can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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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J. 하워드 밀러의 "We Can Do It!" 포스터.

We Can Do It!”(→우리는 해낼 수 있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선전 포스터로, 1943년에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사의 J. 하워드 밀러(J. Howard Miller)가 여성 노동자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제작한 그림이다.

이 포스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으나, 1980년대 초에 재발견되며 여러 다른 버전으로 제작되며 널리 퍼졌다. 이 과정에서 역시 전시 여성 노동자를 묘사한 그림인 ‘리벳공 로지’로 오인되기도 했다. “We Can Do It!” 그림은 1980년대부터 여성주의를 비롯한 다른 정치 문제를 촉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1] 1994년에는 잡지 《스미스소니언》의 표지를 장식했고, 1999년에는 미국 제1종 우편물 우표로도 제작되었다. 2008년에는 일부 미국 정치인의 선거 홍보물에 사용되었으며, 2010년에는 여성으로서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에 임명된 줄리아 길라드의 취임을 기념하기 위해 한 예술가가 “We Can Do It!” 그림을 재해석하기도 했다. 또한, 이 포스터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열람 또는 복제 요청이 가장 많은 그림 10개 가운데 하나이다.[1]

“We Can Do It!” 그림은 1980년대 초 재조명된 이후로 원래 여성 노동자들로 하여금 군수 산업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그림은 웨스팅하우스 내부에서만 사용되었으며, 1943년 2월 중에만 게시되었고, 신규 모집이 아닌 이미 고용된 여성 노동자를 독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었다.[2] 이후 이 포스터에 담긴 희망적인 분위기와 명확한 메시지는 자기계발, 선거 홍보, 광고, 풍자 등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었다.

1994년에 “We Can Do It!” 그림이 《스미스소니언》 표지에 실린 후, 제럴딘 호프 도일은 자신이 해당 포스터의 모델이라고 잘못된 주장을 펼쳤다. 도일은 전시 여성 공장 노동자를 촬영한 사진 속 인물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고, 이 사진이 밀러의 포스터 제작에 영감을 주었다고 여겼다. 이후 ‘리벳공 로지’와 동일시된 도일은 미시간 여성사 센터 및 명예의 전당을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예우를 받았다. 하지만 2015년에 사진 속 여성은 당시 20세였던 나오미 파커로 밝혀졌고, 촬영 시점은 도일이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1942년 초였다. 그러나 해당 사진이 “We Can Do It!” 포스터를 제작하는 데 영향을 끼쳤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아 포스터의 실제 모델이 도일인지 파커인지는 확정지을 수 없다.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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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에 제작된 노동자와 경영진 간 단결을 독려하는 GM의 선전 포스터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 정부는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더 많은 군수품 생산을 요청했으며, 1930년대 내내 누적된 경영진과 노동조합 간의 갈등으로 대규모 공장의 노동 환경은 긴장된 분위기였다. 제너럴 모터스(GM)와 같은 기업의 경영진은 과거의 마찰을 최소화하고 협동심을 고취하려 했다. 전미자동차노동조합이 홍보 활동을 진행할 것이라는 소문에 대응하기 위해 GM 측은 1942년에 선전 포스터를 신속히 제작했는데, 이 포스터는 노동자와 경영진이 함께 소매를 걷어붙이고 전시 생산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또한 포스터에는 “Together We Can Do It!”(→함께라면 우리는 해낼 수 있다!), “Keep 'Em Firing!”(→계속 쏴 올려라!)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3] 이러한 포스터를 제작한 기업들은 전쟁을 지지하는 대중의 정서를 활용해 생산을 늘리고 싶어했고,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생산에 더 큰 통제를 가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3]

J. 하워드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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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그래픽 아티스트였던 J. 하워드 밀러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자국의 전쟁을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는 포스터를 제작해왔으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 잘 알려진 “We Can Do It!” 포스터였다. 하지만 이러한 대표적인 포스터를 제외하면 밀러 본인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4] 오랫동안 밀러의 생애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출생과 사망 연도조차 불확실했다.[5][6][7][8] 2022년 제임스 J. 킴블 교수가 밀러의 개인사에 관한 추가 정보를 밝혀냈는데, 출생 연도는 1898년, 사망 연도는 1985년으로 확인되었다. 밀러는 메이블 아데어 맥컬리와 결혼했으나 슬하에 자녀는 없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가족들은 모두 밀러의 형제자매를 통해 이어진 친족들이다.[9]

