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인동 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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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를 달리한다 남의 집안 기록을 통째로 삭제하지 말아 주세요[편집]

상장군계는 상장군계대로 저희 직제학계는 그 밑에 저희 기록을 올리는것이니 삭제를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인물란도 년도별로 올리거나 장현광선생 같이 유명한분을 앞에 두는건 좋은데 무조건 상장군계는 앞으로 직제학계는 뒤에다 배치해서야 되겠습니까 더불어 함께하는 사전이 돼었으면 좋겠습니다 Parkening (토론) 2019년 8월 25일 (일) 06:34 (KST)[답변]

2020-09-07 대량 편집에 대해서[편집]

인물 문단을 삭제하고, '인물' 목차 및 {{참고}} 틀을 추가합니다. ※분류:인동 장씨 그리고 문단 제목의 장식은 지웁니다. 추가된 내용의 저작권 침해와 관련하여, 관련 판을 모두 감추기 처리합니다.(※위키백과를 편집하거나 새 문서를 작성할 때에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참고하여, 이를 밝혀적고 '새로운 글'로 작성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키백과:출처 밝히기, 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 위키백과:각주 등 참고.) -- 메이 (토론) 2020년 9월 7일 (월) 20:10 (KST)[답변]

지속적으로 저작권 침해 내용이 추가되고 있어, 일시적으로 보호가 필요해 보입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7일 (월) 20:16 (KST)[답변]

2020년 9월 7일의 특정판 삭제 신청 이의[편집]

족보와 사료를 근거로 작성하였습니다. Park***** 이라는 작성자가 초등학생이며 인동장씨 직제학계 사람인 거 같습니다만.. 인동 장씨 상장군계 글을 지우거나 해 온 기록들을 역사 보기에서 찾아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상장군계와 직제학계를 따로 만드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HyonH (토론) 2020년 9월 7일 (월) 20:40 (KST)[답변]

2020년 9월 7일의 특정판 삭제 신청 이의[편집]

Gomdoli4696님.. 왜 함부로 문서를 훼손하시는지요? 인동 장씨 페이지의 '역사 보기'를 제대로 확인하시고 일을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19년 5월 15일자 글과 2019년 8월 25일 글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9년 5월 15일자 글이 원래 있던 글입니다. Park*****님이 2019년 5월 15일자 글에서 상장군계 역대인물을 모두 지우고 직제학계에 역대인물과 유적 등을 올리셨는데 왜 상장군계 역대인물을 지우시며 그리고 직제학계 역대인물과 유적 등에 대해 올리려면 제대로 올리시든지 깨진 글자며 엉망인 라인 폭을 올리셔서 그래서 제가 다시 원래 있던 상장군계 역대인물을 기재했으며 깨진 글자의 직제학계 역대인물과 유적 등을 깨끗이 정리해 다시 올려 드렸습니다.

- Park*****님이 상장군계 글이 너무 길어 직제학계 글이 너무 아래로 내려가 불만이 있으신지 상장군계 글과 직제학계 글 위치를 바꾸려고 하는 등 직제학계 글이 너무 아래로 내려가 불만이 있으신 거 같아 그래서 상장군계 페이지와 직제학계 페이지를 따로따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계파가 달라서 상장군계 페이지와 직제학계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두어야 Park*****님 케이스와 같은 불만의 소지를 없앨 수 있습니다.

- Gomdoli4696님과 그 외 몇몇 분께 드리는 얘기입니다만 왜 함부로 과거 합격자 명단과 대표인물, 역대인물 명단을 삭제하시는 지요? 과거 합격자 명단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이트에서 일일이 합격자 명단을 조사해 올린 자료입니다. 대표인물과 역대인물 명단은 족보와 종친회 소식을 바탕으로 올린 것입니다. Gomdoli4696님과 그 외 몇몇 분께서 하시는 일이 또 다른 문서 훼손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 제가 2020년 9월 8일 (화) 04:21에 올린 상장군계 페이지와 직제학계 페이지를 분리한 버전으로 달려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상장군계 페이지는 상장군계 종친이 관리하고 직제학계 페이지는 Park*****님과 같은 직제학계 종친이 관리하게 해 두셔야 서로간에 분쟁의 소지를 없앨 수 있습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8일 (화) 10:31 (KST)[답변]

2020-09-08 문서 보호[편집]

편집 분쟁 및 저작권 침해 내용의 반복 삽입과 관련하여 1주일간 장기보호합니다. -- 메이 (토론) 2020년 9월 8일 (화) 12:11 (KST)[답변]

2020년 09월 07일의 대량 편집에 대해서[편집]

지속적인 분쟁 발생으로 분쟁 발생을 막고자 토론 문서에 이유를 남깁니다. 해당 내용은 위의 메이님의 토론을 참고한 것임을 밝힘니다.

가독성을 해치는 과도한 한자를 제거하였고, 관련없는 내용을 제거하였습니다. 문장의 문체를 개선하였습니다. 참고 바라며, 이의가 있을시 아래에 남겨 주시길 바랍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9일 (수) 16:03 (KST)[답변]

