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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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번(일본어: 福岡藩 후쿠오카한[*])은 일본 에도 시대 지쿠젠 1을 지배했던 으로, 지금의 후쿠오카 현 후쿠오카 시에 위치했다. 지쿠젠 번(筑前藩)으로도 불리며, 번주가 도자마 다이묘인 구로다 가문(黒田氏)이었기 때문에 구로다 번(黒田藩)이라는 속칭도 있다. 번청은 후쿠오카 성에 두었다.

번의 역사[편집]

1600년 게이초 5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치쿠젠 일부를 영유하고 있던 고바 야카와 히데아키가 비젠 국 오카야마 번으로 전출되어 봉해졌다. 대신 부젠 국 나카쓰 번 번주였던 구로다 나가마사가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공에 따라 지쿠젠 국 일대 52 만 3 천여 석의 큰 봉토를 받음으로써 번이 성립되었다. 이로써 영주는 일국의 영토를 가진 다이묘 가문이 되었다. 이후 도쿠가와 막부는 후쿠오카 번 구로다 가문을 우대했고, 2대 구로다 다다유키 이후 역대 번주에 마쓰다이라의 성과 장군 실명 한 글자를 수여했다. 마쓰다이라 지쿠젠을 유지하며 구로다 가문은 에도 막말에 이른다.

구로다 소동[편집]

역대 번주[편집]

구로다 가문(종가)

대수 번주 초상화 재임 기간 비고
1 구로다 나가마사
黒田長政
Kuroda Nagamasa.jpg 1603년 ~ 1623년 구로다 간베의 아들.
2 구로다 다다유키
黒田忠之
Kuroda Tadayuki.jpg 1623년 ~ 1654년
3 구로다 미쓰유키
黒田光之
Kuroda Mituyuki.jpg 1654년 ~ 1688년
4 구로다 쓰나마사
黒田綱政
Kuroda Tsunamasa.jpg 1688년 ~ 1711년
5 구로다 노부마사
黒田宣政
Kuroda Nobumasa.jpg 1711년 ~ 1719년
6 구로다 쓰구타카
黒田継高
Kuroda Tsugutaka.jpg 1719년 ~ 1769년
7 구로다 하루유키
黒田治之
Kuroda Haruyuki.jpg 1769년 ~ 1781년 친부는 히토쓰바시 무네타다(一橋宗尹, 히토쓰바시 도쿠가와 가 초대 당주)
8 구로다 하루타카
黒田治高
Kuroda Harutaka.jpg 1782년 친부는 다도쓰 번교고쿠 다카요시(京極高慶)
9 구로다 나리타카
黒田斉隆
KurodaNaritaka.jpg 1782년 ~ 1795년 친부는 히토쓰바시 하루사다(一橋治済, 히토쓰바시 도쿠가와 가 제2대 당주)
10 구로다 나리키요
黒田斉清
Kuroda Narikiyo.jpg 1795년 ~ 1834년
11 구로다 나가히로
黒田長溥
Kuroda Nagahiro.jpg 1834년 ~ 1869년 나리히로(斉溥)에서 개명, 친부는 사쓰마 번시마즈 시게히데(島津重豪)
12 구로다 나가토모
黒田長知
Kuroda Nagatomo.jpg 1869년 ~ 1871년 친부는 쓰 번도도 다카유키(藤堂高猷)

지번[편집]

아키즈키 번[편집]

아키즈키 번(秋月藩)은 후쿠오카 번의 지번으로 1623년 겐나 9년 구로다 나가마사의 셋째 아들 나가오키가 후쿠오카 번으로부터 5만석을 나눠받아 번을 세웠다. 번청은 아키즈키 진야(현 후쿠오카 현 아사쿠라 시)에 세웠다. 성이 없는 다이묘였지만, 성주의 격을 부여했다. 4대 번주 나가사다의 딸 하루히메는 다카나베 번 아키즈키 가문에 시집을 갔으며, 둘째 아들은 명군으로 유명한 우에스기 요잔이었다.

간에이 연간에 후쿠오카 번과의 사이에 게자 군 일부와 호나미 군, 야스 군의 일부 영지를 교환했지만, 막부의 승인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어내증체’(御内證替)라고도 불렸다. (일설에는 후쿠오카 번으로부터 아키즈키 번이 받은 중신의 영지를 그대로 안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아키즈키 진야의 눈과 코 앞에 있던 교통의 요충지인 아마기야도를 후쿠오카 번이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아키즈키와 후쿠오카 두 번의 경계선은 아마기야도를 후쿠오카 번령에 포함시키는 복잡한 형태가 되었다.

폐번치현 이후엔 자작위를 받았다.

역대 번주[편집]

아키즈키 구로다 가문

도렌지 번[편집]

도렌지 번(東蓮寺藩) 혹은 노가타 번(直方藩)은 후쿠오카 번의 지번이다.

도렌지 구로다 가문

노가타 구로다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