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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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TP
단일포탑형 7TP
종류 경전차
형식 명
개발국가 폴란드 폴란드
사용국가 폴란드 폴란드
나치 독일 나치 독일(노획품)
개발사
역사
개발년도 1934년
생산량 160여대
사용된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파생형 C7P
일반 제원
승무원 3명 (차장, 포수, 운전병)
길이 4.6 m
높이 2.27 m
2.4 m
중량 9.9톤
공격력
주무장 보포스 37mm 대전차포 1문
주무장 Ckm wz.30 7.92mm 기관총 1정
기동력
엔진 디젤 소어 VBLDd
마력 110 hp (80 kW)
중량 대비 출력 11 hp/1톤
서스펜션 리프 스프링 보기
속도 35km
항속 거리 150km
방어력
장갑 17mm

7TP제2차 세계 대전 당시 37mm 주포를 탑재한 폴란드의 경전차로서, 비커스E를 발전시킨 모델이다. 당시 주적이었던 독일의 기관총 2정을 무장한 1호 전차와 20mm 기관포 1문과 7.92mm 기관총 1정을 장비한 2호 전차보다 우수한 무장을 갖춘 경전차였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 육군의 표준 전차였지만, 140대 이상은 생산되지 못했다. 차체는 C7P 화포견인차의 기반이 되었다.

역사[편집]

7TP는 폴란드가 영국제 비커스 6톤 경전차(Mk.E) 면허 생산권을 획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발했다. 폴란드 설계자들은 늦어도 1936년까지 비커스E를 개량하고자 했다. 7TP의 주요 특징은 더 강력하고 신뢰성이 좋은 디젤 엔진의 채용과 37mm 대전차포, 그리고 약간 두꺼워진 차량 장갑이었다. 원래 비커스E에 장착된 암스트롱-시들리 엔진 대신에서 스위스제 사우어 디젤 엔진을 면허 생산하여 교체했다.[1] 차체 전면의 경우, 비커스E는 13mm였지만, 7TP는 17mm로 두꺼워졌다. 이외에 자잘한 부분들이 개량되고 몇 가지( 군트라흐 전차 잠망경, 다른 공기 조절 시스템, 무전기 같은)가 추가되었다. 132대가 1935년부터 전쟁이 시작된 1939년 사이에 생산되었다. 7TP란 이름의 뜻은 폴란드어로 7톤이란 뜻이지만, 사실 시제품이 만들어지고 무게는 조금씩 늘어나서 양산형의 중량은 대략 9톤에 이르렀다.

영국제 선조(비커스E)처럼, 7TP도 2가지 파생형이 생산되었다. 2개의 포탑을 갖추고 Ckm wz.30 기관총 2정을 장착한 형과 1개 포탑에 37mm 보포스 wz.37 전차포를 탑재한 형이 있었다. 초기 시험 후 기관총만 탑재한 2포탑형은 쓸모가 없고 화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명확해져 현대적인 단일 포탑형에 집중한다는 결정이 내려져 포기되었다. 일단 2포탑형의 7TP는 1934년에 개발되어 1935년 봄에 양산 승인을 받았다. 2포탑형은 7.92mm 기관총 2정을 장착했지만, 일부에는 13.2mm 기관총 1정과 7.92mm 기관총 1정이 탑재되기도 했다. 이 형은 임시 방편으로 여겨져 24대만 생산되었다. 초기 생산분은 비커스 전차로부터 떼어낸 포탑 22개를 장착했다.[1]

기동 연습 도중 사진.

그 다음에 나온 것이 단포탑형이다. 많은 설계자들이 20mm, 40mm, 47mm, 55mm 등의 당시 전차포 기준으로는 중포를 시험했고, 최종적으로 37mm 보포스 대전차포를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37mm 포를 장착한 단포탑형은 1937년 말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1938년말부터 생산이 시작된 개량형은 2N/C 무전기를 탑재했다. [1]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2포탑형의 대부분은 단일 포탑형으로 개조되었고, 24대만이 바르샤바 근처 훈련소에서 훈련용으로 운용되었고, 나중에 바르샤바 공방전에 투입되었다. 2포탑형과 단일 포탑형은 분명한 명칭이 기록되지 않았다. 최근 몇 몇 책[2]에서는 "7TP dw." 와 "7TP jw."라는 단축형 이름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렇긴 하지만 이러한 명칭들은 정식 명칭은 아니었으며, 단지 간단하게 표기하고자 사용할 뿐이다.

모든 7TP 전차들은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때 침략자와 맞서 싸웠다. 그들 중 대부분은 2개 경전차 대대(1경전차대대 및 2 경전차대대)에 배치되었으며 이 경전차대대들은 폴란드군 자동차화 여단의 일부로 편성되었다. 훈련용으로 사용되던 1대를 포함하여 나머지 전차들은 바르샤바 방위전 당시 급조된 전차 부대에 보내져 전투를 치렀다. 당시 독일의 경전차보다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7TP는 전쟁 결과를 바꾸기에는 너무 수가 적었다.