GTX1060님.. 사용자토론:GTX1060에서 말씀드린 대로 상장군계 및 직제학계의 과거 급제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조사하여 그 명단을 바탕으로 기입된 것입니다. 예전 버전에는 그 명단까지 다 기입해 두었으며 출처도 밝혀 두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권한 가지신 분들이 명단을 지우고 다른 버전으로 돌리면서 출처에 대한 기재가 없어진 것입니다. 제가 법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GTX1060님께 감정이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만 아래 내용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납득할 만한 답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상장군계 내 역사란에 1천여년 인동에 종가와 유지를 보존해 온 사실과 옥산화벌로 불리는 명문이라는 기술을 왜 삭제하신 이유로 밝히신 관련없는 내용이라 규정하시는 그 근거는 무엇인지요? (요전번에 그 기술에 대한 출처에 대한 기입이 없었습니다만 차후에 출처를 밝혀두도록 하겠습니다)
• 상장군계 및 직제학계 내의 과거 급제자 수를 삭제하신 이유로 밝히신 관련없는 내용이라 규정하시는 그 근거는 무엇인지요?
사용자토론:GTX1060에서 답변으로 말씀하신 다른 한 가문의 과거 급제자 수와 그 명단을 시간 날 때 지우겠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언제까지 지우시겠는 건지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저는 저희 가문을 비롯해 그 가문의 과거 급제자 수와 그 명단도 지워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장군계 및 직제학계의 과거 급제자 수와 명단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확히 조사해서 나온 명단을 바탕으로 기입한 것이며 인동장씨 가문과 관련 없는 내용도 아니며 정확한 내용도 아니며 지워진 출처도 기입하겠으며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내용도 아닌 기술이므로 차후 삭제되어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9일 (수) 19:11 (KST)[답변]
더불어 출처 불분명이라는 태그를 삭제 해 주셨으면 합니다. GTX1060님 개인적으로 관련없다 판단하셔서 삭제하신 내용에 더해 또 불분명하다 판단되시는 내용이 있으신지요? 그렇다면 먼저 친분 있는 가문을 걸고 넘어져 그 가문 분께는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GTX1060님 판단하신 내용을 근거로 말하자면 예를 들어 안동 권씨 및 안동 장씨 페이지에도 출처 불분명이라는 태그가 달려 져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가문 페이지에도 출처 불분명이라는 태그를 다실 게 아니라면 종가집 자손으로서 저희 가문 페이지에서 그 태그를 삭제해 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0일 (목) 04:15 (KST)[답변]
다른 사이트를 인용하는 부분이나 조사로 나은 부분에 대해서는 출처를 밝히겠습니다만 사실을 기반해 기술한 것에 대해 삭제하고자 하신다면 먼저 왜 삭제되어 져야 하는지 정당한 반대 근거를 조사해 그 근거를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0일 (목) 05:14 (KST)[답변]
출처 필요 틀은 그 문서의 기재된 내용에 출처가 없거나 적어 출처를 적어달라는 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틀:출처 필요 문서를 참고 바랍니다. 이 문서에는 출처가 없어 단 것임을 밝힙니다. 위키백과에서는 '사실'이라고 다 기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닌 점 참고 바랍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0일 (목) 16:40 (KST)[답변]
'상장군계 내 역사란에 1천여년 인동에 종가와 유지를 보존해 온 사실과 옥산화벌로 불리는 명문이라는 기술을 왜 삭제하신 이유로 밝히신 관련없는 내용이라 규정하시는 그 근거는 무엇인지요?' 이 부분은 이 편집으로 추측되는데, 해당 내용은 인동의 역사로 삭제한 것이며, 타 성씨 문서의 과거 급제자 수는 시간날때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정리할 수는 모릅니다. 재촉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과거 급제자 수를 지운 이유는 아래를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위키백과는 잡학사전이 아닙니다. 단순히 정보를 모아 놓는다고 백과사전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정보가 사실이라고 해서 그 정보가 백과사전에 포함될 만한 내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0일 (목) 16:52 (KST)[답변]

