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노 도미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히노 도미코(일본어: 日野富子, 1440년(에이쿄 12년) - 1496년 6월 30일(메이오 5년 5월 20일))는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말기에서 센고쿠 시대(戦国時代) 초기의 인물로, 무로마치 막부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의 정실이다. 9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사(足利義尚)의 생모로, 종1위이다.

생애[편집]

초기[편집]

교토 야마시로 국(山城国)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구로우도(蔵人)이자 우쇼벤(右少弁)이며 후일 내대신(内大臣)으로 추증된 히노 시게마사(日野重政), 어머니는 종3위(従三位)인 기타코지 나에코(北小路苗子)이다. 명문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의 분가 중 하나인 히노가는 아시카가 쇼군가의 인척 가문이자 정실을 배출하던 가문으로, 후일 도미코의 부군이 되는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생모 히노 시게코(日野重子) 역시 히노가 출신이자 도미코의 대고모였다.

1455년(고쇼 원년) 8월 27일 16세 때 아시카가 요시마사와 정식으로 혼인하여 그의 정실이 되었고, 이후 1459년(조로쿠 3년)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사망하자 이를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유모 이마마이리노 쓰보네(今参局)의 저주라고 하여 이마마이리노 쓰보네를 비와 호 오키 섬으로 추방하였고, 더불어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측실 네 명을 연달아 축출하면서 가문 내에서 실권을 잡았다. 이마마이리노 쓰보네는 귀양가던 도중 할복하였다.

오닌의 난[편집]

1462년(간쇼 3년), 1463년(간쇼 4년) 연달아 딸을 낳았으나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자신에게 아들이 더 이상 태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이듬해인 1464년, 출가하여 불문에 귀의한 상태였던 동생 아시카가 요시미(足利義視)에게 후계자 지위를 약속하며 환속시키고 중신 호소카와 가쓰모토(細川勝元)를 그 후견으로 삼았다. 그러나 다음해 1465년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사를 낳은 도미코는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결정에 반발하여 아들을 다음 대 쇼군으로 올리기 위해 아시카가 요시히사의 후견 야마나 소젠(山名宗全)과 손을 잡고 아시카가 요시미 및 이미 요시미와 손을 잡고 있던 친정 히노씨와 대립하였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