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16년 17년 18년 - 19년 - 20년 21년 22년
연대
전 10년대 0년대 - 10년대 - 20년대 30년대
세기
전 2세기 전 1세기 - 1세기 - 2세기 3세기
서기 19년의 다른 기년법
간지 무인년~기묘
단기 2352년
그레고리력 19년
XIX
불기 563년
이슬람력 622 BH~621 BH
황기 679년
히브리력 3779~3780
아시리아력 4769년
에티오피아력 13~14

연호[편집]

기년[편집]

사건[편집]

  • 음력 2월 - 북명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인장을 얻어 신라에 바쳤다[1]는 기록이 있으나, 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2]

문화[편집]

탄생[편집]

사망[편집]

각주[편집]

  1. 김부식 (1145) 남해 차차웅 조(條) “十六年春二月北溟人耕田得濊王印獻之” (즉위 16년 봄 2월에 북명(北溟)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인장을 얻어 [나라에] 바쳤다.)
  2. 신채호저, 《조선상고사》<제4편 제4장 3. 신라의 건국> "초년(初年)에 초창(草創)한 신라는 경주 한 구석에 의거하여 여러나라 중에서 가장 작은 나라였는데, '변한이 나라로 들어와서 항복하였다.'느니, `동옥저가 좋은 말 200 마리를 바쳤다. '느니 함이 거의 사세에 맞지 아니할 뿐 아니라, `북명인 (北溟人)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도장을 얻어서 바쳤다.' 함은 더욱 황당한 말인듯하다. 왜냐하면 북명(北溟)은 '북가시라'--- 북동부여의 별명으로 지금의 만주 훈춘 등지이고, 고구려 대주류왕의 시위장사(待衛壯士) 괴유(怪由)를 장사 지낸 곳인데, 이제 훈춘의 농부가 밭 가운데서 예왕의 도장을 얻어 수천 리를 걸어 경주 한 구석의 조그만 나라인 신라왕에게 바쳤다 함이 어찌 사실다운 말이랴? 이는 경덕왕(景德王)이 동부여 곧 북명의 고적을 지금의 강릉으로 옮긴 뒤에 조작한 황당한 말이니, 다른 것도 거의 믿을 가치가 적음이 그 넷이다."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