GTX1060님.. 어느 한 문서에 있는 어떤 정보에 대해 적합, 부적합를 판단해야 한다면 그 문서를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문과 관련 없는 사람에게는 그게 하찮은 정보, 관련없는 정보, 잡학으로 보여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가문을 열람하는 주 독자는 그 가문 사람일텐데 그 가문 사람에게는 그 정보가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시는지요? GTX1060님께서 지우신 그리고 지우려고 하는 그 정보들은 그 가문에 대해 알려고 방문한 그 독자들에게는 소중한 정보들입니다. 독자에게 중요한 정보는 결국 위키백과에의 기여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타 성씨 문서의 과거 급제자 수는 시간날때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정리할 수는 모릅니다. 재촉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고 개략적인 스케줄이라도 말씀해 주십시요. 요전번 얘기한 그 가문 외에도 그러한 가문 무수히 많습니다. GTX1060님 본관 어디신지요? 저희 가문 페이지에 한 거처럼 다른 가문 페이지에도 하시려면 일이 참 많으시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지 마실 것을 건의 해 드립니다. 이유는 위에 기술한 내용을 참조해 주십시요. 마지막으로 위키백과:위키백과에 대한 오해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 위키백과는 검열을 하지 않습니다. • 위키백과는 관료제가 아닙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02:55 (KST)[답변]
어느 부분에서 삭제하셨는지 찾으면 금방 찾을 수 있을텐데 1천여년 인동에 종가와 유지 보존과 옥산화벌이라는 문구는 GTX1060님께서 인동 역사 단락에서가 아니라 상장군계 역사 단락에서 삭제하신 겁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1:37 (KST)[답변]
GTX1060님.. 안동 김씨, 안동 장씨, 파평 윤씨 등의 페이지를 봤을 때 저희 가문 페이지에 출처 불분명이라는 태그가 달려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태그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03:42 (KST)[답변]
성씨 문서를 열람하는 사람이 그 성씨 관련 사람이라는 근거와, 성씨 관련 사람이 과거 급제자 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근거를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성씨 문서는 워낙 방대하여, 시간날때 조금씩 편집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본관은 개인 정보로 알려드기 어렵습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5:31 (KST)[답변]
옥산화벌이라는 문구를 삭제하였다고 하셨는데, 그 문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시면 실수로 삭제했는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상단의 역사 보기 버튼을 클릭하시면 더욱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링크해주신 '안동 김씨, 안동 장씨, 파평 윤씨' 문서 모두 출처가 달려 있지 않은 문서입니다. 다른 문서가 출처가 달려 있지 않다고 이 문서에 출처 필요 틀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출처 필요 틀을 제거하시려면, 문서에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삽입해 주시길 바랍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5:34 (KST)[답변]
GTX1060님.. 위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상장군 장금용계 인동 장씨의 역사 단락에서 삭제하셨습니다. GTX1060님이 편집하신 역사 보기가 몇 개 되는 것도 아니고 찾으려고 하면 금방 찾으실텐데 왜 못찾으시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안동 김씨, 안동 장씨, 파평 윤씨 등 다른 문서에서 출처가 달려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셨다면 몇 초가 걸리는 것도 아니고 확인하신 대로 바로 다셔야지 왜 저희 가문만 그걸 달아두십니까? 그리고 그 가문을 검색해 보는 사람이 그 가문과 관련된 사람이 검색하지 관련도 없는 사람이 그걸 검색해 열람하는 지요? 어느 쪽이 더 확율이 높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먼저 일전에 여쭤봤습니다만 과거 급제자 수를 삭제하실 땐 그 근거로 드신 그 가문과 관련없다고 판단하신 그 근거를 말씀해 주십시요.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6:43 (KST)[답변]
옥산화벌이라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혹시 넘긴 것가 싶어 메모장의 검색 기능을 사용해 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안동 김씨, 안동 장씨, 파평 윤씨 문서 모두 출처 필요 틀과 정리 필요 틀을 부착했음을 알립니다. 가문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검색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럼 저는 인동 장씨와 관련이 하나도 없는데, 이 문서를 편집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더욱이 위키백과에는 특수:임의문서라는 기능이 있어, 관련이 없는 사람이 더욱 열람하기가 쉽습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6:49 (KST)[답변]
관련 없는 사람이 열람하기 더 쉽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라 생각하는지요? 그리고 자기가 삭제한 내용에서 그 단어 하나 못찾아 내시는 분이 ... 뭐라 말해야 할지 저도 참 남감합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7:14 (KST)[답변]
저는 관련없는 사람이 열람하기 쉽다고 발언한 적이 없습니다. 위키백과는 인터넷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오픈된 백과사전이므로, 성씨 관련자에 초점에 맞춰 편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메모장이라는 '기계'로 검색했지만, 단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계도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직접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고 자기가 삭제한 내용에서 그 단어 하나 못찾아 내시는 분이 ..'라는 발언은 인신 공격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신 공격 반복시 차단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의 바랍니다.GTX1060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9:04 (KST)[답변]
네..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한 게 아닌데 주의하겠습니다. 단지, 한가지 상장군 장금용계 인동 장씨의 역사 단락에서 삭제하신 문장은 추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상장군 장금용계 인동 장씨의 역사 단락에서 삭제하신 문장입니다. 상장군 장금용계 인동 장씨의 역사 단락의 '.. 본관으로 고집하는 후손도 있다.'라는 문장 바로 뒤에 다음 문장을 추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1천여년 인동에 세거하며 종가와 유지를 보존해 오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많은 명현석학과 공경대부충신효열을 배출하였다. 옥산화벌(玉山華閥)로 알려져 있다.'
출처로서는 아래를 들 수 있습니다. 상장군계 인동 장씨를 옥산화벌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성씨닷컴은 성씨 정보만 전문으로 다루는 신뢰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그 아래 중앙일보 기사에도 상장군계 인동장씨를 옥산화벌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 상장군계 인동장씨 - 옥산화벌
인동장씨 시조 상장군 장금용 - 성씨닷컴
인동 장씨 집성촌-경북 구미시 인동동 - 중앙일보
인동 장씨(제자 초정 권창윤) - 중앙일보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20:26 (KST)[답변]

확인 후 조치하였습니다. 출처를 찾아주신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2일 (토) 09:42 (KST)[답변]

GTX1060님..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스러우시겠습니다만 다음의 처리도 부탁드립니다.

• '상장군 장금용계 인동 장씨' 단락의 '역사'란에서 삭제하신 문장은 원문 그래도 살려 주셨으면 합니다. '인동 장씨' 페이지의 '역사 보기'에서 편집 역사를 보시면 2020년 9월 9일 (수) 15:45‎ 버전에 '1천여년 인동에 세거하며 종가(宗家)와 유지(遺址)를 보존해 오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많은 명현석학(名賢碩學)과 공경대부충신효열(公卿大夫忠臣孝烈)을 배출한 옥산화벌(玉山華閥)로 불리는 명문거족(名門巨族)이다.' 라고 기술되어 있던 것을 GTX1060님께서 2020년 9월 9일 (수) 15:40‎ 자에서 이 전체를 삭제하셨습니다. 요전번에 제 요청으로 일부를 살려 주셨는데 아무리 봐도 원문 그래도 살려 주셨으면 합니다. '상장군 장금용계 인동 장씨' 단락의 '역사' 란에 '.. 옥산을 본관으로 고집하는 후손도 있다.'라는 문장 바로 뒤에 원문을 살려 다음과 같이 한자도 빼시지 마시고 그대로 재기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천여년 인동에 세거하며 종가와 유지를 보존해 오고 있으며 명문거족으로 많은 명현석학과 공경대부충신효열을 배출하였다. 옥산화벌(玉山華閥)로 알려져 있다.' 출처로는 요전번 제시한 옥산화벌에 대한 2차 출처를 출처로 제시하겠습니다. 차후에 각주로 그 출처를 밝혀 두도록 하겠습니다.

• 또한 일전에 GTX1060님이 직제학 장계계 인동 장씨의 과거 급제자 수를 삭제하면서 '직제학 장계계 인동 장씨' 단락의 '종가·유적'란 전체를 삭제하셨는데 '직제학 장계계 인동 장씨' 단락의 '분파'란 바로 아래에 아래 내용으로 종가·유적을 기입해 주셨으면 합니다.

