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요리쓰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icon for infobox
후지와라노 요리쓰구
藤原 賴嗣
아홉 가지 등나무 가몬
아홉 가지 등나무 가몬
제5대 가마쿠라 막부 정이대장군
1244년 ~ 1252년
시대 가마쿠라 막부
출생 1239년 12월 17일(음력 11월 21일)
사망 1256년 10월 14일(음력 9월 25일)
관위 종삼위 우근위중장
씨족 구조 가문
부모 아버지: 후지와라노 요리쓰네, 어머니: 후지와라노 지카요시의 딸
아내 히와다히메(호조 도키우지의 딸)

후지와라노 요리쓰구(일본어: 藤原賴嗣, 1239년 12월 17일 ~ 1256년 10월 14일)는 가마쿠라(鎌倉) 막부(幕府)의 5대 장군(將軍)이다. 고셋케의 하나인 구조케(九條家) 출신의 쇼군이다(셋케쇼군).

생애[편집]

가마쿠라 막부 4대 쇼군 구조 요리쓰네(九條賴經)곤노주나곤(權中納言) 후지와라노 치카요시(藤原親能)의 딸 오오미야도노(大宮殿)의 아들로서 가마쿠라(鎌倉)에서 태어난다.

간겐(寬元) 2년(1244년), 당시의 싯켄(執權) 호조 쓰네토키(北條經時)를 에보시오야(烏帽子親)[1] 로 삼아 관례를 올리고, 아버지 요리쓰네로부터 불과 여섯 살의 나이에 쇼군직을 양도받아 취임한다. 이듬해인 간겐 3년(1245년)에는 쓰네토키의 16세 된 여동생 히와타히메(檜皮姬)를 정실로 맞이했다(히와타히메는 호지 원년인 1247년에 사망한다). 간겐 4년(1246년) 7월, 이른바 '미야(宮) 소동'에 의해 아버지 요리쓰네가 교토로 추방되고 이듬해 호지(寶治) 원년(1247년) 6월에 요리쓰네의 가마쿠라 귀환을 기도한 호지의 난에서 쇼군케를 지지하던 미우라(三浦) 집안 등이 멸망한 뒤에도 요리쓰구는 여전히 쇼군으로서 가마쿠라에 머물렀지만, 겐초(建長) 3년(1251년), 요행(了行) 법사 등이 주도한 모반사건에 요리쓰네가 관여했다는 이유로 막부는 고사가(後嵯峨) 상황(上皇)의 황자인 무네타카(宗尊) 친왕(親王)을 새로운 쇼군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요리쓰구는 14세의 나이로 쇼군직에서 해임, 어머니 오오미야도노와 함께 교토로 추방되었다.(이 해에 할아버지 구조 미치이에도 모반사건 관여에 대한 혐의를 받게 되고, 얼마 뒤 사망했다.)

4년 뒤인 고겐(康元) 원년(1256년) 8월에 아버지 요리쓰네가 사망하고, 뒤이어 9월 25일에 요리쓰구 자신도 홍역으로 사망한다. 향년 18세였다.

각주[편집]

  1. 원복(元服) 즉 관례식 시에 당사자의 머리 위에 관(冠)을 씌워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 중세 일본의 무가 사회에서는 특정 인물을 양부모로 삼아 당사자의 머리에 에보시(烏帽子)를 씌워주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 역할을 맡은 사람을 에보시오야라 불렀으며, 그에게서 관례를 치르고 성인이 된 당사자는 에보시코(烏帽子子)라 불렀다. 관례 이후 실제로 혈연관계가 없어도 혈연관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에보시코가 받는 새로운 이름은 으레 에보시오야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짓는 경우가 많았다. 가마쿠라 막부에서는 이미 요리쓰네가 쇼군으로 있던 분랴쿠(文曆) 2년(1235년)에 낸 법령 가운데, 효죠(評定) 때의 참가가 금지된 자로서 친족과 함께 에보시코가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