37mm 주포 탑재형 49대로 편성된 1경전차대대는 폴란드 육군의 전략 예비 일부로서 프루쉬군(Prusy Army)에 배속되어 싸웠다. 1939년 9월 4일 전투에 투입되어 다양한 역할로 구분되어 싸웠는데, 대부분은 후퇴를 엄호하기 위한 기동 예비 역할이었다. 여러 전투에 참가했지만, 유명한 전투로는 프세드보즈 전투(Battle of Przedborz), 술레야브 전투(Battle of Sulejow), 이노부츠 전투(Battle of Inowłodz), 오드시붜 전투(Battle of Odrzywoł)와 드제비차 전투(Battle of Drzewica) 등이었다. 9월 8일, 폴란드군 주력부대가 독일군의 진격을 그럭저럭 저지했지만, 다음 날 주력부대로부터 분산되어 후방으로 철수해야 했다. 대대 일부는 궈바초프 전투(Battle of Głowaczow)에서 괴멸되었고, 그 사이 9월 13일에 잔여 전차들이 비스툴라 강 다른 쪽을 통해 돌파하는 데 성공하여 루블린 군에 합류하여 스테판 로베츠키(Stefan Rowecki) 대령의 바르샤바 기갑자동차화여단에 배속되었다. 여단의 일부로서, 대대는 유제푸프 전투(Battle of Jozefow)에 참가했으며, 르뵈프루마니아 교두보로 탈출을 시도하는 폴란드군의 선봉대의 일부를 이루었다. 9월 21일 토마슈프 루벨스키 전투(Battle of Tomaszow Lubelski) 이후, 잔여 전차들은 전차병이 파괴했고 부대는 독일군에 항복했다.

7TP-3.jpg

37mm 주포 탑재형 49대로 편성된 2경전차대대는 루치 군표트르쿠프 트리뷰날스키 작전 그룹(Operational Group)[3] 9월 4일, 붸하투프 프루드카 강(Prudka) 근처에서 전투에 투입되었다. 다음 날, 2경전차대대는 표트르쿠프에서 폴란드군의 반격을 이끌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고 부대는 큰 손실을 입었다. 대대는 재집결하여 바르샤바로 철수했고, 다시 브레스트로 철수하여 그곳에서 폴란드 60 보병사단이 동원되는 것을 은폐하였다. 9월 15일, 이틀 간 길게 계속된 붜도바 전투에 참가했으나,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막심한 피해를 입고 남서쪽으로 철수했다. 살아남은 전차들은 기름 부족때문에 전차병들이 파괴했으며, 소비에트 연방이 독일과 연합하여 폴란드를 침공한 9월 17일에 전차병들과 부대 지휘부는 루마니아 국경을 넘었다.

바르샤바에서 남은 전차들은 바르샤바 방어 사령부 예하에 1경전차중대 및 2경전차중대로 편성되었다. 1중대는 이전에는 훈련용으로 사용되던 2포탑형 11대로 편성되었다. 바르샤바 공방전 시작 단계에서 1중대는 바르샤바 교외 Ok?cie에서 격렬한 전투에 참가했다. 그곳에는 주요 공항이 있었다. 대전차 무장이 부족했기 때문에 1중대 소속 전차들은 막심한 피해를 입었고, 9월 12일에 후방으로 물러나 잔여 병력 및 전차들은 2중대에 합류했다.

2중대는 37mm 탑재형 11대 뿐만 아니라 숫자 미상의 기타 기갑 차량을 운용했다. 2중대는 독일군 보병 및 기타 기갑 차량에 맞서서 볼라(Wola) 지구에서 성공적인 방어전을 치렀으며, 바브쥐세프(Wawrzyszew]) 사이에서 전술적 반격 작전에도 투입되었다. 그곳에서 중대는 공격을 준비하는 독일군을 방해하려고 했다. 9월 15일, 중대는 브주라 전투(Battle of Bzura) 후 바르샤바 북쪽 캄피노 숲을 지나 후퇴하고 있던 포즈난 군과 연결할 목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공격 작전의 최선봉 부대를 편성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루프트바페의 공중 폭격으로 병력과 전차에 큰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공격은 작은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끝났다. 남은 7TP 전차들은 9월 27일에 바르샤바가 항복할 때까지 전선 여기저기에서 전투에서 싸웠으며, 그 날 전차병들은 자신들의 전차를 자기 손으로 파괴했다.

7TP에 탑재된 보포스 wz.374호 전차를 포함하여 당시의 모든 독일군 전차의 장갑을 충분히 관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전 경험이 입증했다. 다른 한편으로 7TP는 장갑이 너무 얇았으며 특히 항공기 폭격에 취약한 면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은 20대가 독일군에 노획되었고, 1대가 소련군에 노획되었다. 추가로 20대가 루마니아헝가리로 도망쳤지만 40여대는 엔진 문제와 연료 부족으로 버려져야 했다. 오늘날까지 온전한 상태로 남은 7TP는 없지만, 바르샤바 폴란드 육군 박물관에서 이 전차의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운용국[편집]

7TP에 흥미를 보인 국가는 여럿 있었다. 1937년 1월에 스웨덴이 단포탑형(7TPjw)을 시험 목적으로 20대 ~ 60대 가량의 비무장 차체와 C7P 구매의사를 보였으나 폴란드는 이를 거부했다. 1937년 4월에는 불가리아에스토니아[4]가 역시 7TPjw형에 관심을 보였다. 에스토니아는 4대의 7TPjw를 구매하고자 했으나 폴란드는 2포탑형(7TPdw)만 팔려고 했다. 11월에는 네덜란드에는 7TP에 관심을 보였지만 역시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터키도 이 전차에 관심을 보였고, 1938년에 폴란드 정부는 7TPjw형의 기술 문서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이외에도 유고슬라비아그리스도 관심을 보였지만 역시 거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1]

더 읽어보기[편집]

주석[편집]

  1. George Parada. 7TP / 7-Tonowy Polski Light Tank (HTML). Achtungpanzer.com. 2007년 10월 28일에 확인.
  2.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특별히 어떤 책임을 밝히지 않았으나,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출간된 책은 아니다
  3. 이 개념은 1939년 당시 폴란드군의 부대 단위로 전술 사단보다 상급 부대 개념이다. 규모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군단급이었다. 영어 위키피디어에 자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간략하게 나와 있다.
  4. 1937년 당시에는 에스토니아도 독립국가였다

외부 추가 정보[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