== 종가·유적 ==
종가는 경상북도 영주시 화기리에 위치하고 있다. 보물 501호 장계 홍패 및 장말손 백패·홍패(張桂 紅牌 및 張末孫 白牌ㆍ紅牌)는 인동 장씨의 조상인 장계(張桂)와 그의 후손인 장말손(張末孫)에게 과거에 급제한 것을 알리는 합격증서로 총 3점이며, 인동 장씨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다. 장계에게 내린 홍패는 고려 충렬왕 31년(1305)에 내린 것으로 서체는 행서체이다. 장말손에게 내린 백패는 조선 단종 1년(1453)에 진사시험 2등 제7인에 합격한 증서이고, 홍패는 세조 5년(1459)에 문과의 병과 제3급에 합격한 증서이다. 보물 502호 장말손초상(張末孫肖像)은 조선시대 문신인 장말손을 그린 초상화로, 크기는 가로 107㎝, 세로 171㎝이다. 보물 604호 장말손 적개공신교서(張末孫 敵愾功臣敎書)은 세조 13년(1467)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수훈을 세운 45인의 공신들에게 내린 교서로서, 그 가운데 장말손은 2등공신으로 선정되어 적개공신의 교서를 받았다. 보물 881호 조선 세조 때의 명신인 장말손(1431∼1486)의 것으로 패도(佩刀)와 적개공신회맹록이다. 패도는 세조 12년(1466)에 함경도 회령에서 오랑캐를 물리친 공으로 왕으로부터 옥적(옥피리) 1정(丁)과 은배(은잔) 1쌍과 함께 하사받은 것이다. 적개공신회맹록은 세조 13년(1447)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에 임명되어 예종 원년(1469) 3월에 내린 회맹록이다. 보물 1005호 조선 세조부터 성종 때까지의 문신인 장말손(1431∼1486)의 종손가에 보관되어 전해오는 고문서들로 5종 18점이다. 이들 고문서에는 고려 우왕 11년(1385) 장말손의 증조(曾祖)인 장전(張戩) 의 소지(所志)를 비롯하여 장전의 논밭·노비소유관계 문서와 도망간 노비를 잡아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 문서가 있다. 시도 민속자료 98호 인동장씨 연복군 종택 장말손의 후손 장언상이 1500년대 후반 건립한것으로 약 50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는 종택이다.

• 그리고 인동 장씨 페이지의 '본관' 란에 오모군이 최근 수정한 글보다는 GTX1060님이 작성한 '인동 장씨의 본관인 인동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이 글이 더 좋을 듯 싶습니다. 일주일 전에 있던 그 원문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어렵다면 GTX1060님이 작성한 '인동 장씨의 본관인 인동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이 글이 좋을 듯 싶습니다.

수고스럽겠습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4일 (월) 01:31 (KST)[답변]

옥산화벌 문구는 현재 서술되어 있습니다. 다시 확인 바라며 종가 문단는 해당 내용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가져와 주시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4일 (월) 14:06 (KST)[답변]
GTX1060님이 최초 삭제하시기 전의 최초 원문에서 명문거족이란 말이 빠져 있습니다. 아래 원문을 참조하시고 현재 게시된 게시문으로부터 그 아래 수정문으로 고쳐 주셨으면 합니다. 화벌이라 하면 널리 이름난 명문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상장군계가 전체 인동장씨의 8할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장군계를 옥산의 명문, 옥산의 거족이라 합니다. 요전번 제시한 옥산화벌에 대한 출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1천여년 인동에 세거하며 종가(宗家)와 유지(遺址)를 보존해 오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많은 명현석학(名賢碩學)과 공경대부충신효열(公卿大夫忠臣孝烈)을 배출한 옥산화벌(玉山華閥)로 불리는 명문거족(名門巨族)이다.
•현재 게시문: 1천여년 인동에 세거하며 종가와 유지를 보존해 오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많은 명현석학과 공경대부충신효열을 배출한 옥산화벌로 알려져 있다.
•수정문: 1천여년 인동에 세거하며 종가와 유지를 보존해 오고 있다. 명문거족으로 많은 명현석학과 공경대부충신효열을 배출하였다. 옥산화벌(玉山華閥)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직제학계의 종가·유적은 제가 작성한 게 아니라 직제학계 분이 작성한 거라 지금이 시간이 없어 차후에 출처를 찾아 제시하겠습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4일 (월) 15:11 (KST)[답변]
해당 문구로는 광고성 문구로 보여 작성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 사용자토론에 말 남기지 말아주세요.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4일 (월) 15:18 (KST)[답변]
GTX1060님..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시다면 다음의 처리가 필요되어 집니다. 확인 후 처리 부탁드립니다.
'직제학 장계계 인동 장씨' 단락의 '역사'란에 '시조 장계는 고려 충렬왕 31년 국학진사 권지도평의녹사에 등과하여 진현전직제학을 거쳐 예문관대제학에 이르고 옥산군에 봉해졌으며 인동현의 남쪽 발영전에 터를 잡아 본관을 인동으로 하였다. 직제학공 이래 후손들이 발영전에 세거하면서 명문의 기틀을 다졌으며 조선초에 5개 파로 분파되어 인동을 떠나 임지인 경북 영주, 예천, 문경과 충북 단양으로 옮겨 살았다.' 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만 그 중 '명문의 기틀을 다졌으며'에서 '명문'이란 단어는 '가문'으로 바꿔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는 • 말씀하신 광고성 문구로 보일 수 있는 점 • 명문이라 하면 상장군계가 더 명문일 것입니다만 ’상장군 장금용계 인동장씨' 단락의 '역사'란에서도 원래 원문에 있던 '명문거족'이란 단어를 삭제되어져 있으며, • 그 무엇보다도 일전에 제시한 아래 자료에서도 '명문의 기틀을 다졌다'가 아니라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라고 기술되어 있는 점 • 광산 김씨 가문 페이지에선 명문가라고 적혀 있습니다만 그 외 많은 명문 가문의 페이지에서도 명문이란 말은 기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겠습니다.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55> 인동장씨(仁同張氏) - 세계일보
직제학계의 시조는 장계이다. 장계는 고려 충열왕 때 등과하여 보문각 직제학을 지내고, 옥산공에 봉해졌다. 그 후손들이 인동현 발영전에 전거하면서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12)인동 장씨(仁同張氏)-591,315명 - 서울이코노미뉴스
장계(張桂)는 고려 충렬왕 31년(1305) 국자진사 도평의녹사에 등과하여 보문각 직제학을 지내고 옥산공(玉山公)에 봉해졌다. 조선 초에 5개 파로 나뉘어 임지에 따라 경상북도 영주, 예천, 문경과 충청북도 단양 지역으로 옮겨 살았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4일 (월) 15:54 (KST)[답변]
수정 완료했으나, 밑에서 두 문단은 무엇을 요청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5일 (화) 15:53 (KST)[답변]
확인 고맙습니다. 아래 세계일보나 서울이코노미뉴스의 직제학 관련 뉴스는 상기 지적의 '역사'란에서 왜 '가문'이라는 단어로 바뀌어야 하는지 그 출처를 제시한 것입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5일 (화) 17:10 (KST)[답변]

