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강 (성씨)

문서 내용이 다른 언어로는 지원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여러 차례 편집 분쟁[편집]

여러 차례 편집 분쟁이 일어나 문서를 보호 하였습니다. 이 점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Şiļvèŗ ßúӀӀěţ (토론) 2012년 4월 2일 (월) 16:44 (KST) 여불위는 여씨 아닌가요?[답변]

동아대백과 사전에 중국에서 귀화한 여러 성씨들에 대한 글들이 있습니다. 그 경로는 사신으로 왔거나 전쟁에 종군했거나 배가 난파됐거나 등입니다. 하지만 진주 강씨는 정적의 모함을 피해 망명한 것으로 되어 있는 데 그리 명예로운 귀화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기기는 꺼림칙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상 진주 강씨 후손이었습니다. ymkang 2017년 5월 16일 (화) 01:00 (KST)

화산이씨도 베트남에서 화를 피해 망명했다고 하는군요. ymkang 2017년 5월 16일 (화) 12:30 (KST)

산동성은 강태공의 고향입니다. 거기가면 환대 받으려나... ymkang 2017년 5월 16일 (화) 12:31 (KST)

수나라 병마원수였는 데 정적의 모함을 피해 고구려로 망명하다... ymkang 2017년 6월 9일 (금) 12:58 (KST)

한글로만 표기를 하니까 康을 진주 강하고 구분이 안된다. ymkang 2017년 10월 6일 (금) 02:37 (KST) --Tol6560 (토론) 2019년 3월 22일 (금) 02:52 (KST) 고구려 성골장군 강호경으로 표시돼있는데, 제가 신천강씨 상계를 일일히 연도별로 청주한씨 계보와 비교해 본적있는데, 신천康강씨는 기자조선 자子 서여, 기자와 군신 관계를 함께 했고, 연나라 진개 침략에 평양=양평=요하를 연나라에 뺏기면서, 현재 평양으로 이전했는데, 위만에 망하면서, 전사했지만 일족은 자子-기箕-한韓 왕족과 함께 마한으로 남하 한韓씨 왕조와 함께 했으며, 마한 한씨 왕조가 백제 온조에 망할 때도, 강씨 조상 전사했고, 일족은 신라에서 벼슬하다 김유신 고구려 침공때 대장군으로 함께 참전했다 기록 돼있습니다. 그때 평양 근처에 정착한 것으로 생각되고, 성골聖骨장군은 신라 골품제도를 말합니다. 신라 성골 귀족으로 평양인근 지역 토착호족으로 정착했고, 신라왕족 서자 김궁예 태봉국 왕비 강씨를 배출했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 외 6대조 배경 토착 호족으로 고려에서 대대로 벼슬했고, 신성=신천 지역 토착호족으로 조선 이성계 첫 왕비 강씨를 배출했습니다. 이런 강씨 상계 가문 흐름을 보면, 고구려 유민 성골장군은 완전히 말도 안되는 틀린 얘기로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라에서 벼슬했던 신라 성골 귀족 장군이란 뜻입니다.[답변]

자꾸 되돌리기를 해서 더이상 손대진 않는데, 현재 되돌리기한 康씨 편집이 얼마나 엉터린진, " 강숙(康叔)의 둘째 아들로서 기원전 198년에 고조선 평양" 이문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위강숙은 주문왕의 아들이자 주무왕의 동생으로 주나라가 상나라에 반란일으키고 기자가 동래한때가 BC1122년 이고, 위강숙 둘째 아들을 기자 감시하러 딸려 보낸 때가 BC1046년 삼감의난 평정까지, 어린 동생인 위강숙이 나이들면서 활동 늘어난 76년 동안 어느 시기인데, 수백년이나 지난 BC198년이 얼마나 뜬금없습니까? BC1122년 평양은 만주 요하 BC198년 평양은 한반도 위치도 다릅니다. 그리고, 곡산 강씨는 재령강씨와 한집안 적장자 큰집 계보고, 신천강씨 대종회를 설립 이끌고 있는 주류 분파가 재령강씨일뿐, 곡산 강씨와 다른 집안이 아닙니다.--Tol6560 (토론) 2020년 9월 18일 (금) 09:33 (KST)[답변]

무슨 후손이 이렇게 많아요. 한국에서 많이 만나도 별로 닮았다는 생각이 안드는 걸 왜 일까요... ymkang 2019년 11월 19일 (화) 00:27 (KST) 강姜씨는 강태공 강성여씨 여상 후손들이 많고, 강姜씨는 상나라 동이족 상하이 출신, 강康씨는 주나라 출신으로 혈통이 완전 다릅니다.--Tol6560 (토론) 2020년 9월 18일 (금) 09:33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