밀러는 피츠버그 예술대학에서 수학하여 1939년에 졸업했다.[10] 밀러는 전쟁 기간 동안 피츠버그에서 살았으며, 자신의 작품이 웨스팅하우스사(후에 웨스팅하우스 전시생산조정위원회)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포스터 제작을 위해 채용되었다. 포스터 제작은 회사 내 조직인 전시생산조정위원회의 지원을 받았는데, 이 위원회는 국가 전시생산위원회의 감독 아래 조직된 수백 개의 노사 공동위원회 가운데 하나였다. 밀러는 의뢰받은 작품 이외에도 풍경화와 유화 습작을 제작했으며, 그의 가족은 그의 작품들을 모두 집에 보관했다.[9]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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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광고 대행사를 통해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 내 조직인 전시생산조정위원회에 채용된 밀러는 회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게시할 일련의 포스터를 제작하게 되었다.[1][11] 이 포스터 제작 프로젝트는 노동자의 사기를 높이고, 결근을 줄이며, 노동자들의 질문을 관리자들에게 문의하도록 하고, 노동 불안이나 공장 파업의 가능성을 낮추는 등의 의도를 가지고 기획되었다. 밀러는 42종 이상의 포스터를 디자인했으며, 각 포스터는 2주간 공장 내에 게시된 뒤 다음 포스터로 교체되었다. 포스터에는 대부분 남성이 등장했으며,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조한 편이었다. 한 포스터에는 미소 짓는 남성 관리자가 등장하면서 “Any Questions About Your Work? ... Ask your Supervisor.”(→일에 관해 질문이 있습니까? 상사에게 물어보십시오.)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1][2]

“We Can Do It!” 포스터와 함께 J. 하워드 밀러가 제작한 일련의 포스터 중 하나

“We Can Do It!” 포스터는 가로 17인치, 세로 22인치(559 × 432 mm) 크기로 제작되었으며, 인쇄 수량은 1,800부를 넘지 않았다.[1] 이 포스터는 처음에 펜실베이니아주 이스트피츠버그와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일부 웨스팅하우스 공장에만 배치되었고, 1943년 2월 15일 월요일부터 2주 동안 평일 5일간 게시될 예정이었다.[1][12][13][14][15] 해당 공장들은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페놀 수지의 일종인 마이카르타를 사용해 플라스틱 헬멧 라이너를 생산하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주로 여성들이 고용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에만 약 1,300만 개의 헬멧 라이너가 생산되었다.[16] “We Can Do It!”이라는 문구는 당시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에게만 힘을 실어주는 메시지로 이해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노동자들은 경영진의 권위, 직원들의 역량, 회사의 단결 등을 강조하는 일련의 가부장적이고 통제적인 포스터에 이미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구호는 “웨스팅하우스 직원들이라면 해낼 수 있다”라는 의미, 즉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1] 결국, 이 포스터는 낙관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생산성을 유지하려는 부드러운 성격의 선전물로 활용되었다.[17] 또한 포스터 속 인물의 칼라에 달린 배지는 그녀가 웨스팅하우스 전기 공장 현장의 직원임을 보여주며,[17] 빨간색, 흰색, 파란색으로 구성된 의상은 애국심을 은근히 고취하려는 장치로, 기업 전시생산위원회가 흔히 사용하던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1][2]

리벳공 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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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당시, “We Can Do It!” 포스터는 1942년에 발표된 노래인 ‘Rosie the Riveter’나, 1943년 5월 29일 《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메모리얼 데이 특집호 표지에 실린 노먼 록웰의 유명한 그림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또한 전시 생산에 여성의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등장한 ‘로지’(Rosie)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여성들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오히려 이 포스터는 1943년 2월에 웨스팅하우스의 공장 노동자 일부를 대상으로 2주간 게시된 뒤에는 거의 40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18][19] 대신 ‘로지’라고 불렸던 실제 여성 노동자들을 촬영한 사진들이 널리 퍼졌다. 미국 전시정보국에서는 전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대규모 전국 선전 캠페인을 준비했지만, “We Can Do It!”은 이 캠페인에도 포함되지 않았다.[17]

미국 재무부는 록웰의 상징적인 그림 《리벳공 로지》를 《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서 빌려와 전쟁 채권을 홍보하는 포스터와 캠페인에 사용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쟁이 끝난 뒤에 저작권 보호를 받으면서 점차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록웰 사망 후 그의 유산을 관리하는 기관에서는 작품들의 저작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했으며, 이는 오히려 원작의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이 그림은 2002년에 약 500만 달러에 판매되었다.[20] 반대로 “We Can Do It!” 그림은 저작권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해당 그림이 다시 주목받을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13]

웨스팅하우스의 역사를 연구한 에드 리스는 “We Can Do It!” 포스터가 전쟁 당시에는 여성 리벳공들을 대상으로 게시된 적이 없으므로 리벳공 로지와 연관시키려는 최근의 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이 포스터는 마이카르타로 헬멧 라이너를 제작하던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는데, 리스는 그림 속 여성이 차라리 ‘마이카르타 성형공 몰리’나 ‘헬멧 라이너 제작자 헬렌’으로 불리는 편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농담을 덧붙이기도 했다.[16]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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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전함 박물관의 생수 자판기에 사용된 “We Can Do It!” 포스터