상장군계와 직제학계의 페이지 분리에 대하여[편집]

아래 Gomdoli4696님께 드린 답변으로 기술을 대신 하고자 합니다. 상장군계와 직제학계는 인동이란 본관은 같이 사용합니다만 조상을 달리 하는 서로 다른 가문입니다. 각 계파내 종친께서 인동장씨 페이지 내에서 각 계파에 대해 기술할 때 문서의 길이나 위치에 따라 이번처럼 불만이 생길 수 있어 다시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클뿐더러 본관은 같은 인동을 사용합니다만 조상을 달리하는 서로 다른 가문이기 때문에 인동장씨 페이지 내에서 각 계파별로 페이지를 분리되어 져야 합니다.

Gomdoli4696님.. 사용자토론:GTX1060에 질문하신 것에 대해 답변을 달아 드렸습니다. 아래 Gomdoli4696님의 질문과 답변입니다. [토론:인동 장씨]에도 똑같이 달아 두겠습니다. 더불어 인동 장씨 페이지에 분쟁에 의한 보호를 달아 두셨던 데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논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종친이 동의"했다는 것을 표시하시고 관련된 내용을 굳이 분리하겠다고 하시면 그에 따른 마땅하고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 Daedan (토론) 2020년 9월 9일 (수) 17:32 (KST)
Gomdoli4696님.. 요전번 문서 편집 분쟁의 당사자였던 Parkening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제시합니다. 저도 위키백과 사용이 서툴어 이렇게 붙여 놓으면 그 페이지로 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용자토론:HyonH으로 가면 Parkening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Parkening께서 기재하신 일시와 인동장씨 [역사 보기]의 이력을 보시면 Parkening께서 말씀하시는 'HyonH님의 깊으신 뜻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생각했던것이 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 것은 제가 요전번 행한 상장군계와 직제학계 페이지를 분리하여 기재하는 것을 말하는 걸 아실 수 있습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9일 (수) 17:48 (KST)[답변]
• HyonH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HyonH님의 깊으신 뜻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생각했던것이 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 하지만 다른분들께서 직제학계를 배제하거나 축소시키시려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서로가 같은 본향을 둔 계대를 확인할 수 없어 나뉘었지만 어쩌면 한뿌리 일수도 있는 서로가 반가운 인동장씨라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리고 언제나 좋은날만 가득하세요 Parkening (토론) 2020년 9월 8일 (화) 12:29 (KST)
여러번 말씀 드렸습니다만 상장군계와 직제학계는 계파를 달리 하기 때문에 인동장씨 페이지 내에서 각 계파별로 페이지를 분리하야 기술되어 져야 합니다. 그렇게 분리해 두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문서 편집 분쟁이 또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9일 (수) 19:31 (KST) --HyonH (토론) 2020년 9월 9일 (수) 20:16 (KST)[답변]

Gomdoli4696님.. 말씀하신 이의 제기에 대해 직제학계 종친의 동의을 받은 점, 조상을 달리하는 사실상 서로 다른 가문이라는 점, 다른 가문이기 때문에 각 가문(계파)의 기술 길이나 위치에 따라 또 다시 분쟁이 생기기 쉽다는 점을 답변으로 드렸습니다. 분쟁에 의한 보호 태그의 삭제도 부탁드립니다. 이에 대해 답변을 부탁드립니다.--HyonH (토론) 2020년 9월 9일 (수) 21:19 (KST)[답변]

제 답변은 이전과 같습니다.
의견 요청 붙였으니 다른 사용자의 의견을 기다려봅시다. — Daedan (토론) 2020년 9월 9일 (수) 21:46 (KST)[답변]

덧붙여, 예를 들어 안동 권씨와 예천 권씨는 권씨라는 분류에서 본관이 달라 각각 다른 페이지에 그 가문을 기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인동 장씨 분류 내에서 인동이라는 본관은 사용하지만 조상과 계보를 달리하는 사실상 다른 가문이라면 인동 장씨 분류 내에서 그 가문 별로 분류해 그 가문만의 페이지를 만들어 그 페이지에 그 가문에 대해 기술하는 게 더 합당하다 생각합니다. 한낱 이름은 같지만 사실상 다른 사람인 동명이인인 경우에도 그 사람들만의 페이지를 따로 가지고 있는데 인동이라는 본관만 사용하지 조상과 계보를 달리하는 사실상 다른 가문이라면 그 가문의 사람들이 몇명인데 그 가문만의 페이지를 가지는 게 더 합당하다 생각되지 않으시는지요? --HyonH (토론) 2020년 9월 10일 (목) 04:04 (KST)[답변]

안동 김씨도 구 안동 김씨와 신 안동 김씨로 각각 페이지를 나누어 각 페이지에 따로 기술하셨네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안동 김씨도 조상이 달라 페이지를 나누어 기술하시는 데 조상과 계보를 달리하는 사실상 다른 가문인 저희가 페이지를 나누어 기술하겠다는 데 안동 김씨 페이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실 거라면 저희 인동 장씨 내에서도 페이지를 나누어 기술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0일 (목) 04:43 (KST)[답변]

