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년 거란(契丹)이 발해(渤海)를 멸망시켰고, 발해왕 대인선(大諲譔)은 포로가 되었다. 거란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는 발해 영토에 동란국(東丹國)을 설치하여, 장자 야율배(耶律倍)를 동란왕으로 세우고 '인황왕(人皇王)'이라 했다. 다수 발해인은 상경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당나라풍 문화를 유지하게 되지만, 상당수 발해인들은 고려로 망명했다.
거란은 대인선(大諲譔)을 통해 군사들을 인솔하여 요양으로 개선하였지만, 귀국 길에 태조 야율아보기가 죽었고, 인황왕 야율배는 야율아보기의 유해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이에 발해 부흥운동은 더욱 활발하게 되었는데, 그 중심은 발해의 마지막 왕 대인선의 동생(이름 미상)이었고, 옛 수도를 포함한 북방의 영토를 세력권으로 하였다.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 세력을 평정하지 못한 거란은 928년 사민(徙民)을 통해 동란국(東丹國)의 중심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천복성(天福城)에서 요양(遼陽)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발해의 옛 지역은 발해의 태자인 대광현에 의해 다스려지게 되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