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한야선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호한야선우(중국어 간체자: 呼韩邪单于, 정체자: 呼韓邪單于, 병음: Hūhányéchányú, ? ~ 기원전 31년)는 동흉노선우이다. 허려권거선우의 아들이며 질지골도후선우의 동생이다. 성명은 연제계후산(攣鞮稽侯狦). 한나라에 항복한 것이나 왕소군의 남편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61년 아버지 허려권거선우가 죽자 우현왕이던 악연구제선우가 즉위했다. 계후산은 아내의 친정 나라인 아선막에 의탁했다. 아선막은 강거오손 사이의 소국이었는데 흉노에 칭신하고 일돈왕(日逐王)의 누이가 계후산과 결혼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일돈왕은 악연구제선우와 사이가 나빴기에 부하 수만 기와 함께 한나라에 항복, 귀덕후에 봉해졌다. 악연구제선우는 노하여 일돈왕의 동생들을 죽였다. 또한 악연구제선우의 태자(우현왕)이 좌현지역(동방)의 귀족들을 중상모략했기 때문에 이들이 계후산을 호한야선우로 옹립하고 싸웠다. 악연구제선우는 패배하여 기원전 59년 자살했다.

그 뒤 저기선우, 오자선우, 호게선우, 차리선우가 지립하여 5선우 난립기가 시작되었다. 또 호한야선우의 형 연제호저아사(呼屠吾斯)도 자립하여 질지골도후선우를 칭하였다. 질지골도후선우는 호한야선우를 격파했고, 패배한 호한야선우의 신하 중 좌이질자왕이 한나라에 칭신하고 도움을 요청하자고 진언했다. 반대가 많았지만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저 기원전 53년 호한야는 아들을 한나라에 입조시켰다. 질지골도선후 역시 한나라에 도움을 청하며 입조했다.

이듬해 호한야선우는 스스로 오원(五原)의 요새를 찾아갔고 기원전 51년 정월 입조할 것을 청원했다. 호한야선우가 입조하자 전한 선제감천궁에서 호한야선우를 만나 그를 제후왕보다 상위에 위치하는 것으로 결청, 신(臣)을 치하지 않아도 되고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괜찮으며 중국의 왕관이나 옷, 황금옥새 등을 내리고 군사와 식량을 내어 호한야선우를 도왔다.

질지골도후선우는 서쪽의 오손을 공격했는데, 오손은 한나라가 호한야선우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고 질지골도후선우를 거부했다.

전한 원제 때도 한은 호한야선우에게 식량을 공급하면서, 한나라 사자를 죽인 질지골도후선우를 토벌하도록 촉구했다. 호한야선우는 북으로 돌아갈 때 동행한 한나라의 기도위 한창, 광록대부 장맹과 함께 월지 왕의 두개골로 만든 술잔으로 “오늘 이후로 한과 흉노는 가족이며 대대로 서로 속이고 공격할 수 없다”고 연맹을 맺었다. 호한야선우가 북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이 그에게 귀순하여 흉노는 평정되었다.

기원전 36년, 질지골도후선우는 서역도호 감연수와 부교위 진탕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호한야선우는 기뻐하면서도 한나라를 두려워하여 기원전 33년 재차 입조하였다. 이때 호한야선우는 한나라의 사위가 되기를 바랬고 원제는 후궁 왕소군연지로 하사했다.

호한야선우는 재위 28년만인 기원전 31년 사망했고 아들 연제조도막고(雕陶莫皋)가 복주류약제선우로 즉위하여 뒤를 이었다.

참고 자료[편집]