1982년에 잡지 《워싱턴 포스트 매거진》에서 ‘애국심을 위한 포스터 예술’(Poster Art for Patriotism's Sake)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하고 있는 포스터를 다루는 기사가 실렸는데, 여기에 “We Can Do It!” 포스터도 그중 하나로 소개되었다.[21]

이후 몇 년 동안 “We Can Do It!” 포스터는 여성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활용되었다. 여성주의자들은 이 그림에서 여성 인권 신장의 표상을 발견했다.[22] “We Can Do It!”에서 ‘We’는 ‘우리 여성들’(We Women)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성차별에 맞서 싸우는 여성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는 이 포스터가 처음 제작되었던 1943년에 직원들을 통제하고 노동 불안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된 맥락과는 매우 달랐다.[1][17] 역사학자 제레마이어 액설로드는 이 그림이 여성성을 보여주면서도 ‘남성적인(거의 마초적인) 구도와 몸짓’을 결합하고 있다고 평했다.[23]

1994년 3월, 잡지 《스미스소니언》에서는 전시 포스터를 다루는 특집 기사를 실으며 “We Can Do It!” 그림을 표지에 등장시켰다. 1999년 2월, 미국 우정청에서는 “We Can Do It!” 그림을 바탕에 두고 “Women Support War Effort”(→여성들은 전쟁 수행을 지원한다)라는 문구를 덧붙인 33센트 우표를 발행했다.[24][25][26] 국립 미국사 박물관에서는 1930~40년대의 유물을 전시하는 기획전의 일환으로 1943년에 제작된 “We Can Do It!” 포스터를 공개했다.[27]

통신사 보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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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에 촬영된 나오미 파커의 사진

전쟁 당시 노동자로 일했던 제럴딘 호프 도일은 1984년에 잡지 《모던 머추리티》의 기사에 실린 전쟁 당시 선반 앞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의 사진을 발견했고, 그 사진이 1942년 중후반에 자신이 잠시 공장에서 일하던 때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도일은 잡지 《스미스소니언》에 실린 “We Can Do It!” 포스터를 보고 이 역시 자신의 모습을 본떠 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일은 이와 관련해 금전적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1942년의 해당 사진이 밀러의 포스터 제작에 영감을 주었으며, 따라서 자신이 그 포스터의 모델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다.[28] 이후 도일은 밀러가 제작했던 포스터의 모티프가 된 인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18][29][30][31][32] 하지만 제임스 J. 킴블 교수는 ACME 통신사 보도 사진 아카이브에서 원본 인화 사진을 입수했고, 노랗게 변색된 캡션에는 해당 사진 속 여성이 나오미 파커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진은 1942년 3월 캘리포니아 알라미다 해군항공기지에서 파커와 그녀의 언니가 전시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담은 일련의 사진 중 하나로 밝혀졌다.[33][34] 해당 사진들은 1942년 4월부터 여러 신문과 잡지에 게재되었는데, 그 시기에 도일은 아직 미시간에 있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28] 2015년 2월, 킴블은 93세의 나오미 펀 프랠리와 91세의 에이다 윈 모포드 자매를 인터뷰했으며, 이를 통해 두 자매가 사진 속 인물이 오인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5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역사적 기록을 바로 잡으려던 시도가 번번이 무시되어 왔음을 확인했다.[28] 2018년 1월 20일, 나오미는 향년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35]

다수의 출판물에서 해당 사진이 밀러의 포스터에 영감을 주었다는 도일의 근거 없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28] 하지만 피츠버그 출신의 웨스팅하우스의 역사가이자 밀러와 친구이기도 했던 찰스 A. 루흐는 밀러가 사진을 참고하기보다는 주로 실제 모델을 보고 작업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증언했다.[36] 다만 나오미 파커의 사진은 1942년 7월 5일에 《피츠버그 프레스》에 실렸기 때문에, 밀러가 포스터를 제작하던 당시에 이 사진을 보았을 가능성은 존재한다.[35]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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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협의회 창립 70주년 기념 행사에서 공개된 페이스북 앱 ‘Rosify Yourself’에 사용된 “We Can Do It!” 포스터
2013년 이스라엘 방위군이 “We Can Do It!” 포스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군 선전 포스터

