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룬 구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훌룬국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훌룬 구룬
ᡥᡡᠯᡠᠨ
ᡤᡠᡵᡠᠨᡳ

16세기1619년
수도 개원
정치
공용어 여진어
정부 형태 군주제
만한
 ? ~ 1582년
1582년
1582년 ~ 1599년
1601년

왕타이
후르한
멍거불루
우르구다이

훨운 구룬(만주어: ᡥᡡᠯᡠᠨ
ᡤᡠᡵᡠᠨᡳ
Hūlun gurun, 한국 한자扈倫; 忽剌國 호륜국)은 16세기 말의 여진의 강력한 연맹국가이다. 오늘날의 중국 길림성에 기반하여 살았다.

훨운국은 하다부의 추장 왕타이(王台, ? ~ 1582년)가 요동에서 개원 동부에 이르는 지역에 살던 해서여진인들을 통합하여 설립되었다. 하다 외에도 울아, 예허, 호이파의 4 부족이 연맹의 가맹 부족이었다.[1]

훨운인들은 인종적으로는 여진 계통이지만 문화와 언어 면에서 몽골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는데, 예허의 시조 싱언 다르한은 몽골 투메드(Tümed, 만주어: ᡥᡡᠯᡠᠨ
ᡤᡠᡵᡠᠨᡳ
Tumet)의 귀족이었고, 서쪽 옆에 접하는 몽골의 코르친하르친부와 통혼하여, 혼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은 훨운국을 몽골과 가까운 계통으로 보기도하였다.[2]

훌룬의 왕타이는 만한(萬汗)을 칭했으며 여진과 몽골의 지도자들은 물론 명나라요동총병 이성량과도 밀접한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맺었다.[1]

건주여진의 추장 누르하치는 왕타이의 사위이다(몽고와 여진의 부족들은 서로 통환이 많았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서로 사돈관계인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1] 파멜라 카일 크로슬리는 왕타이와 그의 훌룬국이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는 데 롤모델로 작용했을 것이라 본다.[1] 누르하치는 나중에 해서여진을 멸망시키고 여진을 만주라 개칭하였다. 왕타이와 누르하치가 모두 죽은 뒤인 먼 미래 청나라의 역사가들은 왕타이를 "만주"의 초기 지도자들 중 하나로 취급했다.[1]

16세기가 흐르면서 누르하치는 점차 패권적 팽창을 시작했다. 때로는 누르하치가 임명한 추장이 반기를 들고 독립하는 경우도 있었다. 울아의 부잔타이가 그러한 예이다. 결국 훌룬의 네 부족은 모두 누르하치의 건주여진에 흡수되었다. 복속된 시기는 하다가 1601년, 호이파가 1607년, 울라가 1613년, 예허가 1619년이었다.[3][4]

[편집]

  1. Crossley, Pamela Kyle (2002), 《A Translucent Mirror: History and Identity in Qing Imperial Ideolog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39–40쪽, ISBN 0-520-23424-3 
  2. Crossley, Pamela Kyle; Siu, Helen F.; Sutton, Donald S. (2006), 《Empire at the margins: culture, ethnicity, and frontier in early modern China》, Studies on China 28,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65쪽, ISBN 0-520-23015-9 
  3. Crossley, Pamela Kyle (2002), 《The Manchus》, Peoples of Asia 14 3판, Wiley-Blackwell, 62, 64쪽, ISBN 0-631-23591-4 
  4. Fairbank, John K.; Twitchett, Denis Crispin (2002), 〈Part 1〉, 《The Cambridge history of China》 9, Cambridge University Press, 30쪽, ISBN 0-521-243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