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음모사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화약 음모 사건에서 넘어옴)
이동: 둘러보기, 검색
화약음모사건의 주동자들.

화약음모사건(火藥陰謀事件, 영어: Gunpowder Plot)은 1605년 11월 5일제임스 1세종교 정책에 불만을 품은 로마 가톨릭 교도들이 웨스트민스터 궁전 지하에 화약을 쌓아놓고 폭파해 왕과 의원들을 몰살시키려 했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요 인물들은 얼마가지 못해 발각되었고, 결국 처형당한다.

사건의 음모[편집]

잉글랜드 국민들이 가톨릭 교회에 대한 두려움에 벗어나지 못하자 의회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탄압하는 법을 부활시키고 강화했다. 로마 가톨릭교도인 로버트 케이츠비(Robert Catesby)는 이에 격분해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폭파해 개신교도인 국왕 제임스 1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케이츠비는 우스터셔의 귀족인 로마 가톨릭교도인 토머스 윈투어(Thomas Wintour)에게 계획을 털어놓았다. 토머스 윈투어는 처음엔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네덜란드로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배포가 두둑한 가이 포크스(Guy Fawkes)를 만났다. 마침내 음모에 가담하기로 결심한 윈투어는 가이 포크스에게 계획을 전달했고, 두 사람은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이때 음모에 가담한 사람이 두 명 더 있었는데 토머스 퍼시(Thomas Percy)와 그의 처남 존 라이트(John Wright)였다. 이들은 당시 클레멘트 법학 기숙사가 근처에 있던 너른 벌판의 외딴집에 모여 엄숙한 비밀 서약을 맺은 뒤 케이츠비가 계획을 설명했다. 그리고 다락으로 올라가 예수회의 존 제라드(John Gerard) 신부에게 성찬을 받았다. 토머스 퍼시는 왕실 근위병으로 이따금 궁정 안팎에서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고 근무를 서기도 해 웨스트민스터 구역에서 전혀 의심받지 않았다. 퍼시는 국회의사당과 맞붙은 집을 발견하고 페리스라는 사람에게 세를 얻어 그 집에서 의사당 벽 밑으로 땅굴을 팔 계획이었다. 이 집을 빌린 뒤 공모자들은 템스강변 램버스 지역에 집을 하나 더 얻어 나무와 화약 기타 인화물질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다. 공모자들은 밤을 이용해 인화물질을 조금씩 옮겨 놓았다. 램버스의 인화물질 창고를 지킬 사람이 필요했던 이들은 로버트 케이즈(Robert Keyes)라는 가톨릭 귀족을 음모에 추가로 가담시켰다. 몇 달이 걸려 모든 준비를 마친 공모자들은 의사당을 향해 땅굴을 파기 시작했으나 두꺼운 벽 때문에 작업이 몹시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존라이트의 동생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를 음모에 가담시켰다. 이들은 밤낮으로 땅파기를 멈추지 않았고 가이 포크스는 보초를 도맡았다. 아무리 땅을 파고 또 파도 엄청나게 두꺼운 의사당 벽을 뚫지 못한 공모자들은 계획을 변경했다. 그들은 상원의사당 바로 밑에 있는 지하창고를 임대한 뒤 화약 36통을 옮기고 그 위에 장작더미와 석탄을 덮어 위장했다. 그리고 에버라드 딕비(Everard Digby) 경, 프랜시스 트레셤(Francis Tresham) 등 몇몇의 새로운 인물들을 음모에 가담시켰다. 이들은 의사당을 폭파한 후 준비된 말을 타고 전국을 다니며 가톨릭 교도들을 선동할 계획까지 세워 놓았다. 1605년 의회 개원이 10월 3일에서 11월 5일로 연기되자 공모자들은 계획이 발각되지 않을까 불안했다. 마침내 거사일, 에버라드 딕비 경은 사냥대회를 핑계로 가톨릭 귀족 여러 명을 던처지로 초대했다. 화약음모 계획은 모르지만 음모에 동조할만한 사람들이었다. 대다수 공모자들은 11월 5일 상원의사당 의회 개원 행사에 참석할 친척이나 친구가 있었는데 거사일이 다가올수록 아무도 모르게 뀌띔해주어 위험을 피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상원의원이었던 프랜시스 트레셤의 처남이 의회에 참석할 것이 분명하자 트레셤은 친척이나 친구를 살릴 방도를 마련하려고 동지들을 설득했지만 허사였다. 그러자 그는 상원의원 숙소로 찾아가 뜻모를 편지 한통을 남겼다. 편지에는 의회 개원식을 피하라는 말과 함께

"이시대의 악을 벌하려고 신과 인간이 뜻을 모았습니다. 의회는 끔직한 폭발을 겪을 테지만 누구 소행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말이 씌여 있었다. 결국 상원의원들과 제임스 1세의 신하들은 위험을 알아차렸고, 음모는 발각되어 가이 포크스는 보초를 서던 지하창고 현장에서 붙잡혔다.

예수회의 가담[편집]

붙잡힌 가이 포크스와 몇몇 공모자들은 무시무시한 고문을 받았고 마침내 예수회수사들이 음모에 가담했다고 실토했다. 당국은 로버트 케이츠비 등 나머지 공모자들을 모두 붙잡았다. 1월 15일 가이 포크스와 공모자들은 재판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고 교수형을 당한 뒤 말에 묶여 사지가 찢겨졌다. 헨리 가넷(Henry Garnet)이라는 예수회 수사는 음모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함께 잡혀온 예수회 수사 한사람과 하인 두명은 무자비하게 고문을 당했다. 헨리 가넷은 고문을 당하지 않았지만 런던탑에 갇혔고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했다. 가넷 수사는 재판정에서 고해성사에서 들은 내용이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고 진술했지만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당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 후 가넷 수사를 성인으로 추대했다.[1]



각주[편집]

  1. 찰스디킨스 《영국사 산책》(옥당, P498~506)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