전 말씀드릴 대로 계속 말씀드렸는데, 계속 다른 사용자들이 답변을 해주지 않아 답답하다는 식으로 발언해주시고 계십니다. 이미 말한 다른 사용자들의 의견은 다 동일할 테고(사토:메이, 사토:GTX1060) 다른 사용자의 의견을 듣는 것이 났습니다. — Daedan (토론) 2020년 9월 10일 (목) 08:01 (KST)[답변]
위키백과에서 새로운 문서를 생성하려면 그 주제가 문서 등재 기준을 만족하여야 합니다. 문서 등재 기준을 만족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그 주제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주요하게 다루어 지는 것입니다.(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일반적으로 MBC, JTBC, 한겨레, 한국일보 등 메이저 언론을 말합니다.) 현재 상장군 장금용 인동 장씨와 직제학 장계계 인동 장씨 모두 각각의 구글 검색 결과로 볼때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걸로 보이는 점 참고 바랍니다. 참고할 만할 문서로는 위키백과:문서 등재 기준, 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습니다. 둘다 인동 장씨라는 공통점이 있어 현 상태 유지가 저의 의견입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0일 (목) 16:46 (KST)[답변]

먼저 페이지를 분리한 안동 김씨는 저희 인동 장씨와 똑같은 케이스이며 안동 김씨로 검색했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은 저희 인동 장씨와 매 한가지인 점을 밝혀 드립니다. 위키백과:문서 등재 기준 (회사 및 단체)에 기술된 '그 주제가 신뢰할 수 있고 독립된 2차 출처에서 주요하게 다루어 지는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음과 동시에 '이 지침은 사용자들이 가능하면 따라야 하는 보편적인 기준이며, 상식과 상황에 따라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한 가문이 회사나 단체도 아니고 뉴스나 신문에 나올 일이 뭐가 그리 있겠습니까? 특별히 씨족이나 가문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으며 억지로 끼워 맞추면 비상업적인 단체들에 속할텐데 그 단락에 '단체의 활동 범위가 규모면에서 전국적이거나 국제적일 것'이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결국엔 2차 출처에서 주요하게 다루어 지는가를 중요하게 본다는 것은 결국엔 이게 독자층이 얼마나 끌어 들일 수 있나를 의식한다는 얘기인데, 상장군계, 직제학계 다 합쳐 인동장씨가 2015년 기준으로 666,652명인데 16만명 정도가 노인이나 취학전 아동이라 쳤을 때 50만명이 인동장씨 페이지의 그 잠재적 독자층(이용자층)입니다. 50만명의 독자층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수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전 메시지에서 밝힌 3가지 이유(양 가문 모두 페이지 분리 희망; 사실상 서로 다른 가문이라는 사실; 페이지 분리로 인해 차후 문서 편집 분쟁 요소 제거)에 더해 페이지 분리가 타당한 이유를 요약해 다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50만명의 단발적이지만 지속적인 독자층(이용자층)이 있다는 점 (2) 똑같은 케이스인 안동김씨의 페이지 분리 선례가 있다는 점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01:58 (KST)[답변]

안동 김씨 가문 분께는 죄송합니다만 GTX1060님 안동 김씨 페이지에 대한 의견도 제시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해 제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03:19 (KST)[답변]

말씀해신 근거로 상식과 상황에 따라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라고 하셨는데 제 상식으로는 저 지침을 현재 상황에서 예외적 상황으로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해당 지침은 문서의 성립에 관한 것으로, 추가 분리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위키백과는 해당 정책이 수립된 배경에 따라 적절하게 해석하는 것이지, 그 지침에 여러 분석을 하며 준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문구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위키백과:위키백과에 대한 오해#위키백과는 관료제가 아닙니다.) — Daedan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0:08 (KST)[답변]
Gomdoli4696님.. 위키백과:문서 등재 기준 (회사 및 단체)은 GTX1060님께서 참고할 문서로 추천하셔서 그 기준을 예로 든 것이며 찾아보니 페이지 추가 분리에 대해 규정된 그 외 다른 기준은 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Gomdoli4696님께서도 안동 김씨 페이지에 대한 의견도 제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1:24 (KST)[답변]
성씨가 단체라는 점에서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성씨가 단체라는 근거를 제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현재 성씨에 관해서는 등재 기준이 없는 상황이므로, 기본 등재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예외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만, 현재 인동 김씨는 예외로 보기 어렵습니다. 가문이 뉴스에 나올 일이 적은건 그쪽 가문의 사정입니다. 문서 내용의 분리는 새로운 문서가 생성되는 것(=새로운 문서가 등재되는 것)이므로, 문서 등재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5:38 (KST)[답변]
GTX1060님.. 어디 인동 김씨라는 본관이 있는지요? 제가 성씨가 단체라고 했습니까? 위 기술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동 장씨와 똑같은 케이스인 안동 김씨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주십시요.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6:16 (KST)[답변]
'특별히 씨족이나 가문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으며 억지로 끼워 맞추면 비상업적인 단체들에 속할텐데' 이 부분입니다. 안동 김씨 문서에 대한 어떤 의견을 제시하라는 건지 명확하게 답변해 주시길 바랍니다. 본관은 제가 잠시 헷갈린 것으로 보입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6:41 (KST)[답변]
안동 김씨 가문도 조상과 계보가 달라 구 안동 김씨, 신 안동 김씨로 페이지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그기에 대해 먼저 답변해 주십시요. 그 가문은 용인하고 저희 가문은 그렇게 하게 놔둘수 없다는 것인지요?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6:54 (KST)[답변]
문서가 너무 길어서 분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분리한 분인 Yoyoma88님에게 물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6:59 (KST)[답변]
저희 가문도 똑같은 케이스라 가문 별로 페이지를 분리하겠다는 데 문제 있으십니까? 그 가문은 용인하고 저희 가문은 그렇게 못하게 제지하시겠습니까?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7:06 (KST)[답변]
맨 위에서 분리하려는 이유가 '상장군계와 직제학계는 인동이란 본관은 같이 사용합니다만 조상을 달리 하는 서로 다른 가문입니다.'이라고 하셨습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7:08 (KST)[답변]
이 기술은 왜 생략하시는지요? '상장군계와 직제학계는 인동이란 본관은 같이 사용합니다만 조상을 달리 하는 서로 다른 가문입니다. 각 계파내 종친께서 인동장씨 페이지 내에서 각 계파에 대해 기술할 때 문서의 길이나 위치에 따라 이번처럼 불만이 생길 수 있어 다시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클뿐더러 본관은 같은 인동을 사용합니다만 조상을 달리하는 서로 다른 가문이기 때문에 인동장씨 페이지 내에서 각 계파별로 페이지를 분리되어 져야 합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7:17 (KST)[답변]


GTX1060님.. 위키백과:문서 등재 기준에서 '어떠한 주제가 신뢰할 수 있는 2차 출처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경우 위키백과에 등재될 수 있습니다.'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2차 출처(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에서 상장군계 및 직제학계 인동 장씨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상기 2차 출처 이외의 다른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도 검색해 보면 더 나올겁니다. GTX1060님의 저 위 메시지를 보면 검색하실 때 2차 출처를 검색어로 같이 넣지 않고 검색하신 거 같은 데 2차 출처를 검색어로 같이 넣지 않고 검색하면 그 많은 웹 문서에 파묻혀 2차 출처에서의 상장군계 및 직제학계 인동 장씨 웹 문서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래 참조해 주십시요.

