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사쿠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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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사쿠헤이
藤原咲平 ふじはらさくへい
출생1884년 10월 29일(1884-10-29)
일본의 기 일본 나가노현 스와시
사망1950년 9월 22일(1950-09-22) (65세)
성별남성
국적일본의 기 일본
직업기상학자


Fujiwara Sakuhei in 1949.jpg

후지와라 사쿠헤이(일본어: 藤原咲平 (ふじはらさくへい), 1884년 10월 29일 ~ 1950년 9월 22일)는 일본의 기상학자이다.

개요[편집]

후지와라 사쿠헤이나가노현 스와시에서 출생한 기상학자로 영어명은 출신 지역 발음에 의거하여 ‘Fujiwhara’라고 쓰고 있어 일반적인 표기인 ‘Fujiwara’는 잘못이다.

생애[편집]

다카시마(高島) 진죠우소학교(尋常小學校)와 스와고등소학교(諏訪高等小學校)를 졸업하고 나서 나가노현립진죠우중학교(長野縣立尋常中學校)를 졸업했다.

1909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의 이론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기상대(中央氣象臺)에 입사하게 되었다. 1915년 『소리 이상전파 연구[音の異常伝播の研究]』로 이학박사를 수료하고, 1920년 제국학사원상(帝國學士員賞)을 수상했다. 같은 해에 유럽으로 유학을 가서 노르웨이빌헬름 비에르크네스(Vilhelm Friman Koren Bjerknes) 교수에게 사사받았다. 1921년에는 후지와라 효과를 최초로 발견하여 명명하기도 했다.

1922년 귀국한 후 중앙기상대 기상예측기술관 양성소의 주임을 맡았고, 1924년 데리다 도리하코(寺田寅彦)의 후임이 되어 도쿄제국대학 교수에 취임했다. 기상청에서 일기예보를 담당하였으며, 1937년에는 학사원(學士院)의 회원이 되었고, 1941년 오카다 다케마스(岡田武松)의 후임으로 제 5대 중앙기상대장에 취임했다. 태평양전쟁 때에는 군부의 요구에 따라 풍선폭탄을 연구하는데 가담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 이 연구가 원인이 되어 공직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다. 이후 재야에서 연구를 계속하며 저작을 남기는 데 전념하게 되었다.

소용돌이·구름·기상광학(氣象光學) 및 기상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해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기여했다. 현재 일본에서 사용하는 기상용어들의 기초를 닦았으며 글라이더 연구에서는 선구자 격이다.

저서[편집]

함께 읽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