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만국 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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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만국 박람회 (Exposition Universelle)는 지난 세기를 기념하고 다음 세기를 향한 발전을 가속하자는 의미에서 1900년 4월 14일부터 11월 12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였다. 이 박람회에서 널리 선보였던 건축 양식이 바로 '아르누보'였다. 총 관람객수가 5000만 명에 달한 1900년 세계 박람회에서는 수많은 기계와 발명품, 그리고 건축물들이 전시됐는데 그 중에는 그랑드 루 드 파리 대관람차, 마트료시카 인형, 디젤 엔진, 유성영화, 에스컬레이터, 텔레그라폰 (최초의 자석식 녹음기) 등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는 것들도 등장했다.

1900년 파리 세계 박람회장의 모습

배경[편집]

프랑스는 1855년에도 만국 박람회를 개최한 전력이 있었는데 전쟁 후 국가의 자부심과 신념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1] 1900년 박람회가 성공을 거둔 것도 전후 국가 부흥이라는 똑같은 주제에 따른 것이었다.[1] 1900년 파리 세계 박람회가 개최되기 8년 전인 1892년, 프랑스 정부는 새 세기의 도래를 환영하고 축하하는 박람회를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1]

프랑스는 전세계 각국에게 초청장을 보내 그 국가들이 이룬 것과 생활양식을 전시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 세계 박람회는 여러 가지 체험을 종합하여 익히도록 한 것이었다.[1] 이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각 국가들 간의 유사성은 물론 그 사이의 독특한 다양성을 깨닫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각국이 전시해 놓은 자국의 가치들을 전반적으로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상호 이해의 환경이 전쟁 시대 이후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문화적 관용을 늘리는데 한몫하도록 했다. 박람회 개최 소식이 발표되자 독일에서 처음으로 열린 국제 박람회에 쏠렸던 관심은 풀리고 박람회 개최에 대한 호응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다.[1] 박람회에 대한 지지도 대단해서 각국에서는 즉시 자국 전시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열의에도 불구하고 1900년 세계 박람회는 참관한 관객 수가 예상치의 3분의 2에 불과하여 재정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1] 세계 박람회가 예상보다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일반 대중들이 박람회에 참여할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1]

각주[편집]

  1. Allwood, John. (1977), The Great Exhibitions, Great Britain: Cassell & Collier Macmillan Publishers, p. 7-107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