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치타스 1991–1995 시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시즌 통계[편집]

시즌 전 대회 기록[편집]

1993 시즌은 무승부시 승부차기가 시행되었으며 승부차기를 무승부로 처리하는 통산 기록 규정에 근거한 승무패를 별도로 아래에 표기하였다.
※ 아: 아디다스컵

시즌 리그
팀수
K리그 경기수 승점 리그컵 FA컵 수퍼컵 아시안클럽
챔피언십
감독
1991 6 6위 40 9 15 16 44 53 -9 33 진출 실패 대한민국 고재욱
1992 6 4위 30 8 13 9 30 35 -5 29 준우승 () 대회 불참 대한민국 고재욱
1993 6 준우승 30 18
10
0
11
12
9
28 29 -1 59 4위 () 진출 실패 대한민국 고재욱
1994 7 5위 30 12 7 11 53 50 +3 43 준우승 () 대한민국 조영증
1995 8 8위 28 5 10 13 29 43 -14 25 6위 () 대한민국 조영증

시즌 총평[편집]

1991 시즌 총평[편집]

1992 시즌 총평[편집]

1993 시즌 총평[편집]

1994 시즌 총평[편집]

1995 시즌 총평[편집]

LG 치타스는 1995 시즌 악몽의 해를 보냈다. 컵대회 6위, 전기리그 8위, 후기리그 6위로 종합 순위에서도 8위에 머물렀다. 비록 우승권의 전력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비참한 성적을 내리라곤 짐작도 못했다. 조영증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공격축구를 표방하며 첫 무대를 치른 지난 시즌은 아디다스컵 2위, 정규시즌 5위에 머물렀지만 팀은 23게임 연속득점과 팀최다득점(60골,아디다스컵 포함)을 기록했으며 신인왕(최용수), 득점왕(윤상철)까지 배출했다. 그래서 내심 올해는 전후기중 한 차례라도 우승을 노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전혀 예상 밖으로 흘렀다. 지난해 득점왕에 오른 윤상철의 부진, 주전급 선수의 노쇠화, 스트라이커 최용수의 잦은 올림픽 대표팀 차출, 타팀에 비해 활동이 부진한 용병선수 등의 이유가 올해 농사를 망친 주된 이유였으며 차상해 이후[1] 최용수 입단 전까지[2] 쓸만한 타깃형 스트라이커 부재에 시달리기도 했다.

참고 자료[편집]

각주[편집]

  1. 김경무 (1993년 9월 10일). “연습생 차상해'상전벽해'. 한겨레신문. 2024년 2월 6일에 확인함. 
  2. “鄭(정)재권 대우"골인". 경향신문. 1993년 11월 27일. 2024년 2월 6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