• 상장군계 인동장씨

인동 장씨 집성촌-경북 구미시 인동동 - 중앙일보, 
 – 인동 장씨(제자 초정 권창윤) - 중앙일보반대파 노론이 정조 독살? 당시 남인들마저 믿지 않아 - 동아일보화산서당 영남대 교내로 옮겨 복원 - 동아일보재계 한지붕 두 가족, 안동 권씨·인동장씨를 아시나요 - 중앙일보인동장씨 남산파 종택…조선 초 장안세 선생 때부터 문호 신장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 직제학계 인동장씨

400년 張씨(인동 張씨) 마을의 '마지막 추석' - 조선일보 > 사건과 스토리경북 宗家 500년만의 외출 - 동아일보인동장씨(직제학계) 영주 입향 첫 터전 ‘전계(箭溪)’ < 우리마을 탐방 < 영주 톺아보기 < 기사본문 - 영주시민신문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8:32 (KST)[답변]

링크해주신 기사 모두 확인해 보았습니다. 상장군계 인동장씨는 중앙일보의 '인동 장씨(제자 초정 권창윤)' 기사로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주요하게 다루어 진 것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문서 등재 기준을 충족하였으므로, 분리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직제학계 인동장씨는 문서 등재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일보의 첫번째 기사는 인동 장씨 마을을 다룬 것으로, 직제학계 인동장씨를 다룬 것이 아닙니다. 두번째 기사도 코엑스에서 전시회가 열렸다는 내용으로, 인동 장씨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3번째 기사의 언론사는 영주시민신문의 기사인데, 이는 신뢰할 수 있는 언론사가 아닙니다. 다른 기사를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19:04 (KST)[답변]

조상이 다르면 이름만 같은 무슨 무슨씨라도 따로 괄호 표시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성씨 하타씨의 경우 하타씨, 하타씨 (波多), 하타씨 (무가) 각각 나뉘어있습니다. 그리고 안동 김씨를 나눈 이유는 2006년에 이미 중국어 위키에 zh:舊安東金氏zh:新安東金氏가 나뉘어있어서 이를 참고하였습니다. Yoyoma88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20:10 (KST)[답변]
Yoyoma88님.. 답변 감사합니다. 나누길 잘 하신 겁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1일 (금) 20:25 (KST)[답변]

GTX1060님.. 아래 첫번째, 두번째 기사는 인동장씨에 대한 기사입니다만 그 중 직제학계에 대한 설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래 세번째 기사는 직제학계 인동장씨에 대한 기사입니다. 차후 인동장씨 페이지 내에서 문서 편집 분쟁 예방의 차원에서라도 (안동 김씨 페이지에서처럼) 직제학계도 분리해 등재되어 져야 합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 인동장씨 소개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55> 인동장씨(仁同張氏) - 세계일보(12)인동 장씨(仁同張氏)-591,315명 - 서울이코노미뉴스

• 직제학계 인동장씨

종가 8. 영주 장말손 종가 - 경북일보

--HyonH (토론) 2020년 9월 12일 (토) 03:01 (KST)[답변]

직제학계도 문서 등재 기준을 만족하니, 분리핫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를 찾아주신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2일 (토) 09:45 (KST)[답변]
의견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메이저 언론만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다가, 메이저 언론에서 언급되었는지만 따진다면 등재하기 힘든 주제가 백과사전에는 많습니다. 규장전운이나 케미 사미어 같은 언어학적 주제나, 고대 인물 같은 역사적 주제, 검산리역 같은 것은 메이저 언론에 보도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가문도 비슷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언론 보도량만 따진다면 문천 공씨행주 은씨는 삭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관이 같고 성도 같지만 시조가 다르면 다른 가문입니다.(같은 본관, 성, 조상 아래에서 파가 갈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경우 파가 다를 뿐 시조가 같으니 같은 가문입니다.) 동음이의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어권의 예시를 들면, 가장 잘 알려진 예로 구 안동 김씨와 세도정치로 유명한 신 안동 김씨가 있고, 김해 김씨 (동음이의)는 문서에 따르면 시조도 다섯 분, 가문도 다섯 가문이네요. 문서에는 적히지 않은 것 같지만 강릉 김씨도 시조가 다른 ‘후 강릉 김씨’가 존재하고요.[1] 한국어권 이외의 사례는 저는 잘 모릅니다만 Yoyoma88 님께서 들어 주셨습니다.
문서를 분리한다면 우선 보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보호된 주제에 대해 보호를 우회해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등재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표제어는 인동 장씨 (장금용계)인동 장씨 (장계계), 또는 인동 장씨 (상장군계)인동 장씨 (직제학계)처럼 주 표제어 뒤에 소괄호로 표제어를 구분하는 형태가 적절합니다. 다만 제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은 2008년의 인동 장씨 문서에 있는 내용인데, 여기에서는 인동 장씨가 여섯 가문이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HyonH 님께서는 이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문서를 분리하더라도, 과거 급제자의 명단을 나열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아님#사전의 2항을 보면 위키백과는 “목록 사전이 아닙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과거 급제자가 누가 있는지는 가문 분들께 가치 있는 정보이겠습니다만, 위키백과에서는 그러한 목록을 서술할 필요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찾아 보니, 분류:본관별 성씨에 속한 생각보다 많은 문서에 과거 급제자 문단이 있네요. 성씨에 관한 편집 지침이 부재한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吳某君 (·) 2020년 9월 13일 (일) 03:26 (KST)[답변]
오모군님의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 문서 등재 기준을 유동적으로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9월 13일 (일) 10:26 (KST)[답변]
오모군님.. 의견 감사합나다. 그 외 계파에 대해서는 몇몇 계파는 후대가 없거나 나머지 계파는 상장군계나 직제학계로 통합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 자세히는 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표제어로는 시조으로 구분하는 보통 무례하다 하여 그렇게 하지 않고 상장군계 인동 장씨직제학계 인동 장씨인동 장씨 (상장군계)인동 장씨 (직제학계)과 같이 벼슬이름으로 구분하는 게 타당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동 장씨 본문 내에서도 상장군계 인동 장씨나 직제학계 인동 장씨로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3일 (일) 23:18 (KST)[답변]
HyonH 님께서 제가 궁금했던 바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상장군계나 직제학계로 통합된 나머지 계파는 일단 분리하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표제어를 시조의 함자로 구분하면 자칫 무례하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위의 발언에서 취소선을 그었으며, 문서를 분리하실 때 벼슬 이름으로 구분하면 좋겠습니다. --吳某君 (·) 2020년 9월 13일 (일) 23:28 (KST)[답변]
오모군님.. 고맙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4일 (월) 01:53 (KST)[답변]
GTX1060님.. 개인적인 일로 바빠 이제야 글을 드립니다. 확인 감사합니다. 보호가 풀리는 15일 이후로 분리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분리 해 놓은 후에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과거 급제자 명단 나열은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3일 (일) 23:19 (KST)[답변]

