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황후 (북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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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황후
孝明皇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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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황후 | |
재위 | 960년 9월 10일 ~ 963년 12월 24일 |
즉위식 | 건륭(建隆) 원년 8월 17일 (960년 9월 10일)[1] |
전임 | (초대) |
후임 | 효장황후 송씨 |
냥야군부인(琅邪郡夫人) | |
재위 | 958년 ~ 960년 |
이름 | |
시호 | 효명(孝明) |
신상정보 | |
출생일 | 후진 천복(天福) 7년(942년)[2] |
출생지 | 빈주(邠州) 신평현(新平縣) |
사망일 | 건덕(乾德) 원년 12월 6일 (963년 12월 24일)[3] (21 - 22세) |
사망지 | 개봉부(開封府) 황궁 |
부친 | 왕요(王饒) |
배우자 | 태조(太祖) 조광윤(趙匡胤) |
자녀 | 진왕(秦王) 조덕방(趙德芳) |
효명황후 왕씨(孝明皇后 王氏, 942년 ~ 963년 12월 24일(음력 12월 6일))는 북송을 건국한 태조(太祖) 조광윤(趙匡胤)의 황후이다.
생애
[편집]효명황후는 빈주(邠州) 신평(新平) 출신이며, 장덕군절도사(彰德軍節度使) 왕요(王饒)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958년(현덕 5년), 조광윤의 정처인 하씨(효혜황후)가 죽자 조광윤의 계실이 되었다. 왕씨는 공손하고 부지런하며, 인자한 성품을 지녔는데 후주의 세종이 관피를 하사하고 낭야군부인(琅邪郡夫人)으로 봉하였다.[2]
태조 조광윤이 즉위하고 960년(건륭 원년) 8월, 왕씨는 황후로 책봉되었다. 그녀는 편복 차림으로 황제의 수라를 챙기고 악기를 잘 연주하였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불서를 읽었다. 또한 시어머니인 두태후를 지극정성으로 섬겼다. 조광윤과의 사이에서 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요절하였다.[2]
963년(건덕 원년) 12월 붕어하였다. 한림학사 두의(竇儀)가 애책문을 지었으며, 다음해에 안릉 북쪽에 매장하고 신주를 별묘에 봉안하였다. 977년(태평흥국 2년), 태묘에 합사되었다.[2]
가족 관계
[편집]부모
[편집]- 부 : 왕요(王饒)
- 모 : 미상
남편
[편집]- 태조(太祖, 927년 ~ 976년) : 북송의 초대 황제
자녀
[편집]- 진강혜왕(秦康惠王) 조덕방(趙德芳, 959년 ~ 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