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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피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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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이 정점에 달했을 때(686년) 칼리프에 대한 경쟁자들의 영토 통제

2차 피트나(Second Fitna)는 초기 우마이야 칼리파국 시대에 이슬람 공동체에 전반적인 정치, 군사적 혼란과 내전이 있었던 시기이다. 680년 첫 우마이야 칼리프 무아위야 1세가 사망한 이후 약 12년 동안 지속되었다. 전쟁에는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두 가지 도전을 진압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첫 번째는 후사인 이븐 알리와 이라크에서의 복수를 위해 모인 술레이만 이븐 수라드무크타르 알 타카피를 포함한 그의 지지자들, 두 번째는 아브드 알라 이븐 알-주바이르에 의한 것이다.

내전의 뿌리는 1차 피트나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 번째 칼리프인 우스만이 암살된 후 이슬람 공동체는 리더십 문제를 놓고 첫 내전을 겪었으며, 주요 경쟁자는 알리와 무아위야였다. 661년 알리가 암살되고 같은 해 그의 후계자 하산이 퇴위하자 무아위야는 칼리프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 아들 야지드(Yazid)를 상속자로 지명하겠다는 무아위야의 전례 없는 결정은 반대를 촉발시켰고, 무아위야의 죽음 이후 긴장은 고조되었다. 후세인 이븐 알리는 우마야드를 전복시키기 위해 쿠파의 친알리드의 초대를 받았지만 680년 10월 카르발라 전투에서 쿠파로 가는 도중 그의 소규모 중대와 함께 살해되었다. 683년 8월 이후 이븐 알 주바이르가 야지드에 대항하여 자리를 잡았던 메카를 포위했다. 11월 야지드가 죽은 후 포위 공격은 중단되었고 우마이야 왕조의 권위는 시리아의 특정 지역을 제외한 칼리프 전체에서 붕괴되었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이븐 알 주바이르를 칼리프로 인정했다. 쿠파에서는 이븐 수라드의 참회자 운동을 시작으로 후세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요구하는 일련의 친 알리드 운동이 나타났다. 이 운동은 685년 1월 아인 알 와르다 전투에서 우마야드에 의해 진압되었다. 쿠파는 무크타르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의 군대는 686년 8월 카지르 전투에서 대규모 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패주시켰지만, 무크타르와 그의 지지자들은 일련의 전투 끝에 687년 4월 주바이르 왕조에 의해 살해당했다. 압드 알말릭 이븐 마르완의 지휘 아래 우마야드는 이라크의 마스킨 전투에서 주바이리드를 격파하고 692년 메카 포위 공격에서 이븐 알 주바이르를 죽인 후 칼리프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주장했다.

아브드 알 말리크는 칼리프의 권력 강화, 군대 구조 조정, 관료제의 아랍화 및 이슬람화를 포함하여 칼리프의 행정 구조에 주요 개혁을 단행했다. 2차 피트나 사건은 이슬람의 종파적 경향을 강화시켰고, 나중에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 종파가 된 것 내에서 다양한 교리가 발전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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