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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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訓民正音)
(Hunminjeongeum. (The Proper Sounds for the Instruction of the People))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국보
종목국보 제70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수량1책
시대조선시대
소유전성우
위치
간송미술관 (대한민국)
간송미술관
주소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성북동)
좌표북위 37° 35′ 37.1″ 동경 126° 59′ 46.2″ / 북위 37.593639° 동경 126.996167°  / 37.593639; 126.996167좌표: 북위 37° 35′ 37.1″ 동경 126° 59′ 46.2″ / 북위 37.593639° 동경 126.996167°  / 37.593639; 126.996167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훈민정음》(訓民正音, 중세 한국어: 훈민져ᇰ〮ᅙᅳᆷ)은 조선 제 4대 국왕 세종대왕이 지은 책의 제목, 그리고 그 책에서 해설하고 있는 뒷날 한글로 불리게 된 한국어의 표기 문자 체계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즉위 25년(1443년)에 직접 창제하여 궁중에 정음청(正音廳)을 두고 성삼문, 신숙주, 최항, 정인지, 박팽년집현전 학자들에게 명하여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간하여 즉위 28년(1446년)에 반포하였다. 훈민정음이라는 말은 '백성(民)을 가르치는(訓) 바른(正) 소리(音)'라는 뜻으로, 독창적이며, 쓰기 편한 28자의 소리글자였다.

역사[편집]

모음음양의 원리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기본 모음'ㆍ · ㅡ  · ㅣ'를 보면 'ㆍ'는 양(陽)인 하늘(天)을 본 떠 만들고, 'ㅡ'는 음(陰)인 땅(地)을 본 떠 만들었으며 'ㅣ'는 음과 양의 중간자인 인간(人)의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1]

한글은 1443년(세종 25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창제하고 3년 동안 다듬고 실제로 써본 후, 1446년 음력 9월에 이를 반포하면서[2][3] 조선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을 통하여 문자와 천지인을 바탕으로 하는 음양오행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오늘날 남아 있는 훈민정음의 판본 가운데 하나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책의 구성[편집]

훈민정음의 판본에는 크게 해례본(한문본), 언해본이 있고, 그밖에 예의본이 있다. 실록본이 있는데, 이는 예의본에 속한다. 이 가운데 완전한 책의 형태를 지닌 것은 해례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편집]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은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부르며,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내용은 “國之語音異乎中國(나라말 소리가 중국과 달라)……”로 시작하는 세종의 어제 서문과 본문에 해당하는 〈예의(例義)〉및 〈해례(解例)〉그리고 정인지가 쓴 〈서(序)〉로 구성되어 있다.

今正音之作
이제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은
初非智營而力索
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다만 그 (원래에 있는)성음(의 원리)을 바탕으로 이치를 다한 것 뿐이다.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처음부터 이치는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자연, (변화를 주관하는) 귀신과 그 사용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훈민정음 스물 여덟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 《훈민정음 해례》(訓民正音解例), 〈제자해〉(制字解)

해례본의 판본[편집]

해례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것과 2008년 상주에서 발견된 것 두 부가 존재한다.

간송본(안동본)1940년 무렵까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의 이한걸 가문에 소장되어 있었다. 그의 선조 이천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이 하사했다고 한다.

가로 20 센티미터, 세로 32.3 센티미터 크기이다. 표지 2장에 본체 33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표지와 첫 두 엽은 없어진 것을 훗날에 보충한 것이다. 김주원은 남아있는 세번째 엽 뒷면에 《십구사략언해》가 손으로 적혀 있는 점을 토대로 첫 두 엽도 18세기 또는 그 이후 뒷면에 사략언해를 적기 위해 떨어져 나간 것으로 추정했다.[4]

훗날 이것을 입수한 간송 전형필한국 전쟁 때 이 한 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도 베개 삼아 잤다고 한다.

상주본은 2008년 8월 상주에 사는 배익기가 집 수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공개하였다.[5] 그러나 골동품상을 하는 조용훈이 도난당한 것이라며 주장하여 소송이 오갔다.[6] 민사 소송에서 대법원은 조용훈의 소유권을 인정하였으며[7], 그는 2012년 5월에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서류상으로 기증하였다.[8] 이때 이것이 안동 광흥사의 복장유물이 도난된 것이라는 논란이 제기되면서[9], 광흥사가 소속된 조계종이 반발하였다.[10] 한편 민사 소송에서 패소한 배익기는 절도 혐의에 대한 형사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고[11], 상주본을 기증하는 대가로 1천억 원을 요구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12] 상주본은 조선의 음운학자가 남긴 주석이 있으나, 66쪽 중 18쪽이 멸실되고 불에 탄 등 알려진 것과 달리 보존 상태는 나쁘다.[13]

훈민정음 예의본[편집]

해례(解例)와 예의(例義)가 모두 포함된 해례본과 달리 예의 부분만 들어 있는 것을 예의본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예의본은 단행본이 아니라, 《세종실록》과 희방사판(喜方寺版) 《월인석보》에 실린 것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예의본》은 《해례본》이 발견되기 이전에 훈민정음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일차적 문헌이었다.