오늘날 “We Can Do It!” 그림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한정된 용도를 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티셔츠, 문신, 머그컵, 냉장고 자석 등 다양한 상품에 활용되었으며,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이런 굿즈를 두고 워싱턴 D.C.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흔해 빠진’ 기념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1] 2008년에는 일부 지역 선거 캠프 활동가들이 세라 페일린, 론 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선거 홍보물에 “We Can Do It!” 그림을 활용했다.[16] 2010년 이성 및/혹은 공포 회복 집회에서는 일부 참가자들이 “We Can Do It!” 그림에 미셸 오바마를 합성하기도 했다.[17] 크로락스와 같은 기업의 광고에도 이 그림이 활용되었는데, 가정용 세제를 홍보하는 한 광고에서는 포스터 속 여성의 왼손 약지에 결혼 반지를 입혔다.[37] 또한 유명 여성, 남성, 동물, 가상의 캐릭터 등으로 다양하게 패러디되었다. 보블헤드 인형과 액션 피겨 장난감으로도 제작되었다.[1] 인디애나폴리스 어린이 박물관에서는 예술가 크리스틴 커밍스가 수천 개의 젤리 벨리 사탕으로 만든 가로 1.2m, 세로 1.5m 크기의 복제 작품이 선보였다.[38][39]

2010년 6월 줄리아 길라드가 여성으로는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에 오르자, 피닉스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멜버른의 한 남성 스트리트 아티스트는 “We Can Do It!” 단색 포스터에 길라드의 얼굴을 합성해 붙였다.[40] 2010년 7월에 피닉스가 제작한 이 포스터가 멜버른 호시어 레인에 부착된 사진이 《어나더 매거진》에 실렸는데, 원래 포스터 오른쪽 하단에 있던 ‘전시생산조정위원회’(War Production Co-ordinating Committee) 표식은 피닉스의 플리커 포토스트림으로 연결되는 URL로 바뀌어 있었다.[41][42][43] 2011년 3월, 피닉스는 오른쪽 하단에 “She Did It!”(→그녀가 해냈다!)라는 문구를 넣은 컬러 버전을 제작했으며,[44] 이어 2012년 1월에는 호주 정치 상황에 대한 실망을 표현하기 위해 포스터 대각선 방향으로 “Too Sad”(→너무 슬프다)라는 글귀를 덧붙였다.[45]

제럴딘 도일은 2010년 12월에 사망했다. 한편 잡지 《어트니 리더》에서는 그녀의 죽음과는 무관하게 당초 예정되어 있던 2011년 1~2월호 표지를 그대로 발간했는데, 표지에는 “We Can Do It!” 그림을 패러디해 오른손을 불끈 쥔 마지 심슨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46] 잡지 편집진은 도일의 별세에 애도를 표했다.[47]

2011년 슈퍼히어로 영화 《퍼스트 어벤져》의 엔딩 크레딧에는 “We Can Do It!” 그림을 입체 영상으로 구현한 장면이 사용되었다. 이 그림은 영국 배우 헤일리 앳웰의 이름이 나오는 타이틀 카드의 배경으로 쓰였다.[48]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광고협의회에서는 1942년에 자신들의 전신 조직인 전시광고위원회에서 ‘전시 여성 고용’ 캠페인의 일환으로 “We Can Do It!” 포스터를 제작했으며, 이를 통해 ‘20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전시 생산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49][50][51] 2012년 2월에 열린 광고협의회 창립 70주년 기념 행사에서는 애니맥스헬프스굿 디지털 에이전시가 제작한 사용자 참여형 애플리케이션이 광고협의회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연동되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이 페이스북 앱의 이름은 ‘Rosify Yourself’로 리벳공 로지에서 따온 이름이었는데, 사용자가 자신의 얼굴 사진을 업로드하면 “We Can Do It!” 포스터에 합성되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52] 페기 콘런 광고협의회 회장 겸 CEO는 협의회의 70년 역사를 다룬 글을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하면서 “We Can Do It!”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그림을 함께 올렸다.[51] 또한 TV 프로그램 《투데이》의 제작진은 두 명의 뉴스 앵커 맷 라우어앤 커리의 얼굴을 각각 “We Can Do It!” 포스터에 합성한 그림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53] 그러나 시튼 홀 대학교의 제임스 J. 킴블 교수와 피츠버그 대학교의 레스터 C. 올슨 교수는 “We Can Do It!” 포스터의 탄생 과정을 조사한 끝에, 이 포스터는 광고협의회가 제작한 것도 아니며 여성 노동자 모집에 사용된 적도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1]

2010년, 미국의 가수 핑크는 자신의 노래 〈Raise Your Glass〉의 뮤직 비디오에서 “We Can Do It!” 포스터의 모습을 따라하는 장면을 담아냈다.[54][55]

“We Can Do It!” 포스터는 이후에도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케이트 베르겐은 코로나19 유행 당시 의료 종사자들의 모습을 “We Can Do It!” 포스터와 유사한 느낌으로 표현했는데, 그녀는 처음에 자신의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료진을 지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5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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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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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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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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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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