메이님.. 무특대고 분리해 만든 페이지를 삭제하지 마시고 만든 페이지에서 미흡한 점은 지적을 해 주십시요. 미흡한 점은 차후에 다듬어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HyonH (토론) 2020년 9월 16일 (수) 02:19 (KST)[답변]

메이님 지적이 심해 원 페이지대로 전부 되돌려 놓습니다. 상장군계 및 직제학계 페이지 분리는 [[토론:인동 장씨]에서 허가받은 사항입니다만.. 분리한 새 페이지에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다듬어 나가면 될거라 생각합니다만 무특대고 삭제하시니 제가 시간이 남아 돌아서 이 작업하는 것도 아니고 가문과 관련된 일이라 없는 시간 억지로 만들어 작업했습니다만 미흡한 부분은 다듬어 갈 생각은 않하고 무특대고 삭제하시니 저도 더 이상 이 작업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6일 (수) 02:34 (KST)[답변]

메이님.. 분리해 만든 상장군 페이지를 어디에 저작권 침해 요소가 어디 있었는지 먼저 밝히기라도 하고 삭제하세요!!! 분리한 새 페이지에 출처도 다 밝혀 두었고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다듬어 나가면 될것을.. 사람이 몇 시간 들여 작성한 것을 저작권 침해 요소가 어디 있는지 밝히지도 않고 무특대고 삭제합니까? 다른 가문 페이지나 한번 훓어라도 보는 게 어떤가요? 지금 시간이 안되어 그만합니다만 이번에 분리해 만든 상장군계 및 직제학계 페이지에 저작권 침해 요소가 있으면 그게 어디 있는지 그 근거를 명확히 먼저 제시하고 그러지도 않고 사전공지도 없이 제멋대로 삭제하면 장기 인증자의 일반 사용자에 대한 권한 침해 및 문서 훼손으로 관리자에게 제소하겠습니다!!!!!!!!! --HyonH (토론) 2020년 9월 16일 (수) 07:37 (KST)[답변]

@HyonH: 왜 이 문서가 유지되어야 하는지 지금 토론:인동 장씨에서 토론 중인데 되리어 왜 이 문서가 삭제되어야 하는지 묻고 계시네요. (토론 분산을 방지하기 위해 여기에는 글 쓰지 말아주세요.) — Daedan (토론) 2020년 9월 16일 (수) 10:10 (KST) @Gomdoli4696.. 어디다 쓰면 됩니까? 당신이 뭔 관리자라도 됩니까? [[토론:상장군계 인동 장씨]에 삭제신청을 했으면 내가 그기에 삭제 이의를 제기하는 글을 남기는 데 뭐 잘못 됐습니까? 왜 삭제되어야 하는지 그 근거를 확실히 제시해 주십시요. 그에 관한 글은 그기에 달아뒀으니까 그기서 확인하던 말던 알아서 하십시요. 그리고 상장군계와 직제학계 페이지 분리에 관한 건 GTX1060님한테 허가를 받았는 데 내가 당신한테도 허가를 받아야 합니까? --HyonH (토론) 2020년 9월 16일 (수) 10:17 (KST)[답변]

2020년 11월 09일의 대량 편집에 대해서[편집]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D%B8%EB%8F%99_%EC%9E%A5%EC%94%A8&type=revision&diff=28019539&oldid=28019479

이유를 제시하려 하시니 제시합니다.

상장군계 인동 장씨 문서와 직제학계 인동 장씨 문서와 중복된 내용을 제거하였습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11월 13일 (금) 08:58 (KST)[답변]

일단 동일 내용을 사용자토론에 남기겠습니다. — Daedan 2020년 11월 13일 (금) 08:58 (KST)[답변]
예전에 다른 관리자 허가를 받고 기재한 건데 왜 함부로 삭제하십니까? 과거 급제자 명단을 삭제하는 건 동의합니다만 신문에도 나온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 부분까지 광고성이네 뭐니 하며 함부로 삭제하지 마십시요. 한번 더 함부로 삭제하시면 관리자에게 정말 제소하겠습니다. HyonH (토론) 2020년 11월 13일 (금) 09:12 (KST)[답변]
위키백과에서 '이렇게 편집해도 된다'라고 허가를 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GTX1060 (토론) 2020년 11월 13일 (금) 09:13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