훈민정음 언해본[편집]

훈민정음 언해본은 해례본에 한글 번역이 붙어있는 것을 말한다. 본디 한문으로 되어 있던 해례본 내용에 1459년(세조 5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의 어제 서문과 예의(例義) 부분을 한글로 번역해 붙여서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으로 합본되어 있는 것이다.

해례본의 한 종류라 할 수 있지만 편의상 따로 언해본으로 불린다.

중세 한국어 현대 한국어

나·랏׃말ᄊᆞ·미中듀ᇰ·귁·에달·아
·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서ᇰ·이
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
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
·내·이·ᄅᆞᆯ爲·윙·ᄒᆞ·야׃어엿·비너·겨
·새·로·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ᄆᆡᆼ·ᄀᆞ노·니
׃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
·날·로·ᄡᅮ·메便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맞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여,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이 책의 의의[편집]

이 책은 한글의 창제 원리를 설명하고 있으며, 중세 한국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책이다. 《해례본》에 포함되어 있는 예의(例義)는 특히 창제 당시의 자체(字體)를 그대로 보이고 있어서 그 중 가장 높이 평가된다. 또한, 해례는 오랫동안 문제로 삼던 글자의 기원 등 여러 가지의 의문점을 밝혀 주고 있다.

사진[편집]

현재 사용하지 않는 4글자[편집]

  • (여린히읗, 된이응) : 하고 의 중간 글자로, 이것도 ㅎ으로 간소화 되면서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 (옛이응, 꼭지이응) : 아음으로, '앙'이라는 소리를 낼 때 본 글자의 종성이응, 즉 유성음 이응이 옛이응이다. 지금은 사용할 때 하고 혼동하기 쉬으므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어 '솅종(세종)' 할 때 솅(세)의 ㅇ은 그냥 '이'이고, 종 할때는 ㆁ, 즉 옛이응이 된다.
  • (반시옷) : ㅆ, ㅉ의 중간 글자로, 하고 의 중간 발음이 난다. 지금은 이 글자가 점차 ㅅ하고 ㅈ 소리로 점차 간소화 되면서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 (아래아) : 본 글자는 초성의 밑에 쓰는 ㅏ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아)하고 (어)의 중간 발음이다. 역시 ㅏ로 간소화 되면서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참고 문헌[편집]

  • 박영준 외. 《우리말의 수수께끼》. 김영사. 2002. ISBN 89-349-0928-5

각주[편집]

  1. 최현철 기자 (2010년 10월 20일). “‘천지인’ 개발자 특허권 기부 … 표준 제정 임박”. 중앙일보.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2. 사실 훈민정음 반포일의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46년 음력 9월 29일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고 되어 있는데,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 말문(末文)에는 ‘정통 11년 9월 상한-세종 28년 9월’(正統十一年九月上澣)에 책으로 펴냈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1446년 9월 상한(上澣)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정했는데, 이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10월 9일이 되므로, 10월 9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정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이 아닌, 1446년 당시 서양이 사용했던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면, 1446년 음력 9월 10일9월 30일이 된다. (더 자세한 것은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우주지식정보 사이트 혹은 천문참여관 질문상자를 참조하라.)
  3. 문중양; 외. (2014).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민음 한국사 1. 서울: 민음사. 166-168쪽. ISBN 9788937437113. 
  4. 김주원 (2005년 6월). “훈민정음해례본의 뒷면 글 내용과 그에 관련된 몇 문제”. 《國語學》 (국어학회) 45. 2020년 9월 13일에 확인함. 
  5. 조동진 (2008년 7월 31일). “훈민정음 해례본 5백년만에 '햇빛'/안동”. MBC.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6. 정동원 (2008년 12월 25일). “소유권 법정 공방/안동”. MBC.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7. 김태식; 이세원 (2011년 6월 8일). "국보급 훈민정음 해례본은 도난품". 연합뉴스.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8. 정천기 (2012년 5월 6일). “국보급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국가 기증”. 연합뉴스.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9. 김원우 (2011년 11월 29일). “<본지특종> 안동 광흥사, 도난당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및 세계문화유산)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불교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10. 권오영 (2012년 5월 4일). “안동 광흥사 도난 ‘훈민정음해례본’ 국가기증 논란”. 법보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11. 김용태; 정광진 (2014년 5월 30일). ““훈민정음 상주본 기증 못해” 오리발”. 한국일보.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12. 김일우 (2015년 10월 9일). “1000억 주면 ‘훈민정음 상주본’ 내놓겠다고?”. 한겨레.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13. 이기환 (2019년 11월 5일). “②"훈민정음 '상주본'의 가치? '간송본'과의 비교는 어림없는 소리". 경향신문. 2020년 8월 30일에 확인함. 
  14. 실제 《훈민정음》의 세종이 직접 써서 만든 어제 서문을 본따 입력한 훈민정음 해례본 어제 서문으로, 줄갈이는 편의상 새로 하였다. 실제 《훈민정음》에는 한문과 한글, 협주가 모두 실려 있지만 이 그림은 한글 부분만 